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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Mar 25. 2024

난독증은 아닌데  시험 성적이 안 나와요

우리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눌 때 어디서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서부터가 비정상이라고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도 실은 다 좋거나 이상적인 것이 맞을까?


내가 "정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건 언젠가 "장애"에 관한 글을 쓰던 때였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마사스 빈야드(Marth's Vineyard)라는 섬에는 1900년대가 되기 전까지 청인들과 농인들이 함께 살았는데 그곳에는 농인들의 수가 전체 인구의 1/4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곳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수어를 만들어서 사용했고, 청인들끼리도 자연스럽게 수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곳의 농인들의 소득은 청인들보다 적지 않았고 그 섬의 가장 부자였던 사람은 농인의 부모 아래 태어난 자신도 농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외부인들은 그들이 우생학적으로 열등하다 여겼으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불임시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섬에서는 청인과 농인 중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가??


난독증은 비난독증을 정의 내리는 것만큼이나 다양하다. 난독증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을 말해보라고 하면 뭐라고 할 텐가? 난독증도 수많은 정의와 증상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거나 깔끔하게 이거다라고 말하기에는 참 애매한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글을 눈에 띄게 잘 읽지 못하는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에서 범주를 조금만 더 넓히면 문자를 읽으면서 하는 학습이나 업무, 혹은 다른 일상적인 일에도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보인다.

그중 예술에 재능이 많았던 두 아이에 대해 얘기를 해 보려고 한다.


한 아이는 그림에 뛰어났지만 심리적으로 스트레스 레벨이 높아 보였다. 악몽을 자주 꿨고, 차근차근해나가야 하는 과제가 많아지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글을 못 읽는 것은 아니지만 이 아이도 글을 이용해 내용을 파악하는 용으로 쓰는 것 같았다. 즉, 문맥의 흐름에 지장을 받지 않으면 kitten (새끼 고양이)을 보면서도 머릿속에는 (baby cat)으로 이해하고 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공부를 할 때도 문맥이 없는 단어만 외우기보다 이야기 속에서 단어를 외우는 걸 편해했다.


이 아이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고, 공부를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점수가 낮게 나온다면. 우선 이 아이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과제나 학습을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던지 스스로 하던지 조금씩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양을 정해놓고 해 나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게 생각만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인스턴트 음식과 가공된 음식을 최대한 피하면 큰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많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주위에서 바꾸는 사람을 극히 적게 보았다.  


다른 한 친구도 마찬가지도 아주 예체능에 뛰어났다. 이 친구에게는 숫자도 색깔로 느끼는 공감각이 있었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거나 기억할 때는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영상처럼 떠오른다고 했다. 언어능력도 월등하게 뛰어나서 문맥적인 이해나 해석도 정말 멋들어지게 잘했다. 이야기가 있는 역사도 잘했고, 리더십도 뛰어나서 전교회장도 했다.


그런데 시험문제만 풀면 소나기가 내렸다. 말로 읽어주면 다 잘 푸는데 문제를 글로 보기만 하면 엉뚱한 답을 쓰거나, 문제를 건너뛰거나, 답 체크를 잘 못했다. 가끔은 한 페이지를 통으로 건너뛰거나 한 문제를 지나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자꾸 훈련을 하다 보니 나아졌지만 단어시험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단어 시험에 나온 단어들이 사용된 문단을 보여주면 해석을 잘하는데 각각의 단어를 시험 보면 스펠링을 말도 안 되게 쓴다거나, 품사를 틀리게 적는다거나, 뜻을 아무렇게나 쓴다거나 해서 제대로 맞는 것이 거의 없었다. 문제집을 풀 때도 문제가 빡빡하게 많은 것은 보는 것도 힘들어했고, 문제를 풀 때도 그런 문제집을 풀 때와 여백이 많은 문제집을 풀 때의 정답률이 달랐다. 집에서는 글을 읽은 후 쉽게 눈이 피로해진다고 호소한다고 했다. 예전에 한 성인분이 공부를 조금 한 후에 "아, 눈알이 빠질 것 같아요!"라고 했던 게 떠오른다.


이 아이의 학부모에게 나는 이 아이가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이 있는 반면 문맥이 없는 작은 정보를 처리하는 데는 어려움이 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계속 노력을 해서 약점을 꾸준히 보완해 나가야겠지만 그래도 이 아이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서 창의적인 걸 하면 참 잘할 것 같다고 했다.



그 학부모님은 내가 '아이가 학교 공부를 못할 것이니 공부시키지 말고 기술이나 가르쳐라'는 말을 에둘러서 어렵게 했다고 서운해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의 강점이 간과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이 친구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집에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언뜻 보면 ADHD처럼 산만해 보일 수 있는 면을 보완해서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머릿속엔 이미지가 압도적인 아이에게 종이에 빡빡하게 적힌 글을 통한 시험이 당연히 쉽지는 않을 것이니 오랫동안 훈련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불공평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절대 "구박"하지 말고 "힘을 북돋아주시라"고 했다.


내가 그 아이가 큰 그림을 보는 것에 강하다고 말했던 것은 진심이었다. 그것이 강한 만큼 그 아이는 계속해서 세부적인 것들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럴 때마다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단위로 쪼개서 가장 집중이 잘 되는 방법을 찾아서 훈련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이 힘든 과정을 지나 주류가 원하는 직업을 어렵게 가지게 되거나, 어떤 이는 이 과정을 건너뛰거나 다른 방식으로 자신과 맞는 직업을 찾게 될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구박하면서 획일화시키는 게 아니라 자존감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아이의 길을 찾아주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


어떤 아이들은 문맥이 없어도 단편적인 정보를 기계적으로 암기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단어를 하루에 백 개를 외우게 시켜도 그대로 암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문장이나 글을 만들었을 때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바꾸는데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답을 찾기 위한 정도의 독해나 해석은 가능하겠지만. 나는 이런 아이들이 아마도 좋은 대학에 갈 것이라고 추측한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그런 아이들에게 유리하니까.


하지만 내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당연히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저물어간다. 아니 이미 저물었다고 했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AI가 (거의) 모든 걸 해 주는 시대가 이미 여기 와 있으니까.


이 글에 쓰인 이미지들은 내 핸드폰에 있는 AI가 생성해 준 것이다. 나는 이제 무료 이미지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정보도 AI가 바로바로 다 찾아주고, 요약도 해주고, 내 말도 알아듣고, 말이든 글이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답해준다. 이미 존재하는 정보를 찾거나 요약하는 건 이제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게 되었다. 물론 AI에게 정제된 정보를 생성해 내려면 내가 아무것도 모르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시시콜콜한 암기가 중요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게 내 말의 요지다.


주말에 월드투어 스쿨오브락 (School of Rock) 뮤지컬을 보고 왔다. 평균 연령이 11.5세라는 영캐스트들을 보면서 정말 노래도, 연기도, 연주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아이들이 학교를 빼먹고 이렇게 세계를 돌면서 공연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학교에서 모든 사람들과 같은 교육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내 옆에 앉았던 사람들과 그 외 많은 다른 사람들은 흥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 나에게만 그런 흥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참 멋대가리 없게도 미소 지으며 소심하게 박수나 치고 앉아 있었다. 함께 마구마구 소리를 지르지도, 일어나서 몸을 흔들지도, 노래를 따라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나는 항상 남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운동경기나 연주를 보면서 소리 질러 보는 게 소원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한 번도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게 자연스럽게 태어난 이들도 많다. 그 둘은 그냥 서로 다른 것이고 그만의 강점과 어려움이 공존한다. 우리는 강점을 알고 약점을 보완해 나가되 나의 약점을 강점으로 태어난 이들과 경쟁하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나는 기안 84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렇게 창의적이고 기발한 사람이 공부를 평균만큼이라도 해서 "평범한 사무직"이라도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호주에서 열린 F1 경주를 보고 집으로 간 아들이 18등 한 자신의 팀 레이서는 낙담해 있을 거라고 하여 바로 ChatGPT에게 그 모습을 묘사해 달라고 했더니 몇십 초 만에 이 그림을 생성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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