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언덕 Jan 16. 2021

성실함은 나도 이루고 남도 이루게 한다

<논어>증자왈오일삼성오신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 <황금알을 낳을거야>

매일 세 가지로 스스로를 살피는 증자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증자가 말하였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의 몸을 살피니,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할 때 충성스럽지 않은가, 벗과 더불어 사귐에 성실하지 않은가, 전수받은 것을 복습하지 않는가이다." <논어> <학이> 4장


매일 기준을 정해놓고 자신이 그것을 따르고 있는지 살펴보았다는 증자의 말이 감동적이다. 증자는 공자의 제자 중에 가장 둔하다고 놀림당하던 사람이다. 우둔하던 그가 공자의 사상을 잊지 않고 후대에 남기게 된 까닭이 궁금했었는데, 엄청난 노력파였던 게 분명하다. 공자의 삼천여 명의 제자 중에 유일하게 증자만이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대학>을 집필한다. 증자가 스스로를 살피는 태도가 그가 만년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가장 훌륭한 제자가 된 이유인 것 같다.


<논어>의 다른 대목에도 공자와 증자의 대화가 남아있다. 공자의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하고 있다."라는 말에 증자만이 그 뜻을 알아들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증자는 스승의 마음을 이렇게 요약한다. 

"스승님의 도는 忠충과 恕서일 뿐이다."

이 말은 공자의 모든 사상이 요약되어 있는, <대학>과 <중용>을 꿰뚫는 말이다. <대학>의 핵심은 내 주변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는 인자함, 사랑, 자비, 恕서이고, <중용>의 핵심은 자기 삶의 중심을 잡고 진심을 다하는 중용의 마음, 忠충이다.


공자는 말하였다. 제자라면 마땅히 효도하고 공경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진이를 가까이하라고. 이어지는 <논어> <학이> 6장에 나오는 말이다. 이 모든 것을 행하고도 힘이 남으면 학문에 힘쓰라고 말이다. 학문이 제일의 목적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으로 해야 할 도리가 먼저라고 가르친다.


공자의 많은 가르침 중에 증자만은 그 핵심을 파악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증자가 매일 스스로를 살피는 세 가지 중, 첫째는 忠충, 매사에 중심이 잡혀있고 진심을 다하는지이고, 둘째는 信신, 말을 성실하게 하여 믿음을 주는지이며, 마지막이 스승에게 배운 것을 복습하는 것이다. 信신을 곧 恕서처럼 대인관계와 함께 하는 삶에서 필요한 일이라 본다면, 증자는 공자 사상의 핵심인 忠충과 恕서를 행하려 애썼으며, 그것이 적절히 된 이후에야 학문에 힘썼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의 제자답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악습을 고치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남에게는 가혹한 기준을 들이대지만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일 텐데, 거꾸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힘든 노력을 그치지 않는 이들이 있어 인간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증자의 省성, 스스로를 살피는 마음이 매우 크게 와닿는다.



믿음 대신 성실함을 논한 주자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증자가 말하였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의 몸을 살피니,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할 때 충성스럽지 않은가, 벗과 더불어 사귐에 성실하지 않은가, 전수받은 것을 복습하지 않는가이다." <논어> <학이> 4장


증자가 忠충과 信신을 행하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논어집주>를 쓴 주자는 與朋友交而不信乎(여붕우교이불신호)중에 信신을 '성실함'이라고 해석해놓았다. '믿음'이라고 해석하려는 내게 문득 '성실함'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주자는 믿음 뒤에 있는 성실함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믿음은 곧 성실함인 것일까? 친구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의 성실함에서부터 일까?


이 대목에서 信신을 '성실함'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중용>에 나오는 誠성 '정성/성실함'의 의미가 크게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중용>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문구가 바로 誠성이었다. 가장 자주 등장하고 모든 장구들을 이어주는 중심에 있는 말이었다.


誠者 自成也 而道 自道也 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 是故君子誠之爲貴

(성자 자성야 이도 자도야 성자물지종시 불성무물 시고군자성지위귀)

誠(성, 성실함)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고, 道(도)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誠(성, 성실함)은 만물의 시작과 끝이니,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실함을 귀하게 여긴다.


誠者 非自成己而已也 所以成物也 成己 仁也 成物 知也 性之德也 合內外之道也 故 時措之宜也

(성자 비자성기이이야 소이성물야 성기 인야 성물 지야 성지덕야 합내외지도야 고시조지의야)

誠(성, 성실함)은 스스로 자기를 이룰 뿐만 아니라 남을 이루어주니, 자기를 이루는 것은 仁(인,어짊)이고, 남을 이루는 것은 知(지, 지혜)다. 性(성, 본성)의 덕은 안과 밖을 합하는 도이니, 그러므로 때때로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중용> 25장


성실함은 인간의 태도이기도 하지만, <중용>에서는 만물의 시작과 끝, 자연의 성실함을 논한다. 초목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계절이 변하는 자연의 이치 모두를 성실함으로 묘사한다. 인간도 그런 자연의 일부이기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성실함이 더없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이 부분을 적은 자사(공자의 제자)는 성실함은 자기도 이루고 남도 이루어준다고 덧붙인다. 성실하게 행하는 것은 스스로를 仁인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은 知(智), 지혜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렇듯 나도 이루고 남도 이루게 만드는 성실함을 얘기한다. 나 혼자만을 위한 수행이라면 개인적인 상황과 일정에 따라 변명하며 소홀히 하기 쉽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쉽게 놓을 수 없게 된다. 부모가 되면 더욱 크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나의 태도와 습관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성실함은 나도 이루고 남도 이루게 한다


성실한 주인공이 주변을 변화시키는 그림책들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 <난 황금알을 낳을 거야!>


3333마리의 닭을 사육하는 농장이 있었다. 비좁고 지저분해서 닭들은 매일 기침을 하고 털이 빠졌으며 건강하지 못했다. 어느 날, 한 꼬마 닭이 "난 황금 알을 낳을 거야!"라며 닭들에게 큰 꿈을 선언한다. 모든 닭들이 꼬마 닭을 비웃지만, 꼬마 닭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진행해나간다. 꼬마 닭은 큰 도전을 위한 작은 단계들로 노래하기, 수영하기, 급기야는 나는 것까지 목표로 삼는다.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하지만, 꼬마 닭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닭장 안의 작은 홈을 매일매일 쪼아대어 구멍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육장 밖으로 오고 간다. 꼬마 닭이 노래도 부르고, 수영도 하고, 날기 연습도 할 때, 다른 닭들은 여전히 꼬마 닭의 성공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꼬마 닭이 파놓은 그 구멍을 통해 바깥세상을 오고 가게 된다.


꼬마 닭은 황금으로 된 알을 낳지는 못한다. 하지만 작은 꿈들을 이루려는 노력들을 해나가는 동안 다른 많은 닭들이 바깥으로 나오고, 결국 농장 주인은 닭들을 위해 농장 마당을 포함하는 매우 큰 사육장을 만들어주게 된다. 꿈을 위해 노력하다가 다른 중요한 것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마지막에 닭들은 꼬마 닭에게 묻는다. "황금 알을 낳았어?"


<난 황금 알을 낳을 거야!>라는 그림책의 내용이다. 이 책에서 '황금 알'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꿈과 목표'를 의미하기도 하고, '믿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꿈을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꼬마 닭의 모습과 그를 믿지 않는 닭들의 모습을 통해, 결국 모두들 꼬마 닭을 비웃었지만 꼬마 닭이 무언가 이루리라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닭들이 보여주는 관계는 매우 현실적이다. 우리가 꾸는 꿈을 독려하고 도와주는 이상적인 교우관계의 모습은 아니다. 꼬마 닭을 응원해 주거나 격려해 주는 친구들은 보이지 않는다. 낮춰보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주변의 사람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꼬마 닭이 이루어낸 결실이 더욱 통쾌하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꼬마 닭의 성실함은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주변의 모두가 자신을 믿게 만들었다. 거칠고 크고 허망한 꿈일지라도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 그 태도에서 바로 믿음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춘추전국 시대, 여러 나라가 최고 현자인 공자를 등용하지 않았던 상황이 생각난다. 그 당시의 공자는 '인의'로써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허황된 이상에 가득 찬 '꼬마 닭'이 아니었을까. 당대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결국 그의 '황금 알'은 아직까지 빛나고 있지 않은가! 그의 성실함은 그만 성인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수천 년 후 그의 사상을 읽는 우리에게까지 仁인과 智지, 어진 마음과 지혜를 남겨주고 있다.



<애너벨의 신기한 털실>에서 애너벨 역시 성실한 아이이다. 이 아이의 성실함은 털실을 짜는 것에 있다. 애너벨에게는 신기한 요술 털실이 있다. 그 털실은 짜도 짜도 계속 생겨나서 에너밸은 그 털실로 친구들에게도,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이웃에게도, 주변 모두에게 털실 옷을 짜서 선물한다. 그러한 털실 옷 덕분에 애너벨도 행복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된다. 어느 날 먼 나라의 귀족이 애너벨의 신기한 털실을 탐내어 훔쳐 간다. 하지만 훔쳐 간 털실 상자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털실 상자는 다시 애너벨에게 돌아온다.


왜 애너벨의 털실은 그녀를 떠나서는 신기한 요술 털실이 되지 않는 것일까? 애너벨의 털실은 그녀의 성실함과 주변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털실이 먼저 존재한 것이 아니라 애너벨의 마음이 마술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털실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준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를 훈훈하게 만드는 건 털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애너벨만이 가질 수 있는 털실이었던 것이다.


애너벨의 털실은 성실함으로 커지는 사랑과 나눔의 마음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누구나 어색해하고 낯설어했지만, 그녀의 꾸준한 나눔은 모두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자사가 말하는 仁인과 智지, 나도 이루고 남도 이루게 만드는 성실함의 놀라운 힘을 그리고 있다.



이불을 개는 사소한 습관


사람 간의 신뢰와 믿음, 그것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곁에서 오래 두고 지켜보면서,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성실할 때, 비로소 믿음의 싹이 자라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은 단순히 믿음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주변으로 번져나가 모두를 행복하고 따뜻하게 해준다.


성실함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태도다.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여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이기에 모든 회사가 바라는 인재상일 것이다. 하지만 성실함은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최소 21일, 100일, 1년 동안 하나를 꾸준히 해나가는 습관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나쯤 자신이 성실하게 행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타이탄의 도구들>이란 책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아침 의식이 있다고 말한다. 가장 사소해 보이는 습관은 '스스로 이불 개기'이다. 이불을 개는 성취감으로 시작하는 아침, 그 작은 습관이 쌓여서 더 크고 어려운 일을 이룰 수 힘과 의식이 생긴다고 한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공자, 자사, 증자는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침마다 이불을 개는 성실함이 자신을 얼마나 훌륭한 인물로 만들었는지를. 나는 장담할 수 있다. 그들은 필시 자신의 사소한 물건까지 잘 정돈하고 관리하는 사람이었다고. <중용>에 군자는 방 안에 혼자 있어도 누가 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주말 아침이다. 나의 이부자리는 어떤지 살펴보러 가야겠다. 이불을 정돈하면서 혼자 뿌듯해하고 싶다.

나의 작은 습관이 모이고 커져서 주변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털실이 되기를 바라며.

이전 06화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