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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언덕 Feb 24. 2021

내면을 보는 방법

<논어><위정>시기소이관기소유찰기소안 <동물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子曰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 人焉廋哉

(자왈 시기소이 관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인언수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하는 것을 보며, 그 이유를 살피며, 그 편안히 여기는 것을 관찰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는가!" <논어> <위정> 10장



공자는 <논어><위정>편 10장에서 '보는 것'의 단계에 대해 말한다.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시기소이 관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위정 10장) 그 하는 것을 보며, 그 이유를 살피며, 그 편안히 여기는 것을 관찰하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숨길 수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라 하고 있다. 공자는 이 짧은 문장에도 '보는 과정'의 순서를 놓치지 않는다. 그의 모든 문장이 그렇다. 세밀하게 살펴 순서와 과정을 한 글자 한 글자에 명시해 준다. 한 자도 허투루 읽을 수가 없다.


'보는 것'은 '視시-觀관-察찰'의 순서로 나아간다. 우리가 처음 볼 수 있는 것은 視시, 단순히 물리적으로 보는 경지다. '보일 示시'와 '볼 見견'이 합쳐진 글자다. 見견과 視시는 같은 상태다.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사람을 보거나 그림을 보거나 사물을 보거나, 눈으로 보는 경지는 단순한 알아차림의 상태다. 그래서 視시에서는 그 사람이 하는 행동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이 視其所以시기소이, 그 하는 행위를 보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觀관, 살피면서 보는 경지가 된다. 觀관은 앞선 두 글자와 똑같이 '본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視시보다 조금 더 자세히 보는 행위를 말한다. '황새 雚관'자와 '볼 見견'자가 합쳐져서 어떤 사물을 뚫어져라 보는 모습을 지칭한다. 이것을 두고 공자는 觀其所由관기소유, 조금 더 살펴서 보면 그런 행위를 하는 이유까지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눈으로 보는 것에 머물지 않고 머리로 이해하면서 보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관심을 조금 더 가지고 바라보면 그 사람의 행동 뒤에 숨은 원인과 까닭까지도 알 수 있다. 


세 번째가 察찰, 세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더 이상 눈으로 언뜻 보거나 사물을 주시하는 정도가 아니다. 察찰은 '집 宀면'자와 '제사 祭제'자가 합쳐져 있다.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는 만큼 꼼꼼하게 빠짐없이 두루 살핀다는 의미이다. 눈에서 머리로,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은 경건한 마음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상세하게 살피면 察其所安찰기소안, 그 사람이 편안히 여기는 상황,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공자가 안회의 모습을 살폈던 것처럼, 사람의 행동과 생각, 마음 배경까지도 우리는 찬찬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어찌 사람이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느냐며 공자는 묻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 보고 겪고 살피고 찬찬히 관찰하는 것에서 누구든 스스로를 숨길 수 없다. 언제든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본다'는 과정을 통해 공자는 공부의 방법과 사람의 태도에 대해 강조한다.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누구나 쉽게 하는 것은 아니다. 視시-觀관-察찰의 과정으로 '본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행동과 결과 이전의 원인과 배경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만 있으면 이미 시작된 것일까?




우리를 뜯어보게 만드는 책

앤서니 브라운 <동물원> 

'視시-觀관-察찰'의 보는 과정을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한 그림책 작가는 '앤서니 브라운'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다가(視시), 조금 마음을 두고 깊이 있게 살피다가(觀관), 나중에는 찬찬히 하나씩 하나씩 뜯어보게(察찰) 만드는 힘이 있다. 작가의 마술 같은, 때로는 숨바꼭질 같은 그림들이 어린이들로 하여금 그의 그림책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어린이들은 그의 그림책들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視시-觀관-察찰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동물원>은 한 가족이 동물원에 가서 우리에 갇혀 있는 여러 동물들을 보고 돌아오는 내용의 그림책이다. 이 단순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그의 그림들이다. 글은 단순한 이야기 전개밖에 담당하지 않는 반면에, 그림들은 주된 줄거리 외에 다양하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진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형제는 동물원으로 향한다. 꽉 막힌 교통지옥 속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운전자들, 동물원 매표소 앞에서 거짓말을 하며 표값을 깎는 사람들. 그들을 그리면서 작가는 바나나 무늬, 악어 다리, 소의 뿔, 매의 코 등을 중간중간 인간 신체의 일부로 만들어놓는다. 작가는 무엇을 묻고 싶은 것일까? 그림책 내내 작가는 한쪽 면에는 가족과 구경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다른 쪽 면에는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들을 그리고 있어, 동물들 만큼이나 사람들의 모습도 눈여겨보게 만든다.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무척 적막하다. 그들의 삶은 콘크리트처럼 차갑거나 대화할 이웃이 없거나 할 일이 없거나 너무 덥다. 반면에 그들을 바라보는 인간들은 우스꽝스럽다. 싸우거나 울거나 웃거나 또는 소리를 지른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동물인 것일까? 싸우고 있는 비비 원숭이를 보면서 엄마는 말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구나.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지만." 동물원 관람 후 아이는 이상한 꿈을 꾼다. 철창 안에 갇혀 있는 이상한 꿈. 그리고 묻는다. 동물들도 꿈을 꾸는지.


앤서니 브라운 <동물원> 중에서


책의 표지에서부터 내지의 햄스터 집, 마지막 장까지도 작가는 줄곧 무언가를 암시하며 그리고 있다. 흰색과 검은색의 줄무늬가 매우 인상적으로 보이는 책의 겉표지는 언뜻 보기에는 동물원을 상징하는 얼룩말 무늬 같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시 보면 감옥의 수감복처럼 느껴진다. 또한 철창 밖의 인간들과 철창 속의 동물들을 서로 상대편의 영역에서 조명하고 있어, 어느 쪽이 갇혀 있고 어느 쪽이 관람객인지, 어느 쪽이 동물이고 어느 쪽이 인간다운 모습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작가는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그림을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 줄곧 질문하고 있을 뿐이다. 자세히 봐주기를, 단순히 물리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보아주고, 세세히 살펴 깨달아주기를 말이다. 동물원은 어떤 곳인지, 누가 누구를 가두고 있는 것인지, 누가 더 동물적이고 누가 더 인간적인지 알아차리기를 바라고 있다.


아이들은 보통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세 번 이상 뜯어본다. 한 번 후루룩 읽은 다음에 찬찬히 다시 살펴본다. 혹시 숨은 그림은 없는지, 혹은 숨겨진 보물은 없는지 찾는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그의 그림책들은 보이는 것 너머 그 이면에 들릴 듯 말듯한 귓속말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른들 역시 아이들과 함께 그의 그림책을 보고 읽고 관찰하면서 가슴이 울렁이는 기분이 든다. 그것은 그가 숨겨놓은 의미를 발견했을 때에 오는 기쁨이면서, 그것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메시지이기에 오는 슬픔이기도 하다. 책 속에 숨은 보물을 찾았지만, 그 보물은 곧 내 삶의 아픈 면모와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視시-觀관-察찰'의 보는 과정은 표면을 넘어 내면을 보게 하는 눈으로, 우리의 밝은 면 속에 숨은 슬프고 어두운 면까지 보게 하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진실이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여하튼 <동물원>은 그런 책이다.




보이고 들리는 것 너머를 보도록



<논어> <위정> 10장에서 '視시-觀관-察찰'의 보는 과정을 통해 진실을 알 수 있음을 알았다. 진실을 숨기고 있는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을 읽으며 단순히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 이면을 살피며 찬찬히 뜯어보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했다. 공자는 '視시-觀관-察찰'의 보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단순히 '본다'의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진실'과 '앎'의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앤서니 브라운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

사과가 하나 있다. 우리는 사과의 겉만 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사과의 겉을 보고 속을 짐작하며, 더 나아가 사과가 자라는 토양과 강수량, 기후까지 짐작해볼 것이다. 그러한 앎의 단계를 공자는 '視시-觀관-察찰' 하나로 이야기하고 있다. 앤서니 브라운은 그러한 경지를 이해하고 있는 작가인지, 그의 그림책들은 여러 단계의 '봄'과 '앎'을 제시한다. 그림책 속에 숨은 진실에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앤서니 브라운의 다른 책인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청각적 정보를 시각화하면서 네 명의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분량의 한계로 여기에서 함께 다루지 못했지만, <동물원>과 함께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깨닫고, 보이는 것 너머 내면을 보게 되는 기회를 가져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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