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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언덕 Feb 06. 2021

북극성처럼 빛난다

<논어><위정>위정이덕비여북신거기소이중성공지 <행복한왕자><이상한엄마>

덕은 북극성처럼 빛난다는 <논어><위정> 1장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 共之

(자왈 위정이덕 비여북신 거기소 이중성 공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치를 덕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뭇 별들이 그에게로 향하는 것과 같다." <논어> <위정> 1장


공자는 정치를 北辰북신, '북극성'에 비유했다. 德治덕치, 덕으로 하는 정치는 '북극성'과 같아서, 북극성이 제자리에서 반짝이며 비추고 있으면 다른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德治덕치, 덕으로 모든 것을 행한다면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주변이 알아서 그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미 그 덕이 주변으로 넘쳐흘러 북극성과 같은 본보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하필 북극성일까? 태양이나 달처럼 환하게 밝혀주는 행성들도 있는데 말이다. 북극성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둠 속에서 늘 그 자리를 지키며 기준이 되어준다는 것과 눈부시거나 과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본인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드러나는 존재가 북극성이다. 은은하게 흘러넘치는 것이 바로 덕이다. 태양이나 달처럼 크게 빛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비춰주고 있으면서 삶의 중심이 되어주는 그런 것이다.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자왈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사무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3백여 편의 뜻을 한 마디로 대표하자면,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말이다." <논어> <위정> 2장


이어서 공자는 <시경>의 핵심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 <시경>에 있는 시 3백여 편은 모두 '思無邪사무사', '그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고 한다. 동떨어져 보이는 1장과 2장이 하나로 연결된다.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 역시 '북극성'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비춰주면서 기다려주는 존재. 은은하게 빛이 나서 눈이 부시지 않으며,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기준이 되는, 밤중에 길을 가는 모든 이들을 안내해 주는 그런 존재 말이다. 태양이나 달처럼 크고 훤하지는 않지만 그 별만이 주는 위안과 따스함이 있다. 이런 별에 어떻게 간사함이나 이기심이 있을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봐주는 마음이 북극성의 마음이자, 思無邪사무사가 아닐까 싶다.


北辰북신과 思無邪사무사, '북극성'과 '간사함이 없는 마음'이 <위정>의 3장에서 더욱 자세히 서술되고 있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자왈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도하기를 법으로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형벌로써 하면, 백성들은 형벌만 면하려고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을 것이다. 인도하기를 덕으로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예로써 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하고 또한 선에 이를 것이다." <논어> <위정> 3장


북극성의 비유였던 德治덕치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한다. 법으로 다스리고 형벌로써 지키도록 하면 백성들은 형벌만 면하려고 하고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부끄러운 마음은 없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써 그것을 지키도록 하면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백성들을 선하게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법과 형벌, 덕과 예의를 대조시켜서, 그 둘의 차이를 드러나게 한다. 공자가 주장하는 정치는 결국 백성들이 스스로 교화되어 선하게 행동하도록 하는 德治덕치이다. 억지로 누가 보고 있기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게 만드는 힘'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


규칙으로써 다스리는 게 아니라, 온화한 별처럼 스스로 모범을 보이며 삶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덕으로써 주변을 교화시키고 예로써 그것을 행하도록 도울 때 진정한 다스림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으로는 모르겠지만, 한 가정의 부모로서 지녀야 할 태도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들에게 어떠한 태도와 습관을 길러줄 것인가. 처벌이나 규칙보다 부모의 삶에 대한 태도가 가장 좋은 본보기가 된다. 형벌로써 다스릴 수는 있지만 자녀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자녀는 무의식 중에 부모의 삶의 태도와 습관을 그대로 물려받기 때문이다. 가정의 확장된 범주로 나라를 볼 때 공자가 말하는 덕치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된다. 북극성과 같은 지도자, 온화하게 비춰주며 따스하게 안내해 주는 리더,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북극성과 같은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덕은 어떤 모습일까.





별처럼 빛나는 그대


북극성처럼 그 자리에서 빛나는 존재를 떠올리다가 <행복한 왕자>에서 마음이 멈추었다. 이렇게 희생하는 존재로 찾고 싶지는 않았는데, 행복한 왕자만큼 빛나는 존재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곰곰 찾아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성인이 별과 같이 따스하게 빛나며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분들이다. <행복한 왕자>는 그중에 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오스카 와일드 / 제인 레이 <행복한 왕자>

도시 가운데 우뚝 서있는 왕자의 동상이 있었다. 온몸은 금으로 덮여 있고 반짝이는 사파이어 눈을 가졌으며, 칼자루에 커다란 루비가 빛나는 아름다운 왕자이다. 제비 한 마리가 이집트로 날아가는 도중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왕자를 만난다. 왕자는 병이 들어 아파하는 소녀를 보고 있었다. 또한 연극 대본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한 청년을 보고 있었으며, 성냥을 팔고 있는 소녀를 보고며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제비는 자신이 겪어온 여러 나라의 신기한 이야기들을 왕자에게 들려주지만 왕자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왕자는 제비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 사파이어, 루비 등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한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제비는 추위에 얼어 죽고, 왕자는 반짝이는 보석들을 잃고 잿빛으로 변해 용광로 속에 들어가게 된다. 용광로에서도 왕자의 심장을 녹지 않을 만큼 뜨거웠다. 하느님은 이 도시에서 가장 고귀한 두 가지로 왕자의 조각난 납 심장과 제비를 선택한다. 왕자와 제비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슬프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하고 아픈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줄 줄 아는 왕자. 그리고 그 곁에서 그에게 동화되어 왕자의 마음을 전해주는 제비. 둘이 보여주는 '나눔의 마음'이 읽는 이들을 감동시킨다. 겉모습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절대 녹지 않는 뜨겁고 강한 심장을 가진 그는 진정한 왕자였다. 왕자의 이러한 큰마음이 바로 북극성처럼 빛나며 주변을 밝혀주는 것이 아닐까. 올해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나와 달리, 왕자와 같이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주변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겨울을 보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백희나 <이상한 엄마>

행복한 왕자처럼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나눠주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 곁에서 별처럼 빛나면서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선녀'와 같은 존재들 말이다.


비가 잔뜩 오는 날, 호호가 열이 심해 학교에서 조퇴를 한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호호의 엄마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호호를 부탁하게 된다. 엉겁결에 하늘나라 선녀에게 연결이 되고, 선녀는 호호를 보살펴주러 직접 내려온다. 선녀는 계란 요리를 좋아한다. 달걀국을 따뜻하게 끓여 호호의 몸을 녹여주고, 계란 프라이를 부쳐 호호의 몸을 데워주며, 달걀 흰자와 우유로 거품을 내어 몽실몽실 구름을 만든다. 그리고 폭신한 구름 속에 호호를 눕혀 재운다. 회사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호호의 엄마. 구름 속에서 곤히 자고 있는 호호를 보고 안심한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이상한 엄마>의 내용이다. 백희나의 책 속에는 '선녀'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 옛이야기의 모티프를 따온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이상한 엄마'로 등장한 선녀는 곧 엄마의 엄마, 할머니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희나 작가의 책 속에서 만나는 선녀는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보살펴주는 엄마들이자 곧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의 마음을 선녀로 비유하고 있는 작가. 그 비유가 깨달아질 때 느껴지는 따뜻한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아이들 돌봐야 한다는 마음과 일을 해야 한다는 갈등 사이에서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죄책감이 든다. 그럴 때 엄마들을 도와주는 것은 또 다른 엄마들이다.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혹은 이웃의 엄마들. 서로를 보듬어주고 따스하게 안아주는 우리 주변의 엄마들, 그리고 할머니들. <이상한 엄마>는 그러한 엄마들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어 읽을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엄마들 그리고 할머니들, 나는 그 모두가 북극성처럼 가정을 지켜주고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별과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 나무꾼을 피해 선녀 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 선녀들은 자식들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혹은 자식들을 위해 선녀 옷을 입지 않기도 한다. 그러한 수많은 선녀들이 바로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별들이 아닐까. 아버지와는 약간은 다른, 별과 같은 감성이 우리 엄마들과 할머니들에게 느껴진다.




은은하게 비추어 온기가 흘러넘치기를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 共之

(자왈 위정이덕 비여북신 거기소 이중성 공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치를 덕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뭇별들이 그에게로 향하는 것과 같다." <논어> <위정> 1장


공자는 德治덕치를 북극성에 비유했지만, 나는 단순히 다스림의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나의 주변에 온기를 나눠주고 다른 이들에게 덕을 베풀며 삶의 중심을 잡도록 도와주는 모든 것이 북극성이 아닐까. 그러한 별과 같은 덕이 흘러넘치면 덕치로 세상이 채워지고, 그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서로를 본받아 내 행동이 부끄러운지 아닌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양심이 살아나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공자는 그러한 세상을 꿈꾸며 덕치와 북극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벌써 주말의 밤이다. 잔뜩 흐려 별이 보이지 않는 밤. 코로나로 더 어둡게 느껴지는 밤이다. 주변의 별들을 헤아려보다가, 문득 나는 어떻게 빛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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