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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Apr 15. 2024

*문해력과 난독증의 혼용

최근까지 한국에는 난독증이나 신경다양성에 관한 책이 거의 없었다. 가끔 찾더라도 주로 미국의 난독증 전문가 한 분의 책을 바탕으로 쓰였거나 번역이 된 경우가 많다. 즉, 책은 다르지만 내용의 출처는 같은 곳에 토대를 한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이 의사나 전문가들에 의해 쓰인 책들이라 전문적인 용어들도 너무 많았다. 이는 난독증이 우리에게 더욱 멀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에도 난독이나 신경다양성에 관한 책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기쁜 마음으로 사서 읽고 있다. 하지만 어떤 책들은 읽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오히려 독자들에게는 혼동의 여지를 더 주는 게 아닌가 우려되기도 했다. 


한 책에서는 경계성 지능과 난독증이 같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 책의 의도는 경계성 지능이었던 학생에게 난독증상이 있었다는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또 어떤 책에서는 선천적 '난독증' 후천적 '난독'에 대해서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쉬운 말을 모호한 구분으로 어렵고 더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난독증이 있으면 글을 읽거나 쓰는 게 어려울 수 있으므로 문해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글을 많이 읽지 않고(오디오북이든 문자형태든), 단어도 많이 몰라 글을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문해력이 떨어지는 경우다. 태생적으로 우뇌가 두드러지게 발달하고 언어처리하는 영역이 활성화되지 않는 게 아니라.


이 두 경우는 출발점부터가 완전히 다른 것인데 한국어로 이 둘을 '난독증'과 '난독'이란 말로 헷갈리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하나는 '난독증', 다른 하나는 '문해력이 떨어진다'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작업기억이 좋지 못해서든, 난독증이 있어서든, 단어를 많이 몰라서든, 영상매체에 익숙해서 글을 싫어해서든, 자연스레 이어지는 결과로써 말이다. 


'난독증'이 있으면 글을 읽기가 쉽지 않으니 글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초기에 적절한 개입이나, 오디오북이나 다른 보조앱의 방법으로 어휘를 많이 접하지 않으면 문해력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난독증'이 있다 해서 문해력이 당연히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계성 지능, 자폐스펙트럼(아스퍼거), ADHD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비슷하거나 다른 난독'증상'을 보이는데 다시 한번 '난독증'과 구별해서 난독증을 오해하지 말기를 희망한다. 


경계성 지능이라는 것은 흔히 IQ로 표시되는 지능 측정 검사에서 중증은 70~79, 경증은 80~84 정도를 말한다. 그냥 쉽게 말하면 '머리가 좋지 않다'는 말로 이해한다. 글을 읽고, 읽은 내용을 기억하며, 정리하는 처리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까지 읽은 것 혹은 들은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다음 과정을 처리할 수 있는데 여기에 필요한 기억을 작업기억이라고 한다. 작업 기억이 좋지 못하면 언어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정보도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종종 언어를 읽는 것도 느리고,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힘들며, 단어를 기억하거나 인출하는 것도 힘들다. 따라서 경계성지능에서도 난독증상을 보이게 되는데 이 경우는 이러한 어려움이 어느 정도 예측될 것이다. 따라서 이를 "난독증"이라고 진단 내리지는 않는 것이다. 


경계성 지능 = 난독증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있었다면 오늘부로 지우자. 경계성 지능 = 난독증 (X)


난독증이라고 진단명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머리가 나쁘지 않은데, 혹은 종종 IQ가 (아주)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글과 관련된 많은 것을 어려워해야 한다. 말도 잘하고, 아주 논리적이고, 책도 좋아하는데, 한글을 떼는데 유독 오래 걸리거나, 외국어 학습을 너무 힘들어하거나 거부하기도 하며, 단어 인출 혹은 읽은 내용을 기억하는데 어려움이 있어하면 그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어려움인 것이다. 그 경우를 "난독증"이라고 한다. '난독증'의 핵심은 이 '예측하지 못했음'에 있다. 뜻밖에 맞닥뜨린 어려움이란 말이다. 


종종 난독증과 ADHD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두 가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난독증이 있어서 글을 읽는 게 어렵다면 교실에서 하는 모든 수업이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고, 이러한 경우에 ADHD로 잘못 진단명이 내려지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경우 ADHD약을 먹고 아무리 치료를 해봐도 나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면, 그 아이는 ADHD가 아니라 '난독증'이 있어서 난독증에 대한 도움을 주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경우는 ADHD, 자폐스펙트럼, 난독증에서 종종 공통적으로 보이는 사고의 경향이다. 나는 정신과의사도 아니고, 초등학교 선생님도 아니라서 중증 자폐나 심각한 ADHD를 가진 사람들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거의 표시 나지 않는 예전에 아스퍼거스, 혹은 고지능 자폐라고 불리던 자폐스펙트럼은 굉장히 많이 본다. 그리고 공격적인 성향은 없지만 ADHD의 성향은 다분히 지니고 있는 학생들이나 성인들도 본다. 이들 중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공간적, 패턴적, 이미지적 사고자연스러워했다. 


이들 중에는 글 읽기가 힘들어서 중학교 때까지는 전교 1등을 하다가, 고등학교부터는 노력은 포기했거나, 자퇴를 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열 번 보면서 공부할 것을 자신은 백 번씩 보면서 자신의 약점을 (완전히는 아니라도) 극복한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이들은 내가 글로 표현할 수는 없는 정말 다른 방식의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공감각(synestheisa)이 엄청나게 발달한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들이 문자가 우세하고, 글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은 곳에서 살았으니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을지는 모르나 이제는 그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기에는 그들의 능력이 너무나 필요한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어떤 학부모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애는 너무 창의적이어서 그 학교에서 그림도 제일 잘 그리고, 악기도 잘 연주하고,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던데요?" 물론, 이 세상에는 밥맛 떨어지도록 재수 없게 모든 게 다 완벽한 사람들이 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가면을 쓰고 (이걸 영어로는 masking이라고 한다) 매일매일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야 한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난독증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가면서 거의 없어지는데 (밖으로 잘 표시 나지 않는 난독증의 다른 어려움은 남을지라도), 이 아이가 매일매일 자신 안에서 난독증과 자폐성향을 마스킹을 하며 살고 있는지, 정말로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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