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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명 Jul 06. 2020

벚꽃 인증

- 선거에 관하여

투표를 하러 갔는데, 벚꽃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길게 줄을 늘어서 있는 사람들 머리 위에 어깨 위에 투표 인증처럼 내려 앉았다. 늙은 사람, 덜 늙은 사람,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 성격이 나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왠지 억울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 성격이 나쁘고 이기적인 사람, 남을 헐뜯고 다니는 사람, 수전노 같은 사람, 특히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손을 씻지 않은 사람한테는 벚꽃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손도 씻지 않고 이기적이고 성격도 나쁜데 게으른 사람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걸러줘야 하지 않을까? 


왜 그런 사람들은 자연도태되지 않는가?

왜 이렇게 벚꽃은 무기력하고 쓸데없이 이쁜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벚꽃의 잘못은 아니고, 그런 사람을 거를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투표도 하고, 선거도 하고, 고소 고발도 하고, 심지어 탄핵도 하고 할 수 있는 걸 다 하지만, 사실 나쁜 사람을 거르는 필터는 너무 헐겁다. 세상은 그닥 유기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지 않고, 오류 투성이이며, 대충 대충 얼기설기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도 나의 라이프-패키지를 온라인으로 미리 주문해서 받아볼 수 있었으면 며칠 써보고 반품했을 것이다.


‘사양이 다른데요’, ‘접촉 불량입니다’, ‘충전 중 폭발했습니다’


어째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십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맞는 옷도 없고, 신발도 잘 없었다. 머리도 커서 겨우 맞는 모자를 40대가 되어서야 발견했다. 사람들의 체형이 슬림해진 뒤로는 품도 잘 안맞는다. 게다가 유연한 스몰 토크 같은 것도 더럽게 못한다. 투 머치 ‘엄근진’한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걸어다니는 ‘실패한 농담 사전’ 같은 존재가 되거나 둘 중 하나 뿐이다. 이렇게 살다보니 적절치 않은 순간에, 적절치 않은 장소에서 적절치 않은 화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그냥 걷는다. 화도 삭히고 마음도 추스릴 겸 걷고 또 걷는다. 오늘도 하염없이 걷다가 한남대교 남단 쯤에서 생각이 났는데, 신이 세상을 만드는 데 일주일이 아니라 적어도 3개월은 더 일을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이 일주일 만에 일을 하다가 때려치우는 바람에 내가 지금 멀리 순천향병원, 한남 오거리를 지나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생각이 들고.


그가 일주일 동안 만들다가 만 세상을 고치고, 메우느라 내가 이렇게 밤낮 없이 힘들다. 삶이 반품이 안되는 탓에 고쳐쓰는 수밖에 없다. 가끔 SNS에 보면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이런 말들이 있던데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타인을 평가할 때야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 말을 스스로에게 들이대면 섬찟하다. 가만 보면 SNS에 떠도는 말들은 다 주어가 없다. 주어가 없는 말은 ‘책임지고 싶지 않을 때’ 쓰기는 참 좋지만 딱 그때만 효과가 있다, 고 생각하면서 나는 방금 투표장에 도착했다. 벚꽃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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