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여행의 마지막 날
8년 전 오사카를 처음 여행했을 때 근교 여행으로 교토에 1박 2일 놀러 왔었다. 그날 교토에 마음을 빼앗긴 후, 늘 간사이 공항에서 곧장 하루카를 타고 교토로 향했기 때문에 오사카를 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엔 교토에 충분히 길게 머물기도 했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해 아무래도 하루카 시간이 불안했던 나는 오사카에 하루 머물기로 했다. 공항 가까이 어디 묵을 만한 곳 없나 찾다가 린쿠타운이란 곳을 발견했다. 공항에서 한 정거장만 가면 있는 큰 아울렛 타운이랄까.. 호텔 가격도 저렴했고 그냥저냥 출국전날 하루 시간을 보내기에는 괜찮아 보여 마지막 내 여행지는 린쿠타운이 되었다.
정들어버린, 어쩐지 내가 기억하던 모습에서 변해버린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한동안은 생각이 안 날 것 같기도 하고 돌아서려니 벌써 돌아가고 싶기도 한..
마지막으로 교토역에 서니 여러 가지 감정이 마음을 뒤덮었다 쓸려나가고를 반복했다. 힘들고도 좋았고, 미우면서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걸 보니 이곳에서 내가 관광만 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이제 정말 이 여행도 끝이구나. 나는 뭘 찾긴 했을까? 이 시간이 시작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변한 것이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뭘 해야 할까..’
솔직히 선명히 보이는 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의 첨언 없이 이렇게 집요하게 내 생각 속으로 파고든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른다. 지나가는 모든 풍경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주변의 사람들이 사실은 정말 하나하나 각각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아무런 관계도 시선도 없는 곳에서 나는 어느 길을 택해서 걷고 어떤 것을 먹고 어떤 것에 시선을 두는지 오랜만에 느껴봄으로써 나라는 인간을 다시 이해해 보고 정을 붙여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오랜 시간 여러 가지 관계 안에서 역할 속에서 부족한 면들만을 바라보면서 나조차 나 자신에 불만족하며 , 내 불완전함에 대한 원망속에 살아왔던 것 같다. 이 여행 또한 그 연장선에서 뭔가 대단한 걸 찾으라는 압박감 속 등을 떠밀리듯 시작되었지만 다행히 그 과정에서는 좋은 날씨 덕이었는지 마음을 열고 다정히 내 모습을 지켜봐 줄 수 있었다.
나는 이런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하나씩 되뇌며 곱씹다 보니 어느새 오사카에 도착했다.
같은 가격으로 교토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크기의 호텔에 체크인을 한 뒤 산책 삼아 아울렛쪽으로 가보았다. 교토에서 생각보다 쇼핑을 많이 하지 못했기에 마지막으로 쇼핑이나 해볼 심산으로 향했으나 이곳의 바다가 생각지 못하게 너무 아름다워 바닷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큰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었는데 그 덕인지 그날의 해 덕인지 그토록 아름다운 윤슬은 처음 보았다. 해변에 뉘어진 긴 나무 기둥은 그럴듯한 벤치가 되어주었다. 그곳에 앉아 해변에서 뛰어노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고민만 하다가 결국 용기 내지 못했을 텐데 자연스레 양말을 벗고는 나도 바닷속에 발을 담가보았다.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진 돌들 위로 걸을 때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는 것이 기분 좋았다. 하지만 가장 기분 좋았던 것은 내게 필요한 순간들을 이렇게 스스로 만들어주는 것에 조금 적극적이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그렇게 변한 것이라면 이 여행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진짜 내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