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만남과 이별에는 그만한 ‘이유(理由)’가 있다.
코로나를 극복해보겠다고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마구 퍼먹었다. 결국 탈이 났다. 어떻게든 극복해야겠다고 일을 끌어모았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통장은 다시 채워졌지만, 나는 폭삭 늙어버렸다. 얼굴은 푸석하니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머리는 하얗게 세어버렸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게 이런 건가? 손 하나 까딱하기 싫고, 쉬어도 쉬어도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다 내 탓인 것 같고, 주변에 있는 모든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들었다. 몸도 마음도 단단히 고장이 났다.
답답할 때 여행 삼아 들렀던 파주에 정착해서 살고 싶어졌다.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을 옥죄던 생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를 틈타 조용히 파주로 이사했다. 이사하면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출판단지에 작업실로 쓸만한 공간을 물색했다.
파주출판도시 조성 2단계로 추진된 영화마을에 ‘시네페스타’라는 이름으로 지식산업센터 공사가 한창이었다. 바로 앞에는 이병률 시인이 운영하는 달 출판사와 카페가 있었고, 그 옆에는 다산콘텐츠그룹 본사 신사옥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몇 걸음 더 걸었더니 <건축학개론>,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작한 영화사 명필름 사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명필름아트센터엔 주말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상영관과 커피가 맛있는 ‘카페모음’이 있다.
그냥 다 좋았다. 높이 솟아오른 빌딩도 없고, 소음을 내는 상업시설도 없고, 나라는 존재가 조용하게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어서 더 좋았다.
지식산업센터 분양사무소에 들러 상담받고 구석구석 살펴봤다. 쾌적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맘에 쏙 들었다. 고민 끝에 손바닥만 한 공간 하나를 계약해버렸다. 책과 영화 산업의 중추에 있는 사람들이 만든 출판도시, 그들의 공동체적 가치와 정신을 나도 여기서 온전히 누리고 싶었다.
세상 모든 만남과 이별에는 그만한 ‘이유(理由)’가 있다.
출판사 이름도 ‘이유’로 지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