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누구나 ‘나’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내 속엔 ‘자랑하고 싶은 나’, ‘특별한 나’, ‘나도 모르는 나’, ‘외면하고 싶은 나’, ‘들키고 싶지 않은 나’, 온갖 내가 뒤섞여있다.
그중 사람이 가장 빛날 때는 ‘초라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감 없이 드러낼 때.
스치기만 해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춰둔 내면의 상처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기에 지난한 연습과정이 필요하다. 저마다 수련방식은 다르다. 기도, 명상, 요가 등 영성훈련을 하기도 하고, 무예, 춤처럼 신체를 활용하기도 한다. 미술, 음악, 문학 등 예술 활동도 나를 거침없이 나타내는 대표적 방법이다.
이 중 글쓰기는 진입 장벽이 낮아 많은 사람들이 사유 훈련과 자기표현 수단으로 선택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온라인에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이 생기면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었다.
사실 글쓰기도 다른 창작활동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기술이 필요하다. 글자를 안다고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꺼내 달라고 아우성이어도 하얀 모니터 위의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게 된다.
그래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내면의 풍경을 그려내기에 글쓰기는 가성비 괜찮은 창작도구다.
문재(文才)를 타고 난 사람들이 있다. 그에 비하면 나의 글쓰기 레벨은 사소하다. 하위권 성적을 겪어봐서 공부가 어려운 이유를 아는 과외 선생처럼,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감을 익힌 소소한 글쓰기 접근 방식을 나누고 싶다.
요리로 치면 셰프가 되는 전문가 과정이 아니라, 초짜도 집에서 일단의 허기를 해결하는 '기본 밥상 차리기'다. 시간과 경제적 여건 상 편의점 도시락으로 연명할 상황이더라도 조금만 틈을 내어 자신과 가족의 영혼을 채우는 따뜻한 밥상을 차릴 수 있으면 좋겠다.
적정한 기술이 사람의 삶을 바꾸듯 적정한 심리학 이야기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론이 아닌 실생활에서 실질적인 위력을 갖는 실용적인 심리학 정도로 바꾸어 설명할 수도 있겠다.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을 나는 '적정심리학'이라 이름을 붙였다.
물리적 허기만큼 수시로 찾아오는 문제가 인간관계의 갈등과 그로 인한 불편함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매번 자격증을 가진 의사나 상담사를 찾을 수는 없다. 끼니때마다 찾아오는 허기만큼이나 잦은 문제라서 그때마다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면 일상이 불가능해진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집 밥 같은 심리학이 필요한 이유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
정혜신 박사는 일상적 허기처럼 찾아오는 갈등과 상처들을 스스로 치료하는 최소한의 방법으로 ‘적정심리학’을 제안했다. 이 개념을 벤치마킹하여 ‘가난한 마음’과 직면하기 위해 글쓰기를 택한 초보들의 순박한 글쓰기에 ‘적정글쓰기’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김정태, 홍성옥 저)’에 따르면,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첨단과학은 아니지만, ‘사용자에게 적합하고 필요한 소박한 기술’을 뜻한다. 사용자의 역량을 키워 삶의 질을 높이기 때문에 ‘착한 기술’,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따뜻한 기술’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정한 교육을 받은 적 없어도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보다 풍요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건강한 자립의 기반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서툰 솜씨지만 ‘적정한 글’을 쓰는 동안 부족해 보여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면 아이’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적정글쓰기’는 시, 소설, 수필 등 문학작품이나 논문, 칼럼, 비평 등 전문 저술, 기획안, 보고서, 자소서 등 실용글쓰기가 아니다.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각자의 심리적 문제를 마주하는 방편이자, 글쓰기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이다.
글쓰기의 비법이나 필살기는 모른다. 그런 게 있다면 나 역시 배우고 싶다. 미련한 소리지만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쓰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려 좀 더 수준 높은 글쓰기도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적정글쓰기’는 글쓰기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 더 나은 글쓰기를 이끄는 마중물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입문자는 없다.
요리 문외한인 요린이도 실패를 극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대로 된 밥상을 차리는 것처럼, 기초부터 차근차근 실천하다 보면 어느덧 좋은 작품이 완성될 것이다.
무언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미루지 말자. 나도 당신과 함께 쓰겠다.
지금 컴퓨터를 켜자. Righ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