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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Sep 24. 2019

너무 예쁘면 젓가락 안 가

치킨 아니죠. 버섯입니다, 버섯.


예쁘게, 그런데 너무 예쁘게는 말고

지난 몇 차례의 수업에서 스님께 피드백을 받았다. 그릇 크기에 비해 음식을 넘치게 담았다거나, 빨간색 고명을 너무 많이 써서 음식이 산만해 보인다거나, 쌓아서 담을 음식을 납작하게 펼쳐 담았다거나... 그토록 인자할 수 없을 것 같은 표정으로 스님이 조곤조곤 말씀해주시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좀 따끔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겠지.


창으로 햇살이 반듯하게 들이치는 정오. 오늘은 날씨도, 요리도 흠잡을 데 없다. 고명 크기도, 색깔 조화도 이만하면 괜찮다. 요리를 돋보이게 하는 그릇도 잘 골랐고 담음새 또한 훌륭! 스님도 아무 말씀 못하시겠지. 내가 들을 말이 남았다면 그것은 칭찬? 후훗. 넓은 테이블 위에 완성된 요리를 담은 접시가 가지런히 놓였고, 사람들이 한데 모여 스님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TV에 흔히 나오는 서바이벌 오디션처럼, 냉정한 평가의 말이 날아아와 가슴에 푹 꽂히거나 얄짤없는 점수가 공개되는 것도 아닌데 이게 뭐라고 떨다. 괜히 마른 양손바닥을 비볐다.


"자네는 그 뭐야... 푸드스타일리스트 해도 되겠어. 요리가 잡지에 나오는 사진 같네."

스님이 우리 조의 완성작을 보고는 한마디 하셨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추스르며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한껏 찌그러진 눈꼬리는 어쩔 거야. 몇 주간의 부진을 드디어 씻는구나! 아직 눈꼬리가 채 펴지지도 않았는데, 바로 이어진 스님의 말에 눈코입이 딱 굳어버렸다.

"너무 예쁘면 젓가락이 안 가더라고. 난 다른 거 먹어야겠다."


이건 또 무슨 말씀인가. 차라리 뭔가가 부족하면 다음번에 보완을 할 텐데, 너무 예쁘게 담아서 젓가락이 안 간다니. 그동안은 예쁘게 안 담았다고 하셨으면서, 이번엔 너무 예쁘게 담아서 문제라는 말씀인가요. 머리가 복잡했다. 스님의 칭찬하는 요리는 특징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자연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좀 대충 담은 느낌이랄까. 스님이 "담음새가 좋다", "센스가 돋보인다"라고 칭찬한 조는 막상 "그냥 신경 안 쓰고 담았는데요." 하는 무덤덤한 반응. 그런데 칭찬받은 조와 우리 조의 접시를 비교하면, 확실히 칭찬받은 쪽이 훨씬 먹음직스러웠다.

시무룩한 내 얼굴을 보고 함께 한 조원들이 "칭찬이지, 칭찬. 예쁘게 잘했다는 뜻이잖아."라고 말해도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집에 가는데 속상해서 괜히 눈물이 났다. 이게 뭐라고 진짜.



그저 사랑하는 마음이면 돼 

스님이 그동안 일러주신 이것저것을 다 지키려고 하다 보면 접시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당근 하나, 버섯 하나, 오이 하나... 더없이 소박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사찰요리에 매번 감탄하면서도, 예쁘게 담겠다는 욕심 없이 담은 요리가 훨씬 더 예쁜걸 잘 알면서도 도무지 힘 빼는 법을 몰랐다. 힘 빼려고 애쓰며 힘을 꽉 주고 있는 꼴이랄까. 수영장에 가면 귀가 닳도록 듣는 "힘 빼!"라는 말을 도무지 몸으로 납득할 수 없어, 매번 바닥으로 꼬로록 가라앉곤 했던 것처럼(그래서 지금도 수영을 못한다). 


사찰요리를 배우면서 마음이 가볍게 통- 울리는 순간이 많았고, 그 순간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도무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사찰요리라니... 서점가를 점령하고 있는 최고 핫한 키워드인 '퇴사' '혼자' '괜찮아' '여행'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과연 사찰요리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풀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날 훈남과 같은 조가 되어 연애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귀가 트여 가지와 쑥갓의 말이 들리게 된 것도 아니고, 실력을 갈고닦은 끝에 사찰요리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거머쥔 것도 아닌데. 나는 사찰요리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내 마음이 울리던 순간은 돌아보면 시시했다.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사찰요리의 훌륭함, 요리를 통해 얻은 교훈 같은 걸 전하려고 무지 애를 썼다. 새벽부터 모니터를 켜고 결연한 자세로 앉아 빈 화면을 노려봤지만, 한 글자도 못 쓰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을 숱하게 보내고서야,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란 걸 알았다. 사찰요리의 훌륭하고 좋은 점, 레시피는 이미 발간된 수많은 사찰요리 책에 충분히 나와있었다. 그제야 지난 레시피를 뒤적이고, 레시피 귀퉁이에 조그맣게 끄적거린 글씨를 들여다보고, 함께 요리하며 만났던 얼굴과 스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마음이 통-하고 울렸던 순간이 되살아났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지우고 나니, 거기엔 그저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랑하면 당연히 잘하고 싶다. 요리든 글이든. 그렇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사랑을 놓치게 된다. 스님이 내게 알려주려던 말씀은 그게 아니었을까. 무슨 일을 하든 그 안에 깃든 사랑을 놓치지 말라고. 그렇게 요리하고, 그렇게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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