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언덕 Jan 27. 2021

황금 세상 저절로 얻는 사람

<논어><학이>온량공검양이득지 <내복에산다><바보이야기>

저절로 얻는 사람


子禽 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 必問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자금 문어자공왈 부자지어시방야 필문기정 구지여 억여지여)

자금이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께서 이 나라에 이르셔서 반드시 그 정사를 들으시니, 구해서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주어서 되는 것입니까?"


子貢曰 夫子 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자공왈 부자 온량공검양이득지 부자지구지야 기저이호인지구지여)

자공이 말하였다. "공자는 온순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양하여 이것을 얻으시는 것이니, 공자의 구하심은 다른 이들이 구하는 것과 다르다." <논어><학이>10장


자금과 자공, 공자의 두 제자가 묻고 답한다. 공자께서는 어떻게 가는 곳마다 왕들과 정사를 논하게 되는지를 말이다. 자공은 공자가 지닌 온순하고 어진 성품,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양하는 태도 때문에 왕들이 정치에 필요한 조언을 구하는 것이라 말한다. 溫良恭儉讓以得之(온량공검양이득지), 온순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검소하며 겸양하기에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왕들과의 갖게되는 공자의 회담은 공자가 스스로 구해서 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주어서 되는 것일까?



춘추전국시대 어느 왕도 공자를 등용해서 그의 사상대로 정치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공자는 노나라 출신이지만 노나라에서도 그가 말하는 모두를 실현할 수는 없었다. 노나라 왕 소공이 공자를 대우하고 그의 사상대로 정치를 펼치고자 하였으나, 반란이 일어나 뜻대로 하지 못했다. 제나라 왕 역시 공자의 박학다식함과 인품에 끌리지만 다른 신하들의 견제로 공자를 등용하지 못한다. 공자는 14년 동안 위, 송, 조, 정, 진, 채 등의 여러 나라를 떠돌면서 그가 주장하는 덕치를 채택할 것을 여러 왕들에게 건의한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공자의 사상을 반영하지 않는다. 덕치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는 나라의 기틀이 되는 사상으로는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통치체계로 실질적이지 않다는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크고 작은 나라들이 금새 생성되고 사라질 때였기 때문에, 쉽고 빠른 통치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공자가 지나는 길이면 그를 불러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를 묻곤 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사상가'들의 시대였다. 큰 중국 대륙이 조각조각 여러 작은 국가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지식인들이나 정치가들은 원하는 나라에 가서 자신의 이상과 계획을 설명하고 자신을 등용해주기를 요청했다. 그 나라에서 등용되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 가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설파하면 된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쳤고 그로 인해 제자백가들이 나타났다. 공자를 비롯해 노자, 묵자, 순자, 관자 등 정말 여러 사상가가 활동했던 시기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 사상가들의 말을 듣고 제대로된 정치를 해보고자 했을 것이다. 사상가들과 정치가들의 자유로운 교류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라면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을까. 그것은 자공의 말에서처럼,  사람의 인품과 영향력에 기인했을 것이다. 공자가 군자로서  노력했던 모습, 온순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소하며 겸양하고자  태도는 여러 제왕들이 그를 만나고 싶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러기에 제자가   명에 이르고 가는 곳마다 정사를 논의하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인품을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그의 생애 내에 나라의 기틀로 적용되지 못했으니, 그는 그가 정말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도덕 정치의 실현을 위해 나라의 군주를 설득하기 보다 제자들을 키워 그들로 하여금 후대에 전승되도록 한 전략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후대에 제자들에 의해 공자의 덕치주의는 중국과 한국, 아시아 동양 사상의 기틀이 되기 때문이다.



공자는 사람과 기회를 '저절로 얻는 사람'이었다. 그의 덕치가 춘추전국 시대 내에서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군자의 길을 가려고 노력한 점에서 여러 사람에게 흠모와 존경의 대상이 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저절로 얻게 되는 방법'을 공자는 자신의 삶 속에서 보여준다. 한 나라의 재상이 되기 위해 재상을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 그 이상의 것을 보아야 목표 근처에 갈 수 있다. 공자는 도덕에 기반한 나라를 위해 먼 미래를 본다. 제자들을 키우고 그들을 가르치면서 언젠가는 인간의 인의예지가 바로 서는 그런 나라를 구현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렇게 먼 길을 떠날 때 그가 원하던 것이 저절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단히 스스로를 다잡고 절차탁마 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저절로'라는 것은 내가 신이 나고 흥에 겨워 '절로' 움직일 때 일어나는 것이기에.




내 복에 산다


복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내 복에 산다>라는 우리 나라 민담이 대표적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세 딸에게 묻는다. "누구 덕에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으냐?" 큰 딸과 둘째 딸은 "다 아버님 덕분입니다."라고 말하지만, 막내 딸은 "제 복에 사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는 막내 딸을 내쫓는다. "어디 네 복에 잘 먹고 잘 사는지 한 번 보자!" 막내 딸은 집에서 쫓겨나 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느 작은 집을 발견하고 잠을 청한다. 숯을 굽는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집이었다. 막내 딸은 그 숯구이 총각과 결혼하고 시어머니를 모시며 산다. 어느 날 막내 딸은 시어머니 대신에 숯구이 총각이 일하는 곳에 도시락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총각 일터의 이맛돌에 황금덩어리가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숯구이 총각은 황금덩이를 잔뜩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황금을 팔아 부자가 된 막내 딸은 거지들을 위한 잔치를 열고, 그때 거지가 된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 아버지가 막내 딸을 알아보자, 딸이 말한다. "거봐요. 아버지. 제 복에 산다고 했지요."


<내 복에 산다> 혹은 <감은장 아기>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이야기다. 매우 단순한 전개의 민담이지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막내 딸은 어떻게 잘 살 수 있게 된 것일까? 정말 행운아, 복덩어리였던 것일까?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일까? <내 복에 산다>는 <오늘이>와 더불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옛이야기다. 민담은 구비전승 되어오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살아남기 위해 상징으로 표상하고 이야기의 뼈대만 남겨놓기 때문에 맥락 속에서 이야기를 파악해야 한다.


막내 딸은 부모의 잘못된 질문(이런 질문은 도대체 왜 하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는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한다)에 당당하게 소신을 답할 줄 아는 사람이다. 덕분에 집에서 쫓겨났지만 용서를 빌지 않고, 뚜벅뚜벅 숲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 줄 아는 사람이며,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인 것이다. 숯구이 총각과의 결혼은 그녀가 삶에서 오는 기회를 주저하지 않고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잣집 딸이었기 때문에 숯구이 총각과 결혼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막내 딸은 자신의 처지와 기회를 제대로 인식할 줄 안다. 부엌에서라도 잘 수 있는 의지가 있으며, 황금 덩어리를 숨겨놓은 보물같은 사람을 알아볼 정도의 안목이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복과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막내 딸은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도전하며 앞으로 전진할 줄 아는 행동력 있는 사람이었다.


'내 복에 사는 사람'은 '저절로 얻는 사람'이다.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에 삶 속에서 부딪혀가면서 복을 얻는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담대히 받아들이고 불평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선에서 해나간다. 그러한 용기와 추진력이 바로 복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우리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감은장 아기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나가고 그 안에서 인연을 만나며 삶 속에서 행운을 얻는다. 주저 앉지 않고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헤쳐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절로 얻는', '내 복에 사는' 능력자인 것이다.


유리 슐레비츠 그림/ 아서 랜선 글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


세계에 많이 퍼져있는 바보 이야기들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바보들은 어떻게 행운을 얻고 공주와 결혼하게 되는 것일까?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인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도 그런 바보의 이야기다. 어느 나라의 왕이 하늘을 나는 배를 타고 오는 왕자에게 공주를 주겠다고 선포한다. 바보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자기도 맛있는 음식도 먹고 공주와 결혼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무작정 길을 떠난다. 과정은 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바보는 하늘을 나는 배도 구하고 임금의 시험도 통과하며 공주와 결혼하여 잘 산다.


바보의 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보는 무엇을 하든 늘 항상 즐겁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는 예측불가능한 길에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그들에게 있는 장애를 편견으로 보지않고 있는 그대로 보며 친구로 삼는다. 어려움에 걱정하지 않는다. 삶이 주는 모든 도전과 시련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가 보여주는 즐거운 마음과 의연한 태도가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바보처럼 보여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때 원하는 것을 저절로 이룰 수 있다.



황금으로 가득한 세상


공자 역시 인연과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다고,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끝없이 노력하고, 혼란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한 발 한 발 힘들게 나아갈 때, 그것이 바로 '황금 돌'과 같은 기회를 만들어낸다. 공자는 노력파 중에서도 최고 노력파였으니, 어느 순간 저절로 얻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의 복과 덕은 지금도 아직도 빛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까? 내 복에 산다고?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고?

어쩌면 내 삶에 존재하는 황금돌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돌을 찾아보자. 그것은 당신일지도 혹은 나일지도 모른다. 그 황금빛과 함께 라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이전 09화 나이가 드는 것은 비밀의 강을 만나는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