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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언덕 Mar 03. 2021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배우면

<논어><위정>온고이지신가이위사의 <할머니, 어디가요? 앵두 따러 간다>

온고이지신, 내 안에 품고 녹여 하나가 된다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것을 익히고 새것을 배우면 스승이 될 수 있다." <논어><위정> 11장



<논어><위정>의 11장에 정말 유명한 문장이 등장했다.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위정 11장), '옛 것을 익히고 새것을 배우면 스승이 될 수 있다'이다.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공자는 여기에서 배우는 것의 순서를 이야기한다. 공자의 글에서 순서는 무척 중요하다. 故고, 옛 것을 익히는 것이 먼저이고, 新신, 새것을 배우는 것이 나중이다. 더군다나 중간에 '而이', '말이을 이'자를 넣어 둘을 한 번 끊어주고 있다. 반드시 옛 것을 익히고 그 토대 위에 새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를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글자는 이 중에 '溫온'이었다. '따뜻할 溫온'. 이 글자를 공자가 <학이> 편 1장에서 사용한 적이 있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학이 1장)라 하여, 이때에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말라'라며 '서운하다'의 의미로 썼다.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에는 다르게, 옛 것을 '익힌다'는 의미로 썼다. '따뜻하다'는 뜻이 다각도로 쓰이고 있다. '따뜻함'은 보통 때는 '온화하고 부드러움'으로 쓰이지만, 그것이 심적으로 지나치면 '은근히 화가 남'으로 연결되고, 행동으로 축적되어 이어지면 '은근하게 지속적으로 알고 배운다'로 연결된다. 매력적인 의미가 담긴 글자다.


'옛 것을 익힌다'는 것은 그냥 단순하게 '배워라'는 학습의 개념이 아니라, '옛 것을 내 속에 은근히 품고 녹여 그것과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學학'과 같은 배움을 넘어 '習습', 몸에 익혀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溫故온고'를 '옛 것을 익혀라'보다 '옛 것을 품고 녹여 하나가 되어라'로 해석하고 싶다.


溫故온고, 옛 것이기 때문에 내 안에 품을 수가 있다. 지나간 과거의 것이며 눈에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그것은 내 삶 속에 배어있는 것이다. 옛 것은 나를 이루는 근원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엄마의 눈'이, '아빠의 몸'이, '할머니의 마음'이 이미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지 않은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내 삶의 대부분은 '옛 것'에서 비롯되고 있다. '옛 것을 품는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깨닫고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나를 만들고 지탱해온 모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단순히 지니고 있는 것을 넘어 '옛 것'이 주는 의미와 그것이 지닌 장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내가 지니고 있는 그것을 온전히 품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에 대한 이해'는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溫故온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자산, 나의 상황과 현실을 정확히 인지해야만,  知新지신, 새로운 것을 제대로 배우고, 다가올 미래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미래는 두렵고, 기술은 무섭다. 변화하는 IT 기술 속에 회사들은 그것들을 쫓아가기에 급급했다. 최근 10여 년간 기업들은 바빴다. 고객과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을 해야 하고, 인스타그램을 만들어야 하며, 틱톡을 깔아야 했다. 하지만 광고마케팅 전문가 박웅현은 그의 저서 <여덟 단어>에서 말한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라고. 새로운 기술은 매년 탄생한다. 사람들은 그 껍데기를 보고 우왕좌왕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 '인간관계' 내 소통의 맥락은 변하지 않는다. 기술과 사람과 콘텐츠와 맥락을 이해하면 그렇게 겉만 보고 떨 필요가 없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급급한 것은 나와 내가 처한 현실, 사회, 더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 그 기술이 필요한 원인,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먼저이고, 그것이 바로 溫故온고이다.


'창의력',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창의적인 사람들은 누구나 동일하게 말한다. 바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가장 대표적인 창의적인 인물인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다. 그는 "Connecting dots"라고 하며,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연결하는 것이 창의력이라 말했다. 그가 만든 스마트폰은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은 곧 전화와 문자메시지와 컴퓨터와 mp3를 연결한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옛 것에 대한 냉정하고 정확한 인지를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적용하고 만들어간 것이다. 溫故온고 이후에 知新지신이 이루어졌다.


신영복 교수는 <담론>에서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을 언급하면서 옛 것을 익히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더 비중이 크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고전 전문가가 보기에, 과거의 낡은 것보다 앞으로 만들어야 할 미래가 더 중요하게 보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옛 것'에 더 큰 비중을 둔 공자의 말에 동의한다. '옛 것'은 단순한 옛날이 아니다. 그 안에는 '현재'가 포함된다.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서 과거로 흐르고 있는 현재. 그것을 아는 방법은 '옛 것을 품고 살피며 익히는 것'에서부터이다. 그래서 나는 고전을 공부한다. 고전이 여전히 현재와 나를 보게 하는 훌륭한 지혜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옛 것을 내 안에 품고 데워 온전히 파악한 후에 그것을 기반으로 새것을 배우면, 누구나 스승이 될 수 있다. 단순한 지식 전수의 스승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선지자, 개척자가 된다.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말이다. 진정한 배움이라면 溫故온고를 통한 자아성찰, '나'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할머니와 손녀의 온고이지신


조혜란의 <할머니 어디 가요? 앵두 따러 간다!>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을 삶 속에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조혜란 작가의 <할머니, 어디 가요?>시리즈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다. 작가는 본인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서산 바닷가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한 아이의 모습을 통해, 한없이 나눠주는 자연과 억척스럽고 씩씩한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물론 작가는 어린 '옥이'의 모습에 투영되어 있지만, 이 그림책 시리즈의 주인공은 단연코 그녀의 할머니이다.


<할머니, 어디 가요? 앵두 따러 간다!>에서 할머니는 자연 속에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는다. 뒷마당에 심은 오디를 따서 술을 담고, 비름나물을 삶아 반찬을 만들기도 한다. 갯벌에 있는 넘문쟁이를 따다가 먹기도 한다. 먹고 남으면 시장에 나가 팔아 필요한 다른 생필품을 산다.


그림책 속의 할머니는 강하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보살피고 손녀를 돌보며, 집안 살림을 하고 반찬을 만들며, 여유가 되면 장사도 하고 바닷가에 나가 놀기도 한다. 그림 속에 할머니가 까무잡잡한 피부에 떡 벌어진 어깨를 지닌 키 큰 장정으로 그려진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 많은 일을 모두 해내는 엄청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손녀에게 얼마나 큰 사람이었을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할머니가 그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힘뿐만은 아니다. 그녀는 溫故온고의 대명사이다. 사시사철 때가 바뀌면 자연은 무엇을 제공하며 인간은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뻘에서 비름나물을 캘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지 아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아이스크림을 잔뜩 먹어 배탈이 난 손녀에게 비름나물을 먹이면 된다는 것도 안다. 오디나 앵두를 시장에 내다 팔 때에는 술을 담가서 나눠주면 사람들이 그 맛에 끌려 더 잘 팔린다는 것 역시 말할 필요가 없다.


할머니에게는 자연과 삶에서 배운 지혜가 몸에 배어 있다. 그렇기에 자연 속에서 바쁜 삶을 영위하면서도 손녀와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자연의 이치와 생활의 지혜를 품은 溫故온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 그림책은 즐겁고 유쾌할 수밖에 없다.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 할머니는 어떤 낯설고 어려운 세상에 와도 잘 살아낼 것이며, 그러한 할머니의 지혜는 고스란히 손녀에게 전달되리라는 것을. 손녀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혀 새로운 매체인 그림책으로 탄생시켰다. 할머니의 溫故온고와 손녀의 知新지신이 만나 만들어진 그림책이다.





옛 것을 품으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위정 11장), '옛 것을 익히고 새것을 배우면 스승이 될 수 있다'를 나 스스로 품고 녹여 내 것으로 만들어보고자 했던 시간이었다. 이렇게라도 붙들고 있으면 내 것이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에서이다. 나에게는 위에 나온 힘세고 든든한 할머니 대신 온화하고 유연한 공자 선생님이 계시니 다행이다. 공자의 <논어>를 꼬옥 품고 있으면 언젠가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지 않을까. 따뜻한 애정과 온기로 품고 품어 노랗게 빛나는 병아리가 태어나는 그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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