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을 읽다: 다르게 읽는 사람들의 세계>>
십여 년 전에 어떤 시인이 시 같기도 하고 짤 같기도 한 아주 짧고 재밌는 글들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무척 신선했던 그의 글들은 뭐라고 콕 집을 수는 없지만 뭔가 다른 시에서는 느끼지 못해 본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2024년, 그런 그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에 만난 한 전직 디자이너이자 현 유명한 사진작가의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는 책 읽기를 즐기지 않았고, 책 읽는 걸 재밌어하는 사람들을 신기해했다. 그는 정보 검색을 글이 아닌 유튜브 동영상으로 하는 걸 오래전부터 당연시했다. 빛에 예민해서 새하얀 종이를 보거나, 형광등이나 눈부신 햇빛도 즐기지 않았다. 그는 전문적인 사진 수업을 들어본 적도 없이 그냥 찍은 사진들이 모두 감각적이었다. 그가 발로 사진을 찍어도 작품이 될 것 같았다. 당연히 그를 찾는 곳이 많았고,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진 강의도 했다.
그에게 내가 물었다. 왜, 과거에 (내 학생이었을 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느냐고, 영어를 잘하고 싶으면 공부를 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나는 혹시 그에게 난독증이 있어서 그가 책을 멀리했던 것은 아닌지 갑자기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른 것들을 물었다.
- 혹시 글을 읽기가 힘들지는 않아요? -- 아뇨.
- 그럼 흰 바탕의 글씨를 보기가 힘든가요? -- 네, 맞아요. 한국책들은 특히나 눈이 아프도록 반짝반짝하는 새하아아얀 종이에 글을 인쇄하더라고요. 외국책은 누런 똥종이 같은 건데 말이죠. 그런 너무 하얀 종이가 보고 싶지 않아요.
- 혹시 글을 읽지만 읽고 난 후에 그 내용이 증발해 버린다거나 하지는 않나요? -- 어... 뭐, 딱히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음... 사실 잘 모르겠네요. 읽은 걸 잘 정리하거나 기억하거나 하는 게 좀 어려운 거 같기도 하고요.
- 언제 글을 읽는 게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 최근에 해외여행을 갔는데 그 왜 입국카드 같은 걸 써야 하잖아요? 거기에 칸칸이 이름, 주소, 방문목적 같은 걸 순서대로 써야 하는데 참을 수 없도록 힘든 거예요. 그걸 순서대로 빈칸을 메꿔야 한다는 거가. 다행히 옆에 있던 아내가 다 써줬죠. 아, 저도 그게 왜 그렇게 미치도록 힘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죠.
- 글이 뭉텅이로 보인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혹시 그렇기도 한가요? -- 제가 디자이너였을 때 모두가 다 그랬어요. 디자이너들은 글을 각각의 글자로 인식하지 않아요. 한 덩어리로 인식하죠. 그래야 문장이 어떻게 예쁜 디자인으로 만들어질지가 보이거든요. 모든 디자이너들이 아마 다 그럴 걸요. 다들 덩어리로 인식해요. 예쁘게 글이 보이도록 "디자인"해야 하니까요.
이쯤에서 나는 그 시인이 다시 떠올랐다. 시인이 자신은 강박적으로 글의 모양을 맞추려고 한다는 걸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시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니 그가 글을 어떻게 읽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글은 생각과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중요한 매개이지만, 다른 어떤 이들에게 글자는 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그림의 일부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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