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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Oct 02. 2019

그렇게 채식주의자가 된다



밥은 먹고 다니냐?

말 그대로 정신없이 바빴다. 뭘 하고 사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랬다. 밥 한 끼 챙길 시간이 없었고, 주머니는 늘 빠듯했다. 끼니는 자주 거르거나 때웠다. 밥상 앞에 앉아 숟가락을 드는 대신, 편의점에서 사 온 빵이며 김밥 비닐 포장을 깠다. 싸고, 편하고, 입에 짝 달라붙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마다할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지. 시간과 주머니의 여유, 그리고 이 둘이 넉넉할 때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같은 게 그 무렵의 내 있을 리 만무했다. 싸다는 이유로 박스째 사들인 과자와 라면박스가 천정까지 닿은 채 내 방을 잠식하고 있었다.


고단한 하루의 끝, 빈틈없이 물건이 들어찬 작은 방에 몸을 누이면 그제야 배가 고팠다. 김이 폴폴 나는 구수한 밥 한 공기, 두부와 갖은 야채를 넣고 끓여낸 따끈한 된장찌개 생각이 간절했다. 그럴 때면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빵, 초콜릿, 소시지, 어묵 같이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 음식이 가득했다. 허겁지겁 무언가를 입에 쑤셔 넣었다. 그런 음식들은 먹어도 먹어도 쉽게 배부르지 않아서,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야 비로소 포만감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자꾸 몸에 힘이 빠지고, 툭하면 눈 밑이 떨렸다. 휴일이면 하루 종일 잠을 잤다. 계속되는 무기력 증에 병원에도 몇 번 가봤지만 스트레스라느니 과로라느니 하는 빤한 답만 들었다. 큰 맘먹고 한약까지 지어먹었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내게 한마디 했다. “채소는 제대로 챙겨 먹니?” 그러고 보니 내 식단엔 전혀 채소가 없었다. 설마 채소 때문이겠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마트에 들러 채소 몇 개를 집었다. 집에 돌아와 사온 채소를 대충 씻 씹었다. 입 움직이기도 귀찮은데 손까지 움직여 요리할 엄두가 안 났다. 짜파게티 끓이기도 귀찮아, 봉지째 뜯은 생면을 짜장 가루에 찍어먹던 나였다 - 연탄재 맛을 느끼고 싶다면 권해드립니다-. 몇 번 씹고는 삼키기를 반복했다. 우물우물, 말이나 소가 된 기분이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 뒤로 나는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다.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살 때는 공기처럼 중요도를 인식하지 못했던 밥상 위의 나물과 제철 요리들이,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사찰요리 등장이오!  

처음 두어 달은 몇 가지 채소를 돌려가며 씹었다. 가끔 샐러드를 사 먹기도 했지만, 밥 한 끼 값에 맞먹는 샐러드를 날마다 사 먹을 순 없었다. 먹다 보면 본전 생각이 났다. 이 가격이면 양상추 한통에다가 당근이랑 파프리카도 살 수 있는데... 그렇다고 평생 이렇게 생채소를 씹으며 살 순 없었다. 종류를 달리더라도 어쨌든 물렸고 지겨웠다- 그런 의미에서 소와 말을 비롯한 채식 동물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날마다 채소를 챙겨 먹는 게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종이 씹는 기분으로 채소를 씹고 있노라면, 프로메테우스가 지하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이 인간아! 평생 생채소 씹을 거면 내가 왜 그 고생을 했겠냐!" 그래,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대가로 무려 3천 년 동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인 프로메테우스의 지난 노고에 화답하기 위해서라도 요리를 해야 했다. 그 무렵, 다니던 회사 방침대로 별생각 없이 템플스테이에 갔다가 사찰요리를 처음 맛봤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들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찰요리가 내 인생에 등장하기 적절한 때였다.


처음엔 템플스테이에서 맛본 밥을 잊지 못해 사찰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금세 사찰요리에 매료되었다. 여물 씹듯 우물우물 씹어 삼키던 채소의 활용법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고, 소금이며 간장 같은 기본 조미료를 더했을 뿐인데 전혀 다른 맛을 내는 것도 놀라웠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삶의 캐치프레이즈 '인간은 맛있는 걸 먹기 위해 태어났다!' 정신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맛의 경험을 확장해나간다는 즐거움 외에 사찰요리가 내게 가져다준 또 하나의 선물이 있었다. 시각의 변화다.


사찰요리의 정신은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뜻의 '자타불이'다. 내 생명이 귀중하듯 남의 생명 역시 귀하다는 정신에 입각해 고기, 계란 등의 사용을 금하고 있다. 사찰요리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들도 스님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생명을 존중해라, 눈앞의 식재료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라, 버리지 말고 남김없이 써라... 처음엔 요리할 때 시늉만 내던 것이 점차 내 삶으로 번졌다.


"자, 이제 풀때기 먹었으니까 고기 먹으러 가자." 사찰요리를 끝내고 나면, '부실하게' 먹었다며 고기를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습이 언젠가부터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고-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회식이나 결혼식 뷔페에서 내 앞의 고기 접시를 밀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주변에서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면 "속이 안 좋아서요"하고 웃어넘겼다. 진지하게 고기 없는 삶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채식 관련 책을 읽으면서 공부했다. 제대로 이해하고, 오해에 대해 바로 잡고, 커뮤니티에 나가고, 사찰 요리 공부에 좀 더 매진했다. 내 주위에 채식을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 수업이 끝나면 스님마다 붙들고 물었다.

"스님, 정말 고기 안 먹어도 살 수 있어요?"

"스님, 고기가 정말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해요?"
"스님은 고기 먹고 싶을 때 없으세요?"

더 이상 사찰요리는 내게 취미의 영역이 아니었다. 삶의방식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채식주의자

시간이 나면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종종 걷곤 했는데, 어느새 내 산책코스가 묘하게 바뀌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사찰요리를 배우면서, 나도 모르게 공원 안의 동물원을 피해 산책하고 있었다. 철창이나 유리창 안에 갇힌 동물들을 바라보기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 날은 마음이 복잡해 산책 코스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나 보다. 한껏 가벼워진 마음으로 느긋하게 걷다가 순간, 턱 하고 숨이 막혔다. 바로 눈앞에 커다랗게 위용을 드러낸 동물 극장이, 그리고 그 바로 아래엔 치킨 집과 돈가스집이 있었다. 인간이 참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을 ‘소비’하고 있음에 놀랐지만,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러한 소비행태를 그간 수없이 목도했으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해서였다. 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채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숨 막히는 순간은 불현듯, 자주 찾아왔다. 집 근처 영화관에서 객석에 몸을 푹 파묻고, 광고 몇 편을 흘려보내며 영화를 기다리는 시간. 여름을 맞아 개봉한 공포영화의 섬뜩한 장면이 지나가고, 밝은 씨엠송과 함께 개 사료 광고가 뒤를 이었다. 우리 개에게는 아무거나 안 먹인다, 생고기를 먹인다가 포인트였다. 생고기... 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먹어도 괜찮은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은 누가 규정짓는 것일까. 집에서 개를 키우면서도 복날이면 밖에서 친구들과 보신탕 한 그릇 하고 돌아온 부모님을 '야만적이다!'라고 비난했으면서, 정작 가족 외식 날이면 깻잎에 삼겹살을 얹어서 부모님께 내밀던 내 손은 야만적이 아닌가. 막 지나간 공포 영화의 한 장면보다, 밝은 씨엠송과 함께 흘러나온 짤막한 이 광고가 어쩌면 더 섬뜩한 게 아닐까.


채식을 시작하면 그동안 몸담고 있던 세계에 대한 대혼란을 겪게 된다. 유유자적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고 싶어 찾던 아쿠아리움, 아무런 생각 없이 스쳤던 동물원 안의 돈가스집과 치킨집, 한우를 갈아 만들었다는 우리 귀한 개님을 위한 사료 광고... 생명 존중에 대한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다가 결코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 발을 들이기 전에 얼른 발을 빼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모른 척하고 싶고, 예전처럼 편하게 살고 싶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며칠 전, 엄마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한 손에 들고 기뻐하는 친척 중 누군가의 모습이었고, 싱크대에는 둥그런 눈동자의 또 다른 물고기가 죽어있었다. 칼로 찔렀는지 옆구리에는 핏자국이 흥건했다. 아, 나는 이제 못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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