<카페에서>
나는 왜 여기에 앉아있을까.
벌써 세 시간째.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나온 소개팅이 생각보다 길어진다. 그냥 밥만 먹고 헤어지나 싶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카페에 앉아있는 나다. 더 이상 할 말도, 들을 말도 없는데 난감하다. 그나마 갑자기 전화가 와 상대방이 잠시 자리를 뜬 덕분에, 약간의 정신 차릴 틈이 생겼다. 하필 일요일. 하필 저녁. 지금 딱 맥주에 쥐포 씹으며 미뤄뒀던 예능 몰아보면 딱인데. 점점 입은 옷이 불편해지고, 화장도 무거워진다.
주위를 돌아본다. 거의 커플이다. 커플이란 바다 위에 부표처럼 홀로 떠 있다. 혹자 - 라고 쓰고 엄마라고 부른다 - 는 혼자 떠 있지 말고 누군가와 함께 흘러가라는데, 사실 난 외롭지 않다. 혼자가 좋다. 심지어 결혼과 출산에 굉장히 비관적이다. 왜 대한민국의 숫자를 채워주기 위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야 하는지 아직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상한 사람 - 여기서 이상한 사람은 나 또한 포함된다 - 만나 인생이 고단해질 바에야 그냥 혼자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할 때쯤 전화를 마친듯한 소개팅남이 급하게 카페로 들어온다.
취미가 뭐예요. 좋아하는 색은요. 무슨 음식 좋아해요.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어색함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질문들이 마음에 꽂힌다. 별로 안 궁금하단 걸 알기 때문에 나 또한 별로 답해주고 싶지 않다. 다 귀찮다. 얼른 자리를 박차 뜨거운 물에 샤워나 하고 싶다. 잠이나 자고 싶다. 피곤하고 고단하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연애가 귀찮은 무언가로 치부된 지 꽤 됐다. 마지막 연애가 3년을 넘어간다.
정말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헤어졌다. 나의 부주의와 안일함이 원인이었다. 상대방의 마음보단 내가 더 중요했었고, 그래서 그 사람을 알아주지 못했다. 놓친 다음에야 첫사랑이었단 걸 알았지만 이미 어긋난 뒤였다. 헤어진 내내 그 사람이 한국을 떠나기 전 단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 기도했다. 하지만 내내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편의점에 들어섰을 때, 그를 만났다. 아무 대화도, 인사도 없이 지나쳤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날 이후 한 달 뒤 그는 한국을 떠났다.
나는 어쩌자고 그런 사랑을 했는지. 어쩌자고 그 모든 걸 쏟았는지. 끔찍이도 사랑했던 이와의 이별은 채울 수 없는 공허감을 남긴다. '그런 이와의 끝도 그랬으니까'란 자괴감으로, 그 뒤에 올 사랑들을 당연히 그보다 못한 사랑이라 재단해 버리고, 그 끝을 미리 정해놓는다. 난 누구와도, 다신, 그런 사랑, 못해,라고. 오늘 이 소개팅도 그렇다. 난 어차피 앞으로 진짜 사랑 따윈 못할 테니, 지금 나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앞으로 다신 소개팅 안 해야지. 그게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좋다. 귀찮다. 아, 그러고 보니 집에 맥주가 없구나, 들어가는 길에 캔맥주나 사야겠다, 생각하며 성의 없는 고갯짓만 태양광 인형처럼 반복한다. 상대방도 지쳤는지 나에게서 멀어져 소파에 등을 기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