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그런데 너무 예쁘게는 말고
스님이 그동안 일러주신 이것저것을 다 지키려고 하다 보면 접시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당근 하나, 버섯 하나, 오이 하나... 더없이 소박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사찰요리에 매번 감탄하면서도, 예쁘게 담겠다는 욕심 없이 담은 요리가 훨씬 더 예쁜걸 잘 알면서도 도무지 힘 빼는 법을 몰랐다. 힘 빼려고 애쓰며 힘을 꽉 주고 있는 꼴이랄까. 수영장에 가면 귀가 닳도록 듣는 "힘 빼!"라는 말을 도무지 몸으로 납득할 수 없어, 매번 바닥으로 꼬로록 가라앉곤 했던 것처럼(그래서 지금도 수영을 못한다).
사찰요리를 배우면서 마음이 가볍게 통- 울리는 순간이 많았고, 그 순간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도무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사찰요리라니... 서점가를 점령하고 있는 최고 핫한 키워드인 '퇴사' '혼자' '괜찮아' '여행'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과연 사찰요리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풀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 날 훈남과 같은 조가 되어 연애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귀가 트여 가지와 쑥갓의 말이 들리게 된 것도 아니고, 실력을 갈고닦은 끝에 사찰요리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거머쥔 것도 아닌데. 나는 사찰요리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내 마음이 울리던 순간은 돌아보면 시시했다.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사찰요리의 훌륭함, 요리를 통해 얻은 교훈 같은 걸 전하려고 무지 애를 썼다. 새벽부터 모니터를 켜고 결연한 자세로 앉아 빈 화면을 노려봤지만, 한 글자도 못 쓰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을 숱하게 보내고서야,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란 걸 알았다. 사찰요리의 훌륭하고 좋은 점, 레시피는 이미 발간된 수많은 사찰요리 책에 충분히 나와있었다. 그제야 지난 레시피를 뒤적이고, 레시피 귀퉁이에 조그맣게 끄적거린 글씨를 들여다보고, 함께 요리하며 만났던 얼굴과 스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마음이 통-하고 울렸던 순간이 되살아났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지우고 나니, 거기엔 그저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랑하면 당연히 잘하고 싶다. 요리든 글이든. 그렇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사랑을 놓치게 된다. 스님이 내게 알려주려던 말씀은 그게 아니었을까. 무슨 일을 하든 그 안에 깃든 사랑을 놓치지 말라고. 그렇게 요리하고, 그렇게 살아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