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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KCHIC Jan 30. 2018

06

<카페에서>

2018, CAFFE CUOIANO, Jeonpodong, Busan



살아생전 이토록 카페를 자주 오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냥 무던하고, 털털한 보통의 남자인 나 - 아, 물론 보통의 남자가 카페를 오지 않는단 단정은 아니다 - 는 과거에 연인과 데이트할 때나, 오랜 친구들 혹은 처음 보는 누군가와 함께할 때 보통 카페가 아닌 시끌벅적한 포차나 이자카야, 축구경기가 연신 나오는 펍이 전부였다. 그러던 때에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드라마 프로듀서를 하다 지금은 꿈을 좇아 글을 쓰고 있는, 자기 색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소소하되 감성적인 걸 좋아하고, 양보단 질이, 무엇이든 허투루 넘기는 일 없이 의미 두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감각적인 사람이었다. 나완 참 다른 카테고리의 인류였다.


 그런 그녀란 세계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수록 나 또한 그녀의 취향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예 다른 취향은 아니었다. 그녀와 난 교집합이 많았다. 세션이 적은 잔잔한 인디음악,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 회색과 베이지색, 인적 드문 아름다운 자연, 축구와 농구, 육식과 치즈, 비슷한 유머 코드, 내셔널지오그래픽과 라이프, 그리고 언젠가 함께 떠날 긴 여행에 관한 계획까지. 말하기보단 듣는 게 편한 내가, 말하기에 능숙한 그녀를 만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물결에 함께 몸 담그고 있단 기분만으로도 행복했다. 어쩌면 카페란 그런 우리가 담겨 있는 아주 소소한 바다와 같았다.


 새로운, 그녀의 감성에 맞는 카페를 발견할 때면 언제나 그녀를 태그로 걸어 알려주곤 했다. 그녀의 반응이 좋을 땐 남모를 희열감도 있더랬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하나 찾아가는 재미도 꽤 좋았다. 마침 카페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그녀에게 다른 건 몰라도 자그마한 소스 하나 찾아준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리액션이 좋은 그녀가 고맙다며, 손 꼭 잡고 볼에 뽀뽀라도 해줄 땐 내가 뭐라도 된 듯 의기양양해지며 더 좋은 곳을 찾아야겠다 다짐도 했다. 세상은 넓고, 카페는 많으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또한 많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람찬 기분이 주는 엔도르핀은 생각보다 풍요롭다.


 오늘도 이곳에 오니, 그녀는 빠르게 사방의 공간을 쭉 훑는다. 그리곤 조명이 이렇네, 좌석배치가 저렇네, 혼자 주저리주저리 감상평을 남긴다. 그러다 결정의 순간이 오면 늘 그랬듯, 플랫화이트를 시킨다. 물론 예쁜 디저트와 함께. 자리에 나란히 앉아 그날의 기분이나, 우리와 별로 상관없는 누군가의 이야기, 현실에 관한 사유 등등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그녀를 바라본다. 표정이 많은 그녀는 말하는 내내 미간을 찌푸리기도, 눈썹이 들썩이기도, 눈이 갑자기 커지기도, 제법 애교 있는 말투로 몸을 베베 꼬기도, 혼자서 꺄르르 웃기도 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마치 거울 인양 함께 미간을 찌푸리고, 눈썹을 들썩이고, 눈을 크게 뜨기도, 꺄르르 웃기도 하다 어쩔 줄 몰라 그만 꽉 안아버린다. 온몸에 힘주어 안아버린다. 나의 돌발행동에 잠시 놀라더니 그녀는 금새 나를 더 끌어당긴다. 그렇게 우리의 소소한 바다는 더욱 깊어진다.


#공간그리고사람 #BYPAKC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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