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럭이 들려주는 부동산 이야기 : 마케팅편
부동산 마케팅편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소개할 기업은 뛰어난 마케팅 전략으로 업계 최하위에서 1~2위를 다투는 위치로 우뚝 선 회사입니다. 바로 현대카드지요. 현대카드의 마케팅 사례는 워낙에 유명한 것들이 많아 경영대학원에서 케이스 스터디로도 많이 다루는 데요. 저는 그중에서 부동산에 관한 것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과 저는 약간의 인연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인연은 대학 때였지요. 당시 교수님 중 경영에 디자인 개념을 접목한 디자인 경영이라는 분야를 만든 분이 계셨는데, 도대체 디자인 경영이 뭔지 궁금해서 수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학기 수업 중 특강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초청강사가 바로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 이셨지요.
당시 현대카드는 M카드를 필두로 알파벳 시리즈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고,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 라는 광고로 주목을 끌 때였습니다. 정태영 사장은 첫인상부터가 일반적인 대기업 CEO와 달랐습니다. 세련된 스타일에 화술도 대단했지요.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여 있던 현대카드를 맡아 성공적으로 이끈 이야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해주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인연은 제 취업 시절입니다. 여기저기 입사 지원서를 넣었는데, 그중 한 곳이 현대자동차 였지요. 면접 대기실에 있는데, 인사 담당자가 제 이름을 보고 살짝 놀라시더군요. 회장님 사위와 이름이 같다고ㅎㅎ
정태영 사장은 종로학원 설립자인 정경진 씨의 아들입니다. 데미안 허스트 등 현대미술에 조예가 깊은 것도 이러한 금수저 집안의 영향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현대카드가 문화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은 바로 이러한 CEO의 문화적 소양에서 비롯된 것이니, CEO가 회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립니다.
과거 현대카드는 다이너스 카드라는 훌륭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업계 최하위를 면치 못하는 처지였지요. "현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수치스러운 실적에, 정몽구 회장은 MIT를 졸업하고 기아차에 갓 복귀한 사위 정태영 전무를 현대카드로 보냅니다.
직접 가 보니, 정말 상황이 심각했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직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였답니다. 패배의식도 심했구요.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직원들 사기진작을 위해 월급을 인상한 것입니다. 워낙에 적자가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인건비 좀 올라도 별 차이 안나는 느낌이었다나요. 그리고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놓고 아예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네요.
이렇게 해서 알파벳 카드가 탄생합니다. 그리고, 현대그룹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적립포인트(M포인트)를 현대/기아차 구입 시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여기에 더해 그 유명한 "아버지는 말하셨지~" 광고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현대카드는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됩니다. 일반카드의 절반 정도 크기인 현대카드 미니도 큰 화제였지요.
또한, 카드 디자인에도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일반적으로 카드사들은 카드 혜택에 초점을 맞추었고, 카드 디자인에는 큰 신경을 안 썼습니다. 그래서 카드가 안 예뻤지요. 그런데 현대카드는 색감부터 폰트까지 젊은 세대 취향에 맞춰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제시했습니다. 유심히 보지 않는 카드 테두리까지 디자인을 주었고, 티타늄 소재까지 도입하는 등 차별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카드 결제할 때 당당하게 낼 수 있는 예쁜 카드를 만든 거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시도였다고 생각되는 것이 바로 슈퍼시리즈입니다. 슈퍼매치, 슈퍼콘서트, 컬처프로젝트 등을 통해 국내에서는 볼 기회가 없던 세계적인 스타들을 무대에 올려 세웁니다. 이를 통해 현대카드의 이미지는 타사에서 따라올 수 없는 단계로 올라섰다고 생각됩니다.
- 슈퍼매치 : 사라포바 vs. 윌리엄스, 페더러 vs. 나달 등 총 12회
- 슈퍼콘서트 : 비욘세, 마룬파이브, 레이디가가, 에미넴 등 총 20회
- 컬처프로젝트 : 지브리 展, 팀 버튼 展, 장 폴 고티에 展 등 총 23회
아, 쓰다 보니 부동산 이외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ㅎㅎ 다시 부동산의 시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마케팅의 귀재 현대카드가 공간의 개념을 활용한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바로 "현대카드 라이브러리"(Library)입니다.
위에 설명드린 슈퍼시리즈와 컬처프로젝트가 문화마케팅 이었다면,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에 현대카드의 철학을 녹여내는 지적 브랜딩(Branding)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는 것을 뛰어넘어 소비자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다는 개념인데요. 이러한 스타일 발신지의 역할을 하는 곳이 라이브러리입니다.
현대카드는 "디자인, 음악, 여행"이라는 세 가지 테마를 제시하고, 이와 잘 어울리는 세 지역에 각각의 테마로 라이브러리를 오픈합니다. "가회동 디자인 라이브러리", "이태원 뮤직 라이브러리", "청담동 트래블 라이브러리" 가 바로 그곳입니다.
2013년 첫 번째 라이브러리가 가회동에 오픈했습니다. 가회동은 경복궁, 창덕궁 사이에 있는 곳으로 한옥과 현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공간이지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시간이 멈춘 듯,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지역입니다. 이러한 지역적 특색을 살려 사색과 몰입을 콘셉트로 삼았습니다. 건물 디자인도 한옥과 현대 건축물의 조화를 추구했지요.
이 곳의 키워드인 디자인은 현대카드가 마케팅에 가장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요소입니다. 가회동 라이브러리에서 현대카드는 삶 속에서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며, 자신들의 마케팅 방향에 대한 당위성을 역설하는 전략을 보여줍니다.
가장 트렌디한 현대카드가 가장 클래시컬한 장소인 가회동에서 감성적인 키워드를 꺼내든 점은,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을 개발할 때 접근했던 방법과 유사해 보이네요.
2014년 6월 두번째 라이브러리가 오픈했습니다. 여행은 이질적인 문화와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또한, 그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지요.
현대인에게 여행은 이제 일상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우르르 몰려 다니는 패키지 여행이 주류였지만, 이제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개별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FIT(Free Independent Tour)가 일반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행 떠나기 전,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수지요.
청담동 라이브러리에 가면 여행 관련 서적 1만 4,000여 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들은 1년여에 걸쳐 여행전문가들의 도움을 통해 선별/수집했다고 합니다. 12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구의 일기장'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권도 있지요.
가장 트렌디한 장소에 자리잡은 만큼 건물 외관도 스타일리쉬 합니다. 여행 분위기 물씬 나는 카페도 있지요. 구글 어스를 통해 가보고 싶은 곳을 영상으로 바로 볼 수 있는데요, 테마별 여행지를 클릭하면 트래블 라이브러리가 제안하는 코스를 볼 수 있어 여행지 선택에 도움이 됩니다.
2015년 5월, 세번째 라이브러리가 오픈했습니다. 이태원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팝음악이 소개되었고, 신중현을 비롯한 수많은 뮤지션들이 탄생한 상징적인 지역입니다. 음악을 테마로 한 공간을 만들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이지요. 이곳에는 1950년대 이후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1만 71장의 바이닐(Vinyl: 음반)과 3,298권의 음악 관련 전문도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날로그 사운드를 청취하고, 예술 작품과 견줄 만한 오래된 음반 커버를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방문객들은 공감각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을 텐데요.
지하 1층에 있는 ‘스튜디오(Studio)’에서는 연습부터 곡 작업, 데모 녹음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지하1층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지하 2층 ‘스테이지(Stage)’는 약 3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규모 스탠딩 공연장으로, 국내 최고 수준의 음향시설과 조명설비를 갖췄습니다.
대지의 절반을 비워놓은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 언더스테이지의 독특한 구조는 ‘공존과 소통’의 철학을 보여주는 데요. 2010년 프리츠커상(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수상자인 세지마 카즈요가 지형과 건물의 공존을 위해 기존의 경사를 살려 놓았습니다. 이 곳의 열린 구조를 통해 서울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훌륭한 건축물의 조건은 주변과 어우러지면서도 나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즉 개성과 조화의 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들은 이 조건을 충족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각각의 라이브러리는 서적의 큐레이팅과 인테리어, 건물의 외관이 모두 하나의 테마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어, 방문객은 공간에 머무는 동안 공감각적 체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인문학적 감성을 기반으로 일상성과 비일상성이 절묘하게 혼재된 곳, 기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공간을 통해 가장 잘 보여주는 곳, 바로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