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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언덕 Jan 23. 2021

사람이 따르는 사람

<논어><학이>인불실기친역가종야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친한 이들을 잃지 않는 사람은 따를만하다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 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유자왈 예지용 화위귀 선왕지도 사위미 소대유지 유소불행 지화이화 불이예절지 역불가행야)

유자가 말하였다. "禮예의 쓰임은 和를 귀하게 만든다.(예가 있어서 조화로움이 가능하다)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리하여 작은 일과 큰 일 모두 이것을 따랐다."

"행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和화를 알아서 和화만 하고 禮예의로써 적절하게 하지 않으면 이 또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논어><학이> 12장


有子曰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유자왈 신근어의 언가복야 공근어례 원치욕야 인불실기친 역가종야)

유자가 말하였다. "약속(믿음)이 의리에 가까우면 말(약속한 말)이 실천이 되고, 공손함이 禮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으며, 주인을 정할 때 그가 (주인이) 친한 사람을 잃지 않는 것으로 또한 그 사람을 끝까지 종주로 삼을 수 있다." <논어><학이> 13장


<논어> <학이>편 12장과 13장에서 유자는 禮예의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禮예의 가장 큰 쓰임은 진정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禮예의를 갖추어 작은 일과 큰 일에 모두 예법이나 예절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禮예가 없는 조화란 조화롭지 않은 것이니, 의리가 있어야 약속이 실천되고, 공손함이 있어야 치욕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사람은 예의를 품어야만 매사에  節절,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다. 禮예가 행동과 어울림에 節절, 적절함을 정해준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절도가 없는 어울림은 싸움으로 치닫기 쉽다. 서로를 존중하고 위해주는 마음이 표현될 때 그 사이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학이>편에서는 '배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배움의 가장 큰 목표는 도덕의 실현에 있으니, 양심과 도덕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예의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도덕이 양심 및 마음의 문제라면, 예의는 그것을 절도와 상황에 맞게 표현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10-11장에서 자금이 자공과 대화하면서, 공자가 방문하는 나라마다 어떻게 함께 정사를 논의하는 일이 생기는지 물었다. 이에 자공은 '공자가 온순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검소하며 겸양하기 때문에 이것이 절로 이뤄지는 것'이라 답했다. 배움이 깊은 사람을 그의 학식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으로 판단한다. 공자의 성품과 행동은 도덕적이며 예의와 격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2-13장의 유자의 말은 공자가 품고 있는 '禮예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유자는 13장에서  禮예의 종류를 義의 의로움, 恭공 공손함, 親친 친밀함,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로 義의, 의리가 있는 말이 禮에 해당되고, 둘째로는 공손함이 있는 행동이 禮이며, 세 번째로는 주변을 잃지 않은 친밀함 親친이 禮예를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말을 지키는 의로움, 주변을 위하고 나를 낮추는 공손함, 지인을 아끼는 친밀한 마음이야말로 예의 실천강령인 것이다. 


공자의 제자 된 입장에서 쓴 글이기 때문에, 공자의 덕성 중에 義의와 恭공, 親친이 있었다는 것을 증빙하는 말과도 같다. 공자가 삼천여 명의 제자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러한 禮예를 생활화했기 때문일까? 우리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공자는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하는 분이셨을 거라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꼰대'같은 뻣뻣한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낮추는 것을 강조하셨고, 물 흐르듯 흘러갔으며, 중심을 지니는 중용의 마음과 다른 이들을 사랑하라는 대학의 마음을 곳곳에 펼쳐놓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논어>와 <대학>, <중용>을 보면 공자가 책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학문과 행동을 일치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지행합일의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공자가 현대 사회에 산다면, 양복을 입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식이 뛰어나면서도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말을 지키고 공손하게 행동하며 주변을 아끼고 사랑하여, 수천 명의 제자들이 따르는 그런 분이 아니셨을까? 


親친, 사람이 사람을 따른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유자가 말하였듯이, 의리, 공손함, 주변을 아끼는 마음이 모두 드러나야지만 비로소 누군가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테니 말이다. 본보기가 되는 스승이 있던 유자가 부러워진다. 우리 주변에 그런 분은 어디에 계실까?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 진정한 스승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따른다는 것. 

그 엄청난 일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유자가 말한 親친, 친밀함, 애정, 아끼는 마음은 무엇인지 그림책을 통해 살펴본다.



채인선 글, 이억배 그림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모두가 따르는 사람


손이 아주아주 큰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매년 설날이 되면 만두를 빚는데, 온 산의 동물들이 할머니를 도우러 온다. 이번 설날에 할머니는 특별히 더 많은 만두소를 준비하고 더 많은 만두피를 만들었다. 산속의 모든 동물 가족들이 모여 함께 만두를 만든다. 하지만 며칠을 만들어도 만두소와 만두피가 줄지 않자, 다 같이 아주아주 거대한 만두를 만든다. 다 같이 만든 거대한 만두,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무척 맛있었으리라는 것을.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라는 그림책이다. 모두를 따르게 만드는 이야기를 찾다가, 손 큰 할머니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의 설날은 겨울을 나는 모든 동물의 잔치다. 할머니가 손이 큰 덕분에 다 함께 만두를 만들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 동물들이 손 큰 할머니를 무척 좋아하고 따랐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親친, 주변의 친한 이들을 잃지 않는 것은 손 큰 할머니와 같은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다. 이 그림책은 가장 원초적인 것을 다룬다. 食식, 먹는 것만큼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손 큰 할머니는 겨우내 배를 곯고 있을 주변인들을 위해 만두 빚기 잔치를 열고, 다 함께 만들어 더 보람되고 맛있는 설날 만둣국을 먹도록 한다.


할머니의 마음에서 나는 존경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를 본다. 첫째는, 주변에 배고프고 어렵고 힘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관심이다.  할머니는 주변 동물들이 배고프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기 위해 잔치를 연다. 이 책에서의 배고픔은 비유로 이해해도 좋다. 굶주림은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일 수도 있다. 할머니처럼 주변에 몸과 마음이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돌아보는 마음이 있다면, 서로에게 관심 가져주는 여유가 있다면, 올해처럼 추운 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주변으로 시야를 조금 확장하기만 하면 우리는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러한 '관심'은 주변을 포용하는 첫 번째 마음일 것이다.


둘째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할머니식 도움의 방법이다. 할머니는 만두를 혼자 만들어서 주변 동물들에게 나눠주지 않는다. 아픈 주변인들을 거지로 만들지 않는다. 그냥 주는 것은 그들에게 그냥 받는 것에 익숙하게 만든다. 스스로 일어설 힘을 앗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힘들고 배고프지만 그들이 스스로 행동해서 뿌듯함을 느끼고,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맛보도록 돕는다. 할머니는 일부러 거대한 만두소와 만두피라는 과제를 주고 동물들이 직접 해결하도록 이끈다. 동물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만두를 빚으면서 내년 겨울에는 배고픔에 홀로 굶주리지 말고 만두를 빚자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일으키고 앞으로 걸어가게 마드는, 진정한 도움의 방법인 것이다.


할머니의 큰 손은 할머니의 큰마음을 대변한다.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한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 찾는다. 그래서 그 주변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려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유자가 말한 親친의 진실이 아닐까.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보면, 삼천 식객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나온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맹상군, 조나라 평원군, 위나라 신릉군, 초나라 춘신군이 그들이다. 진시황을 왕으로 만든 '여불위'가 질투가 나서 본인도 삼천 식객을 받았을 정도로, 각 나라에서 인품 좋고 뛰어나면 주변인들을 품어 쓸 줄 아는 재상들이었다. 그만한 재력과 위치에 있었기에 삼천 명을 재워주고 먹여주었겠지만, 누구인지도 모르고 무슨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품어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내는 사람까지 쓸 줄 알았다는 일화(계명구도)가 있는 맹상군이 그중에 특히 유명하다.


왼쪽부터 신릉군, 맹상군, 평원군, 춘신군


공자는 재력가도 아니었는데 삼천 제자를 이끌었다. 손 큰 할머니처럼 공자도 큰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사람이 따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공자가 스스로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면서도, 제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줄 알았던 진정한 스승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손도 크고 마음도 크고


손이 큰 할머니 같은 어른들이 우리 주변에 여전히 많이 계신다.

우리 엄마, 우리 시어머님만 해도 손이 아주 크고 넉넉하게 품으셔서 자식들과 손주들까지 모두 배불리 먹이신다. 명절마다 제발 음식 조금씩만 장만하시라고 말씀드려도 모두를 위해 늘 여유 있게 준비하신다. 매년 몸살을 앓으시지만 가족을 위한 행사를 소홀히 하지 않으신다.


할머니가 자식과 손주를 위하는 마음,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바로 이 손 큰 할머니와 닮아있지 않을까 싶다. 기도의 시작은 나의 것에서 출발하겠지만, 그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기도는 나와 가정, 이웃과 사회로 저절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내리사랑은 흐르고 흘러 또 다른 사랑의 물결을 만들 테니까.


손 큰 할머니와 공자의 모습에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어떤 할머니가 될까? 

무엇으로 내 주변 사람들을 품을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 유자가 말한 세 가지, 義의, 恭공, 親친. 의로운 말과 공손한 행동, 그리고 친밀한 관계에서부터 생각해 봐야겠다. 친밀한 관계는 나의 영역 너머에 있는 것이기에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의리가 있는 말과 공손한 행동은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손 큰 할머니처럼, 마고할미처럼 큰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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