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하기: 무엇을 만들지 정합니다.
준비하기: 재료와 조리기구를 준비합니다.
음식 만들기: 재료를 다듬고 계량하여 조리방법에 따라 음식을 만듭니다.
상 차리기와 식사하기: 음식을 알맞은 식기에 담아 상을 차린 후 먹습니다.
뒷정리 및 평가하기
초등학교 실과 교과서에 나온 음식의 조리과정이다. 글쓰기 프로세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떤 글을 쓸지 계획하고(주제), 내용이 될 재료를 모으고(글감), 뼈대를 세워 재료 중 쓸 만한 것들과 버릴 것들을 걸러내고(구성), 문장으로 살을 붙이고(문장 쓰기), 마지막으로 까칠까칠한 글의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다.(퇴고)
글쓰기 과정 역시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등장하므로, 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나 글쓰기 방법을 안다. 하지만 레시피를 안다고 해서 맛있는 음식이 뚝딱 생기지 않듯, 글쓰기 과정을 숙지해도 글이 저절로 써지지는 않는다. 잘 썼든, 못 썼든, 일희일비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쓰는 수밖에 없다. 다 좋은 말인데, 어떻게 ‘글 쓰는 습관’을 가질 수 있는지, 막막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과연 독자들과 교감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밀려온다.
살면서 얻는 감정과 생각이 내면에 쌓여 넘쳐흐르면 저절로 글이 된다.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희로애락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것은 기본 욕구다. 고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상호작용을 나눌 최소 하나 이상의 대상을 찾는다.
생각과 감정의 공감을 얻고 싶어 우리는 사람을 만난다. 친구와의 만남을 떠올려 보자. 카페에서 몇 시간을 수다 떨어도 대화 소재가 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화가 깊어질수록 나누고 싶은 생각과 감정은 늘어난다. 그래서 헤어질 때 아쉬워하며 말한다.
“못 다한 이야기는 이따 집에 가서 전화로 하자.”
쓸 거리가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워서’ 못 쓰는 거다. 친구에게는 털어놓을 속내는 무궁무진하지만, 글로 옮기려면 망설이게 된다. 이런 사소한 것은 ‘글감이 안 된다’고 미리 탈락시켜 버린다. 또는 글을 쓸 만한 ‘자격’이 안 된다며 지레 포기한다. 포기는 쉽다. 우리는 느리더라도 자기만의 속도대로 꾸준하게 가는 이들보다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천재’를 동경한다. ‘토끼와 거북이’의 교훈을 알지만, 속으로는 빠르고, 쉽고, 실패 없는 길을 가고 싶어 한다. 실패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혹은 ‘탁월한 기량’을 가진 신비한 존재로 인정받는 날을 고대하며, 그간의 시행착오는 감추고 싶어 한다.
이걸 아는 까닭은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나’를 꿈꾸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준비만 해왔다. 세상에 드러낼 ‘자격’을 갖출 때 까지는 '부족한 나'를 숨기고 싶었다.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의 ‘자격’을 운운했던 ‘편견’이 나를 ‘구속’한 셈이다. 오랫동안 묶어왔던 사슬을 끊기 위해 인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세상은 그런 ‘자격’을 정한 적 없었다. 그 ‘자격’은 오직 내 머릿속에만 있었다.
tvN 예능 중에서, 초등학생들의 유도시합을 보여준 프로그램이 있었다. 사연의 주인공도, 라이벌 선수도 경기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두 어린이 모두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가 있었고, 시합에 앞서 열과 성의를 다해 연습했으며, 종료시간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승부의 세계는 엄정하다. 진검승부의 감동을 보여준 두 선수는 큰 박수를 받았지만, 승패는 가려졌다. 이긴 선수는 마음껏 기뻐했고, 진 선수는 폭풍 오열했다. 시합에 진 아이가 마음껏 울도록 배려해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경기에서 졌다고 통곡한 적이 없다. 진 것도 열 받는데 울기까지 하면 '진짜 실패 한 사람'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열정’과 ‘노력’에 대하여 만족할만한 보상을 받지 못할 때 속상한 것은 당연하다. 괜찮은 '척'해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았을 거라는 왜곡된 믿음이 생겨났다. 나중에는 이런 불공정한 시합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근거 없이 떳떳하게 경기에 임하고 있는 선수들을 비난했다.
김형경 작가의 한탄처럼 우리는 성장하면서 형제와 비교당하는 양육환경, 등수를 매기는 학생 평가 시스템, 벌주는 종교 이미지, 성공 신화를 유포하는 사회에서 자라왔다. ‘하면 된다’는 과잉 긍정 신화가 타인의 불행을 끈기와 불성실함의 결과로 낙인찍었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도 미성숙한 태도지만, 마냥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철없기는 피차일반이다.
페어플레이가 지켜지지 않아 억울한 적도 있긴 했다. 기울어진 경기장 때문에 노오오오오력이 무색해진 경우도 있었다. 진짜로 사회 곳곳의 적폐들을 지적하고 싶었다면 경기장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정정당당한 승부’가 이뤄질 때까지 싸우고, 또 싸워야 했다.
‘자존심’이 상했던 거다. 승패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둔다고 해놓고, 결과에 집착했던 거다. 시합은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건데. 이기면 마음껏 좋아하고, 지면 실컷 슬퍼한 후, 또 다음 경기에 참가하면 되는 건데. 인생은 길고 앞으로도 치러야 할 경기는 무궁무진한데. 나 역시 세속적인 성공 기준에 자유롭지 못했다. 경기에 지는 것은 ‘실패’로 간주했다.
글쓰기를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피드백에 대한, 평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수치심을 느낀 횟수가 늘어날수록 경기장에서 멀어진다.
비평하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어떻게 실수하는지,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는지 지적하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로는 실제로 경기장에 나선 사람에게, 얼굴이 먼지와 땀과 피로 뒤범벅된 사람에게, 실수를 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노력이 없으면 실수나 결함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위대한 열정과 헌신이 무엇인지 알며 값진 대의에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잘해봐야 마지막에 가서나 높은 성취의 영광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결국에는 실패할지라도, 자신이 승리했는지 패배했는지도 알지 못하는 차갑고 소심한 영혼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 -
인간은 예외 없이 소중하다. 인간은 누구나 고유한 지혜와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글쓰기 ‘자격’은 없다. 삶을 그대로 쓰면 된다. 개인이 겪은 모든 체험과 생각, 느낌이 다 글감이다. 유시민 작가 말대로 ‘사는 만큼 쓴다.’
그래도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하우를 공개한다.
그다음에 할 일은 -아마 실제로 내 손으로 글을 써보는 것보다 먼저- 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을 아무튼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닐까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어찌 됐건 찬찬히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래저래 생각을 굴려본다.’ 하지만 ‘생각을 굴려본다’라고 해도, 그 일의 시시비비나 가치에 대해 조급하게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결론은 같은 건 최대한 유보해서 뒤로 미루도록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명쾌한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 일의 원래 모습을 소재로서 최대한 현상에 가까운 형태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담아두는 것입니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적정글쓰기'는 소설가나 전문 저술가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의 글쓰기지만, 글감을 모으는 방법은 다르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평소에 주변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일이나 매일매일 눈에 들어오는 광경, 일상생활 속에 만나는 사람들을 글의 소재로 활용한다. 이런 맥락 없는 기억들을 전용 뇌 캐비닛에 저장해 두고 눈덩이를 굴려 눈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하루키는 이를 영화 E.T의 ‘창고의 잡동사니를 쓸어 모아 즉석 통신장치를 만들어내는 장면’으로 예를 들었다.
손가락에 박힌 가시도 아프다. 평탄한 인생이라고 해도 그 나름의 다이내믹한 인생 여정은 펼쳐진다. 찰리 채플린 말대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러니 이젠 주저하지 말고 일상 속에서 글감을 모아보자.
다만 손가락에 박힌 가시보다 교통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사람의 아픔이 ‘객관적’으로 더 크다는 것을 알 만큼의 통찰은 요구된다. 이 수준의 분별력은 있어야 적정글쓰기의 목표인 ‘타인과의 소통’이 무난해진다. 이와 관련된 내용인 ‘메시지’는 다음 편에서 다루고자 한다.
오늘도 적정글쓰기가 함께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