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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의 백설기 Nov 08. 2022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이태원 할로윈 약속이 있었던 전날 

사고 다음 날 이태원에서 할로윈 관련 모임이 있었다. 파티랄 것도 없이 지인들끼리 재미 있게 옷을 차려 입고 모여 술 한잔 하자는 약속이었다. 50여 명이 심정지됐다는 뉴스 보도가 150명 이상의 사망자로 바뀐 것을 보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상시 입지 않는 옷을 입은 채 바닥에 누워 CPR을 받고 있는 게 나였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참사 당일 밤 내 거취를 묻는 수많은 사람들의 걱정 섞인 연락에, '다음날 이태원에서 약속이 있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운이 좋아 사고 위험을 하루 빗겨갔을 뿐, 사고 당일 이태원에 갔더라면, 아니 그 골목에 없었더라도, 이태원 어딘가에서 '뭔일이지~, 누가 싸웠나보다, 알아서 잘 수습됐겠지'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술자리를 이어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애도의 글 속에 '요즘 친구들 제대로 노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는 페친, "솔직히 사람도 많은데 거기 왜 가는지 모르겠다", "놀다 죽은 건데 오바 아니냐", "할로윈 서양 문화인데 뭐하러 그런 델 가냐"는 칼날 같은 말을 하는 지인들을 보고 또 한번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리둥절하고, 무슨 일인지 파악할 겨를 없이 마지막을 맞았을 사람들의 고통과 유가족들의 마음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뉴스 채널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공연장에서 들려오는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이런 일이 슬프지 않거나, 답답하지 않거나, 애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들이 당일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정부가 그날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희생자를 향한 수많은 보도 속에 '착한 딸이었다, 성실한 아들이었다', '시험 마치고 친구들 만나러 간 모범생이었다', '어린 친구였다'고 그들을 묘사하는 것도 불편했다. 착했든 착하지 않았든, 날라리였든, 나이가 많든 적든, 그냥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이태원에 간 보통 사람들이 일상을 살다가 억울하게 변을 당한 것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갔다가, 아이돌 콘서트를 보러 갔다가, 월드컵 응원을 하거나 벚꽃을 보러 가거나 불꽃놀이를 보러 가도 안전하게 그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 기계나 사람에 깔릴 위험 없이 하루 종일 안전하게 일하고, 퇴근 후 안전하게 술 한 잔 하고, 자고 일어나도 사건 사고 소식이 이렇게 쌓여 있지 않은 나라에 살 권리가 있다. 

'국가가 정해놓은 애도 기간'이 끝났다. 어떤 말을 꺼내기도 겁나고, 남들이 꺼낸 말들을 볼 용기도 없었다. 섣불리 꺼낸 말이 의식 있는 척 하는 글처럼 보일까봐 겁도 났다. 주변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생업과 연관된 각종 행사가 취소되고, 계약이 엎어지고, 생계에 위협을 받았다. 코로나 이후 간신히 꺼진 불씨를 되살린 그들이다. 애도의 크기와 기간과 방법을 정해주거나 상대의 슬픔이 결코 작을 것이라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픔을 표현하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날 이후 우리 모두는 만날 사람을 만나고, 해야 할 프로젝트를 해야 하며, 웃어야 할 일들에는 웃음이 나오는, 여전히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시간에 놓여 있다. 왜 더 슬퍼하지 않냐고, 어떻게 일상을 그대로 살아가냐고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중 누구도 일상을 살다가 갑자기 참사의 희생자가 되서는 안된다. 예측 가능한 상황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던 공권력, 행정력, 국가의 부재가 잘못이다. 난 사고 이후로도 친구들을 만나고, 술도 마시고, 회의를 잡고, 그림도 그리고 데이트도 한다. 그런 일상을 살고 있는 나와 당신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CPR을 하지 못하고 도망쳤다던 누군가도, 상황을 모른 채 건너편에서 즐겁게 술을 마셨다는 누군가도, 홀로 인파를 통제해야 했던 어떤 경찰관도. 그날, 그 시간에 이태원을 걷던 그 누구도 잘못한 이는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의 심신의 안정을 기원한다. 
참사 생존자의 글을 덧붙인다.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 - 스퀘어 카테고리 (theqo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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