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떡해요...?"
"다시 해야지 뭐."
"이걸요? 시간이 너무 부족한데."
"하다 보면, 의외의 답이 찾아지기도 하니까."
박 선배는 꽤 막막해 보이는 일들도 쉽게 받아들이곤 했다. 누구나 좌절할 만한 상황조차 그에게 다가서면 '그리 큰일 난 것은 아닌,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할 방법이 있는' 일들이 되었다. 도저히 해결할 요량이 없는 역경조차 '최악은 피할 수 있는,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는 하늘이 무너져도 가장 소중한 것을 마지막까지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보였다.
당시엔 박 선배의 나이가 나보다 많아서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나이를 지나 오랜 시간을 흘려보니 이건 단순히 연륜의 문제가 아니었다. 따져보니 그가 항상 능숙하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것 같진 않다. 그저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해결할 방법을 찾은 후 그것을 실행에 옮길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굉장히 짧았다.
그 과정엔 내게 없는 어떤 장치가 있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처럼 바라보게 하는 듯한,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을 가진 신박한 장치. 그래서 그것이 개인적 어려움이든 난이도 높은 업무 상황이든 다음 스텝으로의 전환이 빨랐던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 그가 갖고 있던 장치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회복탄력성. 박 선배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다.
인생의 전반적인 관점에서는 삶의 목적이나 계획, 행복과 같은 것들이 중요하겠지만,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복적이든 아니든, 예상을 했든 못했든, 일상에서는 순탄치 않은 일들이 늘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역경의 순간들은 마치 내가 편히 하루를 보내는 꼴은 보기 싫다는 듯 변칙적이고 집요하게 다가와 이곳저곳 어지른다. 그 장면을 때론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더러는 눈을 감기도 하며, 어쩌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겼었을 때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힘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한다. 똑같은 역경을 겪어도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실의와 좌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높은 사람들은 빠른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거나 극복하곤 한다.
이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일까. 네 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기억 속 박 선배와 비교하며.
1. 긍정적인 예측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삶에 대해 보다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에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좀 꼬아서 말하자면) 또렷하게 보는 것보다 희미하게 보는 경향이 강하고, 자신에 대해서도 일단 좋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왠지 증권 등 분석 관련 업무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박 선배를 떠올려 보면 딱히 일을 휘뚜루마뚜루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꽤 꼼꼼했다. 그러니 이는 '판단'보다는 '태도'에 가까운 특징일 것이다.
박 선배가 정말 자주 하던 말이 있었는데 "(따져보면) 못할 건 없다"라는 말이다. 그는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것, 예컨대 갑자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거나 물리적으로 도저히 시간 내에 할 수 없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받았을 때, 걱정을 앞세우는 나와 달랐다. 못할 게 있겠냐며 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따져보곤 했다.
박 선배가 자주 하던 또 다른 말이 있다. "하다 보면 결국 되더라고."
2. 적응력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고 새로운 사고방식에도 개방적이다.
나는 환경 변화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중요한 일일수록 더 많이 준비하고 연습하며 발생할 수 있는 변수들을 최소화시킨다. 자주 머무는 장소, 예컨대 사무실 책상의 경우도 내가 생활하기 좋은 환경으로 세팅하기 위해 긴 시간 공을 들인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변화나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면 오일 호스가 빠진 엔진처럼 뚝딱거린다.
사무 공간만 본다면 박 선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배치해 둔다거나 업무 효율을 높기 위한 여러 장치를 둔다. 하지만 그 공간이 갑작스레 침해를 당한다거나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놓여도 그는 빠르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장면의 일부가 되곤 했다.
박 선배와 나의 차이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혹은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 이는 기존의 것들을 예측 가능한 온전한 상태로 유지하고자 하는 태도와도 닿아있다. 이 차이가 적응력에 영향을 미친다.
3. 감정 조절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침착하다. 본연의 집중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는 감정이 없다거나 자신에게 무디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 번은 고대했던 입찰 건이 사소한 이유로 무효 처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것을 오랜 시간 준비했던 박 선배는 다른 팀원들과 마찬가지로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었고 충분히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태도를 정비한 사람은 그였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오늘은 맛있는 거 먹자. 내일 방법을 찾아보자."
감정은 존재한다. 다만 박 선배는 그것이 머무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에 기대어 시간을 흘리기보다는 '꼭 이렇게까지 힘들어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되짚는 태도가 그에겐 있었다.
박 선배를 필두로 한 노력에도 그 입찰 건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에 수립해 둔 체계로 인해 다시는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4. 문제 해결 능력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문제 해결에 능숙하며 직면한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앞의 특징들을 모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긍정적인 예측을 하고 빠르게 적응하며 감정 조절이 가능하니 눈앞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볼 에너지도 많이 남아있는 셈이다.
박 선배도 그랬다. 더 좋은 해결책을 찾아내곤 했다. 이따금 그것이 오답에 가까울 때도 있었다. 그러면 다시 더 나은 방안을 찾았다.
주변에서 박 선배 같은 사람을 보고 있자면 '그냥 저렇게 타고난 사람이 있지. 나랑은 달라'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맞다. 그런 사람이 있다. 능력이 좋고 유연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역경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는 담대한 사람. 심지어 인격도 좋아서 주변의 호의를 사는 인물. 내가 도달하기엔 너무나 멀어 보인다.
박 선배가 될 수는 없다. 정확히는 박 선배가 될 필요가 없다. 사람의 모양이 저마다 달라서다. 내가 가진 좋은 면들도 있다. 다만 그처럼 회복탄력성을 높여둔다면, 그 장치를 나에게도 들인다면, 어려운 상황에서 좀 더 수월하게 손을 짚고 발을 뻗으며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을까. 느낌적으로 되질 않는데 막연하게 긍정적 예측을 하거나 감정 조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도 그 방법이 있다고 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모아봤다.
1. 명상하는 습관
명상과 심호흡을 하면 스트레스를 줄이고 감정 조절을 할 수 있는 자원이 늘어난다고 한다.
명상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저 멀리 바다 위 햇살이 스미는 마루에서 가장 편안한 옷을 입고 차분하게 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명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기다리다 간 영원히 그것을 할 수 없다. '명상'이 아닌 '명상하는 습관'이라고 적힌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금, 잠시 스마트폰을 놓고 눈을 감아보자. 그리고 심호흡을 길게 늘인다.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씩 물리며 멍을 때린다. 자연스레 명상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주변이 소란스럽다면 이어폰을 끼고 잔잔한 음악을 재생한다. 개인적으로 자기 위해 눕기 전에 잠시 앉아서 시간을 갖는 게 가장 효과적인 듯하다. 요는 내가 그 효과를 체감하는 게 아니다. 그저 눈을 감고 생각을 지우고 숨을 골라 쉬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는 발생하고 있다.
하루 중 이런 시간을 늘려보자.
2. 사회적 지지
"사회적 지지를 넓히세요." 사실 이 말은 나에게 반가움보다 저항감을 먼저 갖게 한다. 반드시 넓은 관계망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복탄력성에서 말하는 사회적 지지는 많은 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적더라도 질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 나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며 존중하는 상대를 의미한다. 나 역시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도 위로와 응원을 할 수 있는 사람.
심리학자 로저스(C.Rogers)는 '무조건적 존중(unconditional regard)'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이는 상대방의 감정이나 사고, 행동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한다. 상대방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거나 어떤 잘못을 저질렀어도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를 귀중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상담 장면을 예로, 무조건적인 존중을 받는 내담자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대해 성공적으로 바라보고 그 해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고.
다시 말해, 나에게 무조건적 존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무조건적인 존중을 해줄 수 상대가 있다면, 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끈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내 주변에 무조건적 존중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의 대화를 소중히 여기고 나 역시 그럴 수 있어야 한다.
3. 문제 해결 연습하기
역경은 미리 연락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대비하고 있을 때는 잠잠하다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들이닥친다. 혹은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할 만큼 원치 않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다가온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그것에 범람당하는 이유다.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연습이다. 당하기보다 해결을 하려면 연습이 필요한 셈. 퍼즐이나 수수께끼와 같이 문제 해결이 필요한 활동을 통해 '문제 해결력'을 키울 수 있다. 이것은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근육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문제 그 자체를 우선순위에 따라 분해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애들이나 하는 걸 왜 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애들’일 때 제대로 연습하지 않아서 성장하지 못했거나 혹은 너무 오래도록 방치해서 능력이 퇴화한 것이다. 연습하지 않으면 쌓이지 않는다. 작은 과제부터 시작하면 어려운 과제까지 해볼 수 있다. 박 선배는 '일상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일들을 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것을 클리어하는 재미가 있다고.
4. 건강한 신체 만들기
뻔한 얘기 같은데 그만큼 중요하다. 위의 어떤 방법들보다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건강한 신체가 건강한 정신을 견인하는 건 이미 수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건강 관리를 하지 않으면서 멘탈 컨디션이 좋길 바라는 건 비바람 속에서 옷이 마르길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다.
건강, 신체, 이런 단어를 들으면 헬스장부터 끊어야 할 것 같고, 이번 주는 바쁘고 약속도 많으니 다음 주부터 하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혹은 이 모든 복잡한 일들이 끝나면 바로 시작해야겠다고.
하지만 숱한 경험이 이미 그 답을 말해줬다. 그 좋은 날은 오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대단한 시작이 아닌 작은 반복을 일상에 녹여내며 조금씩 축적하는 게 더 실현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오늘 당장 일찍 잠에 드는 것. 한 끼라도 건강하게 먹는 것. 그런 작은 관심들이 쌓여 몸을 움직이고 체력까지 단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