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테베이터?..난독증이죠?"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충격적인 사건 이후 난독증이 생겼다는 주인공의 대사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난독증은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난독증을 어떻게든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1. 가족력 - 먼저 나와 내 배우자, 혹은 나와 상대의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 나와 상대의 형제자매 중에 난독증이 있다면 내 아이에게 난독증이 있을 확률은 굉장히 높다. 부모가 난독증이 있으면 아이가 난독증이 있을 확률은 최소 50프로 이상은 된다. 우선 이걸 기억하면 내 주위의 난독증을 알아보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될 것이다.
2. 초등 저학년 - 한글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난독증이 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특징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부모님들은 아이가 2~3살 무렵부터 난독증이 있는지 검사를 받으러 간다고도 하지만 그건 사실 너무 이르다.
한글은 익히기 아주 쉬운 문자여서 익히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한글 떼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거나, 자음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비슷하게 생긴 모음들은 유독 힘들어한다면 그 아이는 난독증이 있을 수 있다. 난독증이 있어도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그림처럼 통으로 글을 다 외워버려서 난독증이 있는지 거의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난독증이 있는 경우에 수에 대한 개념이나 계산을 힘들어하는 난산증이 같이 있는 경우도 자주 있다. 수를 셈할 때 순서대로 세면서 하지 않으면 빠른 계산을 어려워하거나 수를 어림하여 보는 것을 힘들어한다. 셈을 할 때 손가락으로 계산을 하거나 숫자를 순차적으로 1씩 올라가면서 더하거나 한다.
3. 영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 한글은 비교적 불규칙적인 소리가 적어서 좋은 머리로 극복했다 해도 영어에서는 종종 어쩔 수 없이 난독증 표시가 어느 정도 나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들에서 난독증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영어는 영어스럽지 않은 소리나 문자의 조합이 너무 많고, b, d, p, q, u, n 등 헷갈리게 생긴 글자도 많다. 게다가 하나의 모음이 낼 수 있는 소리도 마음대로 일 때도 많다. 이렇다 보니 특히 영어를 외국어로 배울 때 한글을 배울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들켜버리기도 한다.
떠듬떠듬 힘들게 읽거나, 읽기를 아예 거부해 버리는 아이들도 있고, 아예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몰라 그냥 단어를 사진처럼 찍어 발음도 단기 기억으로 외워서 매칭시키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경우, 단어 시험은 백점 받지만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이 외웠던 단어를 깡그리 다 까먹어버린다. 이런 아이들이 있다면 난독증이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 물론, 글이 아닌 말로 학습을 할 때는 (아주) 우수한데 글로만 하면 이런 일이 생기는 경우에만 난독증이 해당된다는 것도 기억하자.
3-1. 한글이나 영어를 배우는 단계에서 난독증이란 걸 알게 되었다면 최대한 빨리 읽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영어가 한글보다 어렵긴 해도 음소의 조합과 소리규칙 등을 가르쳐주고 음절별로 읽는 도움을 주면 읽는 것은 가능해진다.
4. 중고등학교 - 초등학교를 넘어가면 수업 시간에 소리 내어 무언가를 읽는 일이 거의 없어지므로 상대가 글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는지 사실상 알기 어렵다. 그리고 한글도 그쯤에는 거의 다 익혀서 맞춤법을 틀리게 쓰는 경우도 잘 없다. 그리고 글을 쓰더라도 대부분 컴퓨터로 쓰니 오타를 다 잡아줘서 알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친구끼리 문자를 보낼 때 항상 오타가 많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 두 번이 아니라 늘 그렇다면 난독증일 가능성이 있다.
글을 읽고 요약하거나 정리해야 되는 과제를 아주 힘들어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독증이 있는 사람 중에 아주 논리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에세이를 월등히 더 잘 쓰는 사람들도 많다. 멍청한 사람들은 아니니 생각을 머릿속에서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글로 옮겨내는 것은 쉽지만, 거꾸로 문자를 보고서 해독하는 것은 힘들어하는 것이다.
시험을 보면 푼 것은 다 맞는데 늘 시간이 부족해서 다 풀지 못한다면 그것도 난독증이 있어서 일 수 있다.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은 해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난독증이 없는 사람들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외국 여러 나라에서는 난독증 진단을 받게 되면 대학교까지도 시험 시간을 더 받을 수 있지만 많은 학생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멍청하다고 생각할까 봐 추가 시간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점수를 조금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국어는 잘하는데 수학은 점수가 월등히 낮거나 아주 힘들어한다. 수학 문제를 공식을 외워서 풀면서 답을 낸다거나 종이에 적어서 풀기는 가능하지만 암산으로 수를 계산해야 하거나 빠르게 곱셈을 해야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쉬워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난산증의 영향인 것이다.
항상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은 오르지 않는 친구들 중에 너무나도 4차원적으로 창의적인 사람들이 있다면 난독증이 있을 수도 있다. 일단 아주 특별나게 혹은 특이하게 창의적이다라고 하면 난독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봐도 괜찮을 것이다. 아주 많은 예술가들이 난독증을 가지고 있으니까.
종종 빛과 소리에 아주 예민한 사람들, 신발 끈이나 바지 끈 묶는 걸 할 수는 있지만 잘하지는 못하거나 풀린 끈을 신발 안에 집어넣어 신고 다니거나, 운동을 아주 잘 못하거나 하는 경우에도 난독증이 있는 경우들이 자주 있다.
5. 성인 - 회사에서 보고서를 써서 제출해야 하는데 엉뚱한 숫자나 정보를 넣어 실수를 자주 한다거나 많은 양의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너무 피로하다면 난독증일 수도 있다.
난독증도 신경다양성의 일부라서 종종 자폐스펙트럼(우영우 변호사처럼 표시가 나지는 않더라도 시끄러운 소리를 힘들어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하고, 상대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거의 외워서 하는 식으로 정해놓은 답변 안에서 하고, 동물과의 교감을 아주 잘하고, 농담을 잘 못 알아듣거나 언제 웃어야 하는지 타이밍을 놓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는 걸 너무나 싫어하는 등 얼핏 보면 알기 어려운 많은 경우)이나 ADHD와 겹치는 부분들이 많다. 즉, ADHD와 자폐스펙트럼이 있다면 난독증이 함께 있을 확률도 매우 높다는 것이다.
길 찾는 걸 정말 잘 못해서 길을 헤매는 적이 많거나,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약속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나가지 않으면 불안하고, 뭔가를 기억해야 할 때 경험하지 못했거나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고, 전체적인 계획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는 쉽게 내지만 순서대로 차근차근 일을 처리해 가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느껴지거나 하면 난독증일 수도 있다.
말을 할 때 적절한 단어를 잘 생각해 내야 하는 단어 인출이 힘들거나, 음절 수나 소리가 비슷한 단어를 헷갈려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영어에서는 volcano / tornado 같은 단어들을 참 헷갈려한다고 한다.
난독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하거나, 글을 못 읽거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하는 것이 주된 특징이 아니다. 난독증이 없는 사람들도 어휘력이 부족하면 글자를 읽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난독증이 있는 사람도 읽기를 힘들어할 때 도와주지 않아서 어휘력이 떨어지게 되면 문해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난독증은 문자라는 암호를 해독하는 게 힘들다는 것뿐이지 말로 했을 때는 굉장히 논리적이거나 오히려 어휘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는, 난독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광범위하고 우리 주위에 굉장히 많다. 최소 5명 중 한 명.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를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이 교육해서 조직에서 필요한 훌륭한 부품을 만드는 사회에서 불편한 점이 좀 (많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사회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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