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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Mar 18. 2024

난독증 극복에서 글 읽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거의 30년을 성인들에게, 그리고 소수의 청소년들에게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러다 우연히 한 명 두 명씩 마음이 아픈 아이들, 글을 못 읽는 어른들, 그리고 우뇌가 심하게 발달한 사람들, 상처를 품은 대학생... 을 언젠가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공부를 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남들은 몰라보는 자폐, (가족력을 들여다보니 엄마나 아빠도 그랬다는 걸 알곤 부모가 아이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다들 성격이 지랄 맞다지만 실은 너무나 따듯한 신경다양인, (이 세상에 누구도 정상은 없으며 각각의 특징들을 서로 인정하고 일정 부분 수용하기로 하면서 반의 분열이 없어졌다), 남편과 이혼하고 싶었다는 엄마, (남편이 아스퍼거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의 특징들에 대해 공부한 후론 그의 고충도 이해하게 됐다), 평생 자식이 부끄러웠던 엄마, 영유에 중국어에 유학에 비싼 과외에 다 시켰건만 머리가 멍청하다며 막말을 하던 그녀, (딸은 다른 방법으로 공부했어야 하고, 지금이라도 그녀의 재능을 인정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지원해 줘야 된다는 걸 받아들이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런 많은 경험을 하면서 오늘의 나는 비로소 진정으로 알게 됐다. 

나는 돈 잘 버는 일타강사가 되는 걸 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이전의 많은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는 드디어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영국 난독증 협회에서 이메일이 왔다. 내가 제출한 에세이가 통과되었다고! 


임상을 정말 많이 하지 않고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레벨은 L3였다. 20년 전 석사를 한 후 너무 오랜만에 새로이 쓰는 학술적 글쓰기가 꽤 힘들었다. 중간중간에 정말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수십 번도 더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이런 고통을 감내하다니. 무슨 짓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그 메일을 받고 나니 조금 더 내가 앞으로 갈 길이 뚜렷하게 보이게 된 것 같아 참으로 기쁘다. 


내가 가르친 모든 난독증은 모두 결국에는 나아졌다. 물론 아주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대부분은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했고, 항상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들의 자존감이 높아지기 전에는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난독증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느냐고. 


다니엘 페낙이 쓴 '학교의 슬픔' (chagrin d'école)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정말 잘 표현되어 있었다. 


우리의 '공부 못하는 학생들' (앞날이 없다고 여겨진 학생들)은 학교에 결코 홀로 오지 않는다. 교실에 들어서는 것은 한 개의 양파다. 수치스러운 과거위협적인 현재선고받은 미래는 바탕 위에 축적된 슬픔, 두려움, 걱정, 원한, 분노, 채워지지 않는 부러움, 광포한 포기, 이 모든 게 켜를 이루고 있는 양파. 저기 다가오는 학생들을 보라. 성장해 가는 그들의 몸과 책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거운 짐들을. 수업은 그 짐이 땅바닥에 내려지고 양파 껍질이 벗겨져야만 진정으로 시작될 수 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단 하나의 시선, 호의적인 말 한마디, 믿음직한 어른의 말 한마디, 분명하고 안정적인 그 한마디면 충분히 그들의 슬픔을 녹여내고 가볍게 하여, 그들을 직설법 현재에 빈틈없이 정착시킬 수 있다. 물론, 그런 호의는 일시적이며, 양파는 밖으로 나서는 순간 다시 겹을 두를 것이고, 당연히 내일 또다시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가르친다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망쳐버린 학교생활 일 년은 하찮은 게 아니다. 어항 속에서는 영겁의 세월이다.


과거의 내 모습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현재가 매일매일 위협적이지 않으며, 

나는 성공할 수 없다는, 나는 하찮은 일 밖에 할 수 없다는 선고를

머릿속에 각인이 되도록 듣지 않아도 될 때가 

난독증을 극복하는 데 준비가 된 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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