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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언덕 Feb 11. 2021

나이가 드는 것은 비밀의 강을 만나는 일

<논어><위정>지우학이립불혹지천명이순종심소욕불유구 <비밀의 강>

나이 듦의 미학을 말하는 <논어><위정> 4장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스스로 섰으며, 마흔 살에 사리에 의혹이 없었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논어> <위정> 4장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논어> <위정> 4장에서 공자는 연령에 따른 삶의 방향을 안내하고 있다. 십대와 이십대에는 志于學지우학, 공부에 뜻을 두고 세상을 탐구하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깊이 있게 가지라고 말한다. 단순히 상급 학교에 가서 진지한 공부에 심취하는 것이 학문은 아니다. 나에 대해 묻고 세상에 대해 물으며,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모든 우리의 삶이 바로 학문이지 않을까. 공자의 학문은 '格物致知격물치지', '모든 주변의 사물이나 이치에 대해 궁구하여 앎에 이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학> 1장에 큰 공부의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있다. 사물의 이치가 깨달아지는 것, 그것이 바로 앎이며, 공부이고, 삶이다. 공자의 학문은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그렇게 삶에 대한 공부가 잘 진행되면 서른 살에는 스스로를 돌보고 세상에 우뚝 서는 어른이 된다. 스스로 선다는 것을 공자는 단 한 글자인 '立립'으로 정의한다. 스스로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눈에 들어오고, 경험도 어느 정도 쌓여서 어느 정도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 아닐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직장 경력도 쌓이는 30대. 그러한 경험과 연륜으로 내 삶의 방향을 잡아나갈 줄 아는 한 성인이 되는 것이 바로 '스스로 선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흔이 되면 이제는 不惑불혹, 미혹됨이나 삶에 의혹이 사라진다. 미혹이나 의혹이 없다는 것을 주자는 삶의 이치를 깨달아서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은 경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사십 대 정도 되면 어디에서든 권위가 있고 경제적 여유도 있는 나이이기에 유혹하는 것들이 많아서 '惑혹'이라는 말이 나왔을 거라 얘기한다. 부와 힘이 있는 나이이기에 그런 것에서부터 더욱 조심해야 하기에 不惑불혹, 미혹됨이 없다는 공자의 말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마흔이면 이제 그러한 유혹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며 자신이 정해온 삶의 방향대로 갈 힘이 있다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 한다는 공자의 조언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저절로 마흔이 되면 삶에 대해 돌아보며 자신을 다지는 시기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오십부터는 知天命지천명, 하늘의 뜻을 알게 되고, 耳順이순, 듣는 모든 것에 순리가 있음을 알게 되며, 從心所欲不踰矩종심소욕불유구, 마음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나는 것이 없게 된다. 하늘의 뜻을 헤아리게 된 이후부터는 어떤 삶이 펼쳐질까. 내 주변의 많은 어른들이 자식들이 독립하는 60대부터 진정 자유롭고 멋진 삶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분들은 공자가 말하는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이 아닐까.





비밀의 강

마저리 키넌 롤링스 <비밀의 강>

공자의 말을 따라 나이가 든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세상에 미혹되거나 의혹이 없고, 하늘의 뜻을 알게 되며, 듣는 모든 것의 순리를 알아차리고, 하고 싶은 대로 행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그것이 비밀의 강을 만나는 일이라 생각한다.


플로리다 외딴 숲에 나이 어린 칼포니아가 살고 있었다. 칼포니아는 타고난 시인으로 주변의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아이였다. 어느 해, 더 이상 마을에 생선이 잡히지 않게 되고 아버지의 생선 가게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다. 칼포니아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물고기라면 무엇을 물고 싶을지' 곰곰 생각한 후 미끼로 쓸 분홍 종이 장미를 만든다. 그리고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알버타 아주머니에게 어떻게 커다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아주머니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비밀의 강'이 있다며, '코 끝'이 가리키는 대로만 따라가면 된다고 알려준다.


칼포니아는 숲으로 들어가 코 끝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간다. 그러자 정말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강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커다란 메기들을 잡게 된다. 칼포니아는 낚싯대에 메기들을 묶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둑한 숲에서 커다란 부엉이, 검은 곰, 검은 표범을 만난다. 칼포니아를 위협하는 밤의 동물들에게 그녀는 가장 크고 싱싱한 메기들을 내려놓는다. 그녀의 선물에 숲속 동물들은 길을 비켜준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알버타 아주머니에게 가장 통통한 메기를 선물로 드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칼포니아는 아버지에게 메기들을 건네고, 아버지는 굶주린 이웃들에게 메기를 먼저 나눠주고 나중에 메기 값을 받는다. 그렇게 힘든 시절이 지나가고 마을의 형편이 차츰차츰 좋아진다.


마저리 키넌 롤링스의 그림책, <비밀의 강>의 내용이다. 환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레오 딜런과 다이앤 딜런의 그림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는데 여기에 그림들을 다 싣지 못해 아쉽다. 이야기 속에서 볼 수 있는 칼포니아의 행동들에서 나는 공자가 말하는 '나이 듦의 미학'을 읽는다. '세상에 미혹되거나 의혹이 없고, 하늘의 뜻을 알게 되며, 듣는 모든 것의 순리를 알아차리고, 하고 싶은 대로 행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경지', 그 모든 것을 칼포니아가 보여주고 있다. 바로 그녀 안에서 흘러넘치는 자존과 소통, 존중의 마음이다.


칼포니아는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어려운 시기가 마을에 닥친다. 하지만 칼포니아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임을 알고, 자신을 지켜주는 '비밀의 강'을 만난다. '코 끝'을 따라가서 '비밀의 강'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코는 자아를 상징한다. '코 끝을 따라 간다'는 것은 자기 내면과 접속하여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를 이해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은 立립, 삶의 주인으로 바로 서서, 不惑불혹, 미혹됨이 없이 중심을 잡고 간다는 것과 통한다.


칼포니아는 소통의 달인이다. 이야기 도입부에서 작가는 칼포니아를 위대한 시인이라 묘사한다. 주변의 모든 것과 소통할 줄 아는 점에서 시인이라 표현했을 것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친절한 언어로 동물들 및 자연의 모든 것과 이야기 나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내면에서 물고기와 교감하고 소통한다. '내가 물고기라면 무엇을 물고 싶을까?'하며 물고기와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하고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물고기와 접속한다. 내면과의 교감으로 얻어낸 것은 매우 독특한 미끼인 분홍장미였다. 그녀만이 준비할 수 있는 미끼이며 그녀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그것은 물고기와도 통했다. 메기를 잡는 과정과 숲을 통과해서 나오는 속에서도 칼포니아는 주변의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대화를 한다. 비밀의 강에서 만난 나룻배와 대화하고, 메기들에게 잡혀달라고 부탁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낚시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절로 소통하게 되는 경지는 공자가 말하는 耳順이순, 귀로 듣는 것은 모두 이해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귀로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마음으로 듣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칼포니아는 존중하는 삶을 산다. 칼포니아는 삶의 질서 및 자연의 질서를 존중할 줄 안다. 칼포니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알버타 아주머니에게 조언을 구한다. 마을과 세상의 질서를 존중하여 아주머니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비밀의 강을 찾아낸다. 숲에서 만난 부엉이, 곰, 표범 역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다. 숲의 주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나눈다. 마을로 돌아와서는 지혜를 나눠준 알버타 아주머니에게 가장 먼저 메기를 드리는 것 역시 질서를 존중하는 면모이다. 이러한 존중하는 마음은 공자가 말하는 知天命지천명, 하늘의 뜻을 알고, 耳順이순, 듣는 모든 것에 순리가 있음을 알며, 從心所欲不踰矩종심소욕불유구, 마음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나는 것이 없음과 통한다.


자신의 길을 알고 미혹됨 없이 중심을 잡고 갈 줄 알며, 주변의 마음과 하늘의 뜻을 알아차리고, 모든 것들의 순리를 알며, 자신이 행동하는 바에 문제 되는 것이 없다. 자존, 소통, 존중으로 나타나는 칼포니아의 마음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나이 듦의 미학'과 닮아 있다. 그것이 가능한 칼포니아와 같은 사람은 자기 내면의 '비밀의 강'을 만나게 된다. 공자 역시 자신의 비밀의 강을 만나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내 안의 강을 만나자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스스로 섰으며, 마흔 살에 사리에 의혹이 없었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논어> <위정> 4장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공자는 나이가 들면 의혹이 없고 하늘의 이치와 세상의 순리를 알게 되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문제 되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칼포니아처럼 자기 내면의 비밀의 강을 만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는 것은 비밀의 강을 만나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의 미래보다는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살피며, 자녀와 미래 세대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 나만 바라보며 사는 삶에서 남과 함께 하는 삶으로 변화하는 것, 주변과 소통하며 전체의 질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이 든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서 60부터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공자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약간은 어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칼포니아처럼 해보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칼포니아처럼 나의 중심을 잡고, 소통과 존중의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는 느린 걸음을 걸어보자. 그것이 곧 '비밀의 강',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으로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고요하고 신비로운 비밀의 강을 만나, 한 해 한 해 나이 듦을 천명과 순리를 이해하는 축복으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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