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체가 바로 서면 마을에 새겨지는 무늬가 달라진다
파주시 파주읍 파주5리 마을회관 2층에 ‘파주사람들이 만드는 파주 스타일 마을방송국’이 있다. 유튜브 채널에서 ‘파주 파파스TV’라고 검색하면 채널을 찾을 수 있다.
파주에서 어떻게 마을방송을 기획하게 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부천에서 문화공간 '삐지트[B:zit]'를 운영할 때 축제의 신 김정환 교수님을 모시고 특강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참가신청서에 파주시민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파주에서 부천까지 강연을 들으러 온다니, 이토록 열정적인 활동가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공무원이었다. 게다가 어공도 아니고 늘공!
파주읍 마을살리기팀 한윤자 팀장, 그녀는 신청서에 ‘주민들이 마을에서 스스로 만드는 골목축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행정에서 지원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적어 보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던 때라 강연은 소규모로 축소해서 진행했고, 기대했던 우리의 첫 만남은 불발됐다.
2020년 9월 어느 날, 남양주에서 마을신문 제작 강의를 마치고 파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 속 길안내표지판이 파주 운정 방향인 걸 보고 한윤자 팀장님이 메시지를 보내셨다.
파주에 이사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뛸 듯이 기뻐하셨다. 파주사람이 된 걸 이토록 반겨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한윤자 팀장님은 파주읍 마을살리기팀에서 ‘파주형 마을살리기 프로젝트’로 주민들과 함께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나를 유심히 지켜보시다가 만나자고 연락을 주신 거다. 퇴근 후 저녁도 좋고, 주말도 좋고, 공휴일이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2020년 10월 9일 한글날, 드디어 우리의 만남이 성사됐다.
한 팀장님은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분이었다. 가려운 부분이 어딘지 알고, 적절한 지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 협동조합 조합원 구성과 역량을 확인하고 싶으셨는지 마을학교를 운영해보자고 하셨다. 파주읍에서 그동안 진행했던 교육 프로그램과 사업 등 자료를 받아 분석했다. 조합원들과 함께 제안서를 만들어 보냈다. 강의와 액션러닝을 병행해달라는 피드백을 받고 교육과정 운영계획을 정리해서 보내드렸다.
숨어 있는 마을자원 발굴, 마을에서 평생학습, 마을에서 미디어 활동을 핵심 키워드로 마을학교를 진행했다.
협동조합 커뮤니티플랫폼 이유 조합원이 총출동했다. 김성균 박사님은 프로젝트를 총괄해주셨고, 이소연 박사님은 마을에서 평생학습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특강을 해주셨다. 이득규 조합원과 남수지 조합원은 워크숍에 쓸 대형 현수막을 디자인하고 출력해줬고, 이병국 피디는 현장 스케치 영상을 제작했다. 이혜진 작가는 주민들이 현장에서 찍어온 사진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있는 힘껏 에너지를 끌어모았다.
연말이 왔다. ‘파주목 행복연합회’가 시민총회를 열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파주목 행복연합회는 파주읍 주민자치회와 술이홀 즐겨찾기, 파주목 관아지 복원 추진위원회, 파주5리 마을살리기협의체, 파주읍 학부모연합까지 다섯 개의 공동체가 참여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도 우리 협동조합 식구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행사 진행을 도왔다. 기획 단계부터 함께 준비하면서, 온라인 생중계까지 맡아 진행했다. 주민들은 생중계가 처음이라 긴장된다고 했지만, 막상 방송이 시작된 후엔 준비된 방송인들처럼 발표를 척척 해내셨다.
마을잡지 ‘주내주민’ 발행 과정, 연풍리 거북정원 조성 과정, 20년 이상 방치되어 있던 마을회관에 아동돌봄공동체가 들어와 작은도서관을 만들어간 과정, 쓰레기가 쌓여있던 공터를 텃밭과 놀이터로 만들어 마을축제를 열었던 과정, 파주목 관아터를 중심으로 의주길을 걷는 마을여행 코스를 개발했던 과정을 들으면서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파주읍에서 마을주민과 공무원과 협동조합 커뮤니티플랫폼 이유 식구들이 함께 한 해를 마무리했다.
해가 바뀐 2021년 봄, 여전히 코로나는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파주읍 마을살리기팀에서 주민들과 함께 마을방송국을 설치하고 운영해보고 싶다고 했다. 한윤자 팀장님, 김차규 주무관, 파주5리 이장님, 마을공동체 활동가와 함께 부천 소사마을라디오, 시흥 정이마을방송국을 탐방했다.
소사마을라디오 방송 부스에서 이장님은 직접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소사마을라디오 권민혁 피디와 인재숲협동조합 이정숙 대표님이 사례탐방을 친절하게 도와주신 덕분에 ‘정말 마을에서 방송국이 가능할까?’ 물음표를 던졌던 주민들이 현장에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마을살리기팀과 방송국 설치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 빈집을 찾아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구조를 변경하고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마을살리기팀과 동네 주민들이 머리를 맞댔다. 파주5리 이장님과 마을 어르신들이 너른 마음으로 공간을 내어주신 덕분에 경기행복마을관리소, 주내마실카페, 마을방송국까지 파주5리마을회관 2층에 나란히 조성하게 됐다. 이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던 4월, 개국 준비를 위해 파주읍과 출판단지를 오가며 여러 차례 회의를 했다.
파주읍 마을살리기팀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작은 일도 조언을 구하고, 의견을 묻고, 상의해가며 일을 추진했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이런저런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마을 안에서 서로를 보듬어가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
무엇보다 전문가로 투입된 우리를 신뢰한다는 확신을 줬다.
방송국 개국하면 온 마음을 다해서 운영을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함께 일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 맡은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지지했다. 서로의 애씀을 알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칭찬할 줄 아는 사람들과 일한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지 경험했다.
마을에서 3주체인 ‘주민-행정-전문가’가 각각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는지 경험했고, 리더와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따라 마을에 새겨지는 무늬가 달라진다는 걸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