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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Oct 19. 2019

고명 있는 시간  

대추 고명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요리이지만, 요리에도 엄연히 포장이 있다. 완성된 요리를 내용물이라고 친다면, 요리에 어울리는 접시를 고르고 알맞게 담아내고 고명을 올리는 것은 포장에 해당되는 개념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까만 비닐봉지에 담긴 것과 정갈한 종이에 싸인 것이 천지차이인 것처럼, 같은 요리라도 스티로폼 용기에 아무렇게나 담긴 것과 예쁜 접시에 소담하게 담긴 것은 맛보기도 전에 이미 뇌에서 다르게 인지하지 않을까. 특히 사찰요리는 다른 요리에 비해서 쓰이는 재료도, 양념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요리 위에 다소곳이 올라가 있는 요 쪼끄만한 고명이 해내는 몫이 제법이다. 여주인공이 얼굴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전혀 몰라본다는 설정의 옛 드라마가 있었는데, 사찰요리에서 고명이란 그 드라마에서 점이 가지는 파급력에 맞먹는다고 볼 수 있다.



고명, 그까짓 거...

사찰요리를 배우기 전까지는 고명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있으면 좋은데, 없어도 뭐. 잔치국수 위에 다소곳이 자리를 잡고 있는 하얗고 노란 계란 지단과 김가루, 짜장면 위에서 싱싱한 자존심을 뿜어내는 오이채와 완두콩, 고명이라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된장찌개 위의 어슷 썬 빨갛고 파란 고추. 예쁘긴 예쁜데 없어도 크게 맛에 지장 은 없으니, 고명은 만드는 사람의 수고로움에 따른 받는 사람의 소박한 기쁨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고명도 위에 나열한 계란지단이나 김가루, 어슷 썬 고추 정도로 제한적이었고.


사찰요리를 배우며 고명의 세계에 비로소 눈떴다. 대부분의 요리에 고명이 빠지지 않았다. 수업에서 처음 배운 고명은, 씨를 빼고 돌돌 말아 썬 대추였다. 말랑한 대추에 칼집을 푹 내서 씨를 쏙 빼내고, 대추를 도마 위에 눕혀놓고 칼등으로 탕탕 쳐서 납작하게 만든 뒤 돌돌 말아 썰면 금세 어여쁜 대추 고명이 탄생했다. 한입 크기로 동그랗게 빚은 밥 위에, 납작하게 썬 밤과 동그랗게 만 대추 고명을 올리니 근사했다. 눈으로 먹는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싶었고, 입으로 가져가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밥은 호박, 당근, 표고버섯을 각기 채 썰어 곱게 볶은 삼색 고명이, 죽에는 앙증맞은 잣 고명이 올라갔다. 말간 편수에는 실처럼 가느다랗게 썬 홍고추가, 노랗게 구운 전에는 동그랗게 썬 홍고추가 자태를 더했다. 무심하게 검은깨를 툭툭 몇 번 뿌려주면 밋밋하던 요리에 생동감이 더해졌고, 잣을 곱게 빻아 한 줄로 살며시 뿌려주면 흔한 반도의 버섯구이가 미슐랭 쓰리스타에 빛나는 고급 레스토랑 요리로 탈바꿈했다. 요리의 마지막 스님들이 긴 젓가락을 빼들고 음식 위에 고명을 조심스레 올리는데, 고명을 올리는 스님도 그 손끝을 지켜보는 우리들도 그 순간 모두 침묵했다. 마법이 완성되는 순결한 순간이니까.



고명의 의미

고명을 아름다움, 멋으로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되었다. 어느 날, 정효 스님이 젓가락으로 고명을 올리면서 우리에게 물어보셨다. "고명의 의미가 뭔 줄 아세요?" 고명의 의미? 아름다움 아닌가? 선물로 치면 포장 같은 거. 이렇게 빤한 정답이면 스님이 물어보실 리가 없지.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스님이 다시 물어보셨다.

"고명이 올라간 음식을 받으면, 우리가 어떻게 하지요?"

"젓가락으로 흩어요."

예쁘게 올라간 고명을 젓가락으로 흩는 순간, 마음이 좀 아프긴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일단 포장된 물건이면 신나게 뜯고 보는 파괴지왕 아닌가. 고명을 젓가락으로 흩을 때 역시 포장을 뜯을 때와 비슷한 쾌감이 있었다. 이어진 스님의 말에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를 지배하던 그 쾌감의 정체를 찾을 줄 이야.

"고명이 올라간 음식은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내가 오로지 당신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란 뜻이에요."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면 고명이 올라간 음식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 음식'이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고명이 올라간 음식은 오직 나를 위한 음식, 나만이 손댈 수 있는 음식이었다. 계란과 김 지단이 국물 속에서 아무렇게나 춤추는 잔치국수, 면과 혼연일체가 되어 짜장 소스를 덮어쓴 오이채를 보면 단번에 '누가 먹던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테니까.


어릴 때, 엄마가 오므라이스를 해주는 날에는 반드시 엄마의 의식이 있었다. 밥을 덮은 매끈하고 노랗게 빛나는 계란 옷 위에, 엄마가 케첩통을 들고 큼지막하게 우리 남매 각자의 이름을 써주었다. 케첩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계란 옷 위에 엄마가 케첩으로 글씨를 쓰는 순간이 있어야 비로소 이 오므라이스는 완성된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엄마가 싱글벙글 웃으며 계란 옷이 꽉 차도록 글씨를 써주는 순간이 좋았다. 식탁 앞에 앉아서 글씨가 완성되는 순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글씨가 완성되면, 그때야 우리는 숟가락을 들고 샛노란 계란 옷을 크게 한 숟갈 떴다. 엄마가 오직 나를 위해 준비한 음식,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 음식. 한 숟갈 한 숟갈 내 이름을 퍼먹으면 몸 안에 퍼지던 따뜻한 기운. 내 인생 최초의 고명.


점심시간을 조금만 놓쳐도 편의점 김밥조차 없어서 못 사는 그런 시간을 살고 있지만, 바쁜 일상을 쪼개 밥 한 끼 먹는 일이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다가오는 날이 많지만, 욕심을 잔뜩 부려본다면 고명이 소담하게 올라간 끼니를 자주 먹고 싶다. 오늘, 모처럼 시간을 내 요리를 하고 스님들이 하던 것처럼 젓가락을 들고 정성을 다해 고명을 올렸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음식, 오직 내가 나를 위해 준비한 음식. 고명을 올릴 , 나도 모르게 케첩통을 들고 글씨를 쓰던 엄마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엄마의 그 미소를 이제야 조금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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