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시간에 함께 점심 식사를 하던 같은 교무실 동료 선생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요즘 상황이 많이 힘들 텐데, 어떻게 그렇게 항상 밝고 긍정적이에요? 그 긍정의 원천이 뭐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어.. 저, 긍정적인 편이 아닌데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원천이 뭔지는 한번 고민해 볼게요."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퇴근길에 운전을 하며 생각했다. 아까 그 질문에 왜 제대로 대답을 못했는지 이유를 찾고 싶었다. 나는 분명 요즘 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고, 힘들다고 느끼고 있으며 간혹 사람들에게 "저 힘들어요!"라고 외치고 있는데, 나, 왜 긍정적으로 보이지? 결국 남편과 저녁 식사를 하며 이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오늘 저런 질문을 받았는데,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고. 왜인지 모르겠다고. 남편의 대답을 듣고 나는 "맞아 그거야!"하고 박수를 쳤다.
"자기는 긍정적인 편인 사람은 맞지만, 요즘 상황에서의 자기의 모습들은 긍정적인 성향이 이유가 되는 것 같지 않아. 그저 자기가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빠르게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면 때문인 거 같은데?"
이 말을 듣고 나는 격하게 공감했다. 요즘 나는 힘들지 않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사실 그렇다. 나는 조금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내가 힘든 이유는 학급에서 내가 '담임교사'라는 위치에 있기에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다르게 말과 행동을 한참을 정제해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과 표현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 그 사이를 메우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쓴다.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힘든 상황들이 내 앞에 많이 펼쳐지고 있고 나 자신도 내면적으로 너무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매일 웃는다. 그리고 심지어 꽤 즐겁고 충만한 마음을 안고 학교 생활을 한다. 내가 겉으로 표현하는 웃음, 밝은 기운, 충만한 마음은 나의 '힘듦'과는 별개다. 힘들지만 교무실에서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동료 선생님들이 있고, 학급에는 우리 선생님 조금이라도 더 힘들까 봐 내 마음을 헤아려주려고 애쓰는 강아지 같은 우리 반 아이들이 있고, 내 수업에 경청하고 호의를 표현하고 질문을 하며 생각을 공유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고, 아이들이 발표하는 처음 보는 시의 구절에서 오는 감동이 있다. 이렇게 좋은 것들이 많은데! 내 삶이 힘든 감정에 매몰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삶의 밑바탕이란 고(苦)이고, 삶의 과정이란 그저 내가 버텨낼 수 있게 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올해의 나에게 주어진 '힘듦'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올해의 나에게 다가온 '좋은'것들을 찾아내며 살아가는 것을 '긍정'으로 불러준다면,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