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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언덕 Jan 20. 2021

배우지 않아도 충분히 배운 사람

<논어><학이>수왈미학오필위지학이 <알몸으로 학교 간 날>

배우지 않아도 배웠다고 말한다


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자하왈 현현역색 사부모 능갈기력 사군 능치기신 여붕우교 언이유신 수왈미학 오필위지학의)

자하가 말하였다. "어진 이를 어질게 대하고 여색 좋아하는 마음과 바꾸며, 부모 섬기기를 능히 그 힘을 다하고, 군주 섬기기를 능히 그 몸을 바치며 벗과 더불어 사귀되 말함에 성실함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말하겠다." <논어> <학이> 7장


<논어>의 <학이>는 분명 '배움'에 대해 논하고 있는 장이다. 그런데 자하는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도 배웠다고 말하겠다고 한다. 현자를 알아보는 눈이 있고, 여색을 멀리하는 의지가 있으며, 부모 섬기기를 최선을 다하고, 윗사람 섬기기를 몸 바쳐 하며, 벗을 사귀는 데 믿음을 주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유가의 핵심이 잘 드러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내가 나의 몸을 잘 수양하는 것이 곧 천하를 다스리는 일의 근본이다. 우리는 공자의 사상을 학문으로 받아들여 공부하려고 하고 있지만, 초기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하려고 했던 것은 유가라는 학문의 번성이 아니라, 개개인의 수양이었다. 개인이 가져야 하는 도리는 가장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어진 이를 알아보고 여색을 멀리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본에 충실하다면 그 이후는 다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까. 가장 기본은 인간의 '양심', 내 안에서 올라오는 '첫 마음'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중용>에서 공자는 '양심'과 같은 인간의 마음을 '본성'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늘의 마음과도 같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脩道之謂敎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에서 '명'한 바를 '성'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한다. 

<중용> 1장


<중용>의 첫 장을 두고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이기동 교수는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하늘에서 명해준 본성을 '하늘의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하늘은 인간에게 맑고 순수한 본성을 내려주었다. 그것이 性성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육체에 깃든 욕망에 의해 오염되기 쉽다. 그래서 본성을 지키기 위해 道도, 도리, 길을 만들어냈다. 그 도리를 지키고 닦는 것을 敎교, 교육인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하늘의 마음이 인간에겐 심어져 있다. 그것이 바로 첫마음, 양심이자 본성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모두에게 통한다. 특히 우리 민족의 '한마음' '한민족' 등에 드러나는 '한(크고 밝은 하나의)'의 사상은 중용의 내용과 너무나 일치한다.


이기동 교수는 말한다. 공자는 아마도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을 거라고. 흰 옷을 입고 활 좀 쏠 줄 알던 신을 섬기는 사람들, 동이족 출신일 거라고. <중용>의 사상은 중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마음과는 조금 다르지 않은가? 중국인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 민족이 공자를 이토록 좋아해온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단군 신화>를 설명해줄 때마다 마음에 깊은 감동이 있다. 하늘나라(환국=한국)에서 살던 하느님(환인)은 자신의 아들, 환웅을 땅으로 내려보낸다. 홍익인간, 환웅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것을 그대로 땅 위에 실현시킨다. 새로운 세상에 곰과 호랑이 부족은 합류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백일 동안 귀신 같은 마음, 나쁜 속성을 물리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인내한다. 곰은 인내하여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하늘의 민족인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는다. 우리의 시조는 모두를 이롭게 하고싶어한 하늘의 민족과 곰처럼 인내할 줄 아는 민족이었던 것이다. 모두 함께 잘살자는 그 마음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홍익인간은 우리 삶 깊숙이 퍼져있다. 교육 이념에도 있고, 떡집 이름, 태권도장 등 안 보고싶어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공자의 사상을 받아들여 '작은 공자의 나라'가 된 것은 당연하다. 우리 조상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본성과 양심을 따르는 사람이 자하가 말하는 배우지 않아도 배운 사람이라 생각한다. 혼자만 잘 살기를 바라지 않고 모두 함께 잘살기를 바라는 천국의 마음, 홍익인간의 마음을 지닌 사람 말이다. 내 안의 첫 마음을 따른다면, 모두가 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굳건히 한다면, 어진 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하늘의 마음으로 대하고, 여색에 심취하게 될 일도 없으며, 부모와 웃어른에게 정성을 다하게 되지 않을까. 친구들에게 신의를 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배움이 먼저가 아니라, 본성을 지키는 삶이 먼저이다. 배움은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한 도구이다.

공자의 사상은 철저히 인간을 믿는다. 인간의 첫 마음을.



나의 민낯을 이해해주는 사람들


<알몸으로 학교 간 날> 나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피에르는 알몸으로 학교에 갔다. 아침에 늦잠을 자서 허겁지겁 준비를 하고 학교에 도착했지만 옷 입는 것을 잊어버렸다. 정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학교에 도착한 피에르. 그는 빨가 장화만을 신고 있었다. 피에르를 마주한 친구들과 선생님. 그 누구도 피에르가 벗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다. "피에르! 오늘 빨간 장화가 멋지다!"라고 이야기해줄 뿐, 그의 부끄러운 부분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피에르는 점심 시간에 운동장에서 똑같이 벌거벗고 있는 친구 마리를 만난다. 둘은 가장 부끄러웠던 부분을 나뭇잎으로 가리고는 다시 수업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알몸으로 다닐 수 있는 자신감을 얻는다.


<알몸으로 학교 간 날>이라는 그림책의 내용이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이란!? 프랑스 특유의 정서와 분위기가 드러나는 것 같다. '배우지 않아도 배운 사람'이라는 오늘 주제를 생각하다가 이 책이 떠올랐다. 알몸으로 학교에 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감히 상상하기가 힘들다. 선생님께 인정받기 위해 제일 앞 자리에 앉고 숙제도 열심히 하고 수업에도 잘 집중한다. 성적은 상위권이어야 하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녀가 되기 위해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착한 아이라는 옷, 공부 잘하는 학생의 옷,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는 옷 등 나는 수많은 옷을 껴입는다. 그리고 모든 옷에서 광이 나도록 단련한다. 나의 알몸을 과연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아이의 알몸을 바라보는 친구들과 선생님,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 감동하게 된다. 그들은 친구의 아프고 부끄러운 것을 굳이 말하지 않는다. 본인이 아마도 가장 잘 알 것이기에. 그림책의 특성상 여러 상징적인 이미지로 알몸을 비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친구들은 피에르를 그 자체로 존중해준다. 미술 시간에 각자 원하는 것을 그리라고 했을 때 친구들은 모두 피에르의 알몸을 그린다. 다들 피에르의 알몸을 의식은 하고 있지만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은 그들의 무의식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 작은 학교에서 나는 하늘나라, 천국을 본다.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서로 잘 살 수 있게 배려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바로 하늘 나라가 아닐까. 이기기 위해 친구를 밟고 올라서도록 만들어놓은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부끄러워진다. 공자가 꿈꾼 나라, 고조선이 꿈꾼 나라, 서로 이해하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공간이 이 책 안에 그려져 있다. 피에르가 '마리'라는 또다른 벌거벗은 친구를 만나서 앞으로 나설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되는 것 역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아프고 부끄러운 것을 존중하고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부족한 존재이더라도 그 자체로 함께 할 수 있으며, 또다른 구멍투성이의 작은 존재끼리 만나 서로에게 공감하고 독려하여 온전한 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배우지 않아도 충분히 배운 사람들이 있다. 하늘나라에 살고 있는 천사들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서툴고 부족하고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하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진 이를 알아보고 여색에 휘둘리지 않으며 부모와 웃어른에게 공경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신뢰가 깊을 것이다. 자하는 말했다. 그런 사람이라면 배우지 않았더라도 이미 충분히 배웠다고 말하리라고.


나의 민낯과 알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라면 나도 꼭꼭 껴입은 옷을 벗을 수 있을까. 덜 긴장하고 여유롭게 살면서 오늘 밤만은 편안하게 잘 수 있을까. 다운 점퍼를 입고 주변에 눈돌리지 않으며 배움만 추구하는 내가 더 춥게 느껴진다. 배우지 않아도 이미 배운 사람, 자하의 이 말이 오늘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아이들이 알몸으로 다녀도 되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세상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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