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하지만 누군가 알려준다면
다시 혼자 남았다.
거짓말처럼 날씨도 흐려졌다.
중간에 너무 좋은 호텔에서 묵은 탓일까? 적당한 새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나자 힘이 쭉 빠졌다. 기대했던 일정도 모두 끝이 났고 이제부터는 그저 정처 없이 돌아다니거나 갈 곳을 찾아야 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고 벅차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그날 하루를 낭비하게 되었다.
문득 이곳은 내 여행지가 아니라 이 사람들의 삶이라는 걸 알았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곳에 할 게 없다는 건 볼 게 없다는 건 얼마나 시건방진 소리일까. 하나의 삶이 곧 몇백 가지 아니 몇 천 가지의 이야기인 것을.
<01화. 큰 것만 기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중에서
다음날은 내 마음을 담은 듯 화창하게 시작되었다. 새롭게 여행을 시작하는 비장함으로 모닝커피를 해치웠다. 어디를 가볼까 고민하다 떠나기 전 남편이 가보고 싶었다며 알려준 돈가스집이 생각났다. 돈가스집 말고는 전혀 볼만한 것이 없어 보이는 동네였지만 내게 가장 많은 것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낯선 동네로 출발했다.
관광지들과는 정 반대 방향. 그래서인지 열차를 타고 십오 분 정도만 가면 도착하는 곳이었지만 외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대세에 휩쓸려 내릴 수 없다는 불안감에 나는 평소답지 않게 창밖은 전혀 보지 않은 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핸드폰만 이리저리 돌려보느라 바빴다.
이제 다음역에 내리면 도착. 한숨 돌리려던 찰나 앞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아주머니는 손으로 창밖을 가리키며 하늘을 보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마침 열차는 역으로 진입하고 있는 듯 창밖에는 어둠뿐이었다. 아주머니는 당황한 듯 급히 핸드폰을 켜 사진을 하나 보여주셨다. 난생처음 보는 동그란 무지개였다.
“에, 진짜요? 너무 멋져요! ”
몇 마디 하지 못하는 일본어로 감사함을 전하고 나는 급히 열차에서 내렸다. 역 바깥으로 나가는 내내 심장이 두근두근 급히 뛰었다. 혹시나 내가 나가는 사이 무지개가 사라져 버리면 어쩌나 불안함에 발을 동동 구르며 개찰구 줄을 섰다. 카드를 찍고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고개를 들어 해를 찾았다. 다행히도 선명한 무지개가 나를 반겼다.
핸드폰을 들어 하늘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보고 역 앞에 있던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행복한 무지개 행운은 아주머니에게서 나를 타고 사람들에게로 점차 전파되어 갔다.
해무리라 불리는 원형 무지개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한다. 내가 이날 가려던 돈가스집은 문을 닫아 가지 못했고, 오후에는 버스를 잘못 탄 가려던 사찰도 방문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날은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원래 행복은 내가 고개를 돌려야만 볼 수 있는 건데, 구글맵만 보느라 고개 숙인 내게 용기 내 하늘을 보여준 사람을 만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