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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Apr 08. 2024

난독증 어그로

원샷한솔이란 유튜버가 있는데 그는 후천적으로 시각을 거의 잃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한솔님의 입장에서 새롭게 보게 되어 가끔 그의 영상들을 본다. 


한솔님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방송에 몇 번 출연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더 이상은 출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데, 그 이유가 방송의 설정이 매번 너무 심하다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컷~ 다시. (버스에 올라타 카드를 찍는 장면에서) 시각장애인이 버스 카드를 너무 한 번에 찍으면 안 되지 않겠어요. 다시 더듬더듬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컷, 너무 표정이 밝은 것 같아요... 컷!..." 


그쪽에서는 그쪽대로 시청률이 나와야 하니 어쩔 수 없기도 했을 테지만 시작장애인의 진정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하나의 '드라마'를 찍은 거였다. 


같은 맥락에서 '금쪽이 난독증'도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내가 난독증에 대해 얘기를 하면 거의 대부분이 "아~그 금쪽이에 나왔던 그거..."라면서 금쪽이를 언급한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난독증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영상을 보지 않은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금쪽이 난독증'이라고 치면 바로 나올 것이니 우선 그 영상을 먼저 보면서 자신이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보시라. 


나는 보는내내 설정이 너~무 심하다고 느꼈다. 그 아이의 아빠가 읽는 게 잘 안된다라며 나온 '설정'에서 못 읽었던 메뉴는 '타코 카르니타스'였다. 솔직히 내가 그 상황이었어도 주위에 카메라는 여러 대 돌아가고 있고, 생전 태어나 처음 보는 메뉴를 읽어야 했다면 나도 '카라니카스, 카르니사스, 카다르니스...' 이거 뭐야?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아빠는 천천히 잘 읽으셨다. 그걸 빠르게 아무렇지 않게 읽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장면의 설정은 아빠가 글을 잘 못 읽어야 했었다. 그래야만 난독증이 유전된다는 걸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이 아이는 난독입니다"라고 할 때는 침울한 음악, 고개를 떨군 아빠, 한숨 쉬는 출연진들, 진지하고 안타까운 얼굴들, 그리고 계속해서 나오는 단어는 '문제', '극복', '어려움', '장애'... 


사람 셋만 모이면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을 바보나 문제아 만들기는 정말 쉽다더니 그런 꼴이다. 내가 말하는 건 거기 나온 아이가 난독증이 없는데 있다고 했다거나, 아빠가 글을 잘 읽는데 문제가 있는 척 만들어 화가 났다는 게 아니다. 난독증이 마치 문제가 있는, 조금 모자라는 사람인 것처럼 보는 이들이 느끼게끔 한 방송의도에 분노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가 글 읽기를 힘들어해서 난독증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청소년과 성인의 난독증 중 글을 여전히 읽지 못하는 비율은 1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나머지 99퍼센트는 난독증이 사라지거나 "치료"된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난독증의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산다. 글을 읽지 못하는 게 성인 난독증의 큰 특징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내가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누누이 말하고 있지만 난독증은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난독증 자체는 장애가 아니다. 왼손잡이가 장애가 아닌 것처럼. 


왼손잡이를 부끄러워해야 하던 때가 분명 있었다. 사회가 그걸 부끄러워해야 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난독증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난독증은 태어나기를 시각적인 사고에 적합한 두뇌로 태어난 것이다. 


문자의 시대에 태어나서 문자로 하는 모든 학습에 뒤처지면 문제가 있는 거로 치부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자가 우세하지 않던 문자 이전의 시대에 불을 발견하고, 동굴 벽화를 그리고, 기계를 발명하고, 엄청난 예술 작품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난독증이었을 것이다. 그런 두뇌가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문명의 시초였을 것이다. 


곧 문자의 시대는 끝나는데 아직도 난독증이 글을 빨리 못 읽으니, 글로 읽은 내용은 잘 기억하지 못하니, 단어를 빨리 인출하지 못하니, 외국어 학습이 어려우니, 맞춤법에 맞춰 글을 잘 쓰지 못하니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인가? 


난독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두뇌가 이런 일들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의 대부분은 부분적인 것보다는 총체적인 것을 보고, 글이나 선형적인 사고보다는 이미지나 패턴적, 비선형적 사고가 더 쉽기 때문이다. 문자의 시대가 저물면 이러한 사고가 정말 많이 필요하게 된다. 이들의 약점이 곧 큰 약점이 아닌 시대가 올 것이다. 난독증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힘들어야 했던 교육 시스템을 개탄하고 고쳐야 한다


기성복에 여성 사이즈가 55만 있고, 그걸 사회가 정상으로 간주한다면 44, 66, 77인 여성들은 모두 비정상이어서 살을 억지로 찌우거나 빼야 하는 걸까? 당연히 다양한 체형을 위한 여러 가지 사이즈가 존재하는 게 맞지 않은가? 


난독증도 너무 당연한 거다. 왜 모든 사람이 글로 생각해야만 옳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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