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무혈성 괴사'라는 이름도 증상도 무서운 이 병은 나를 제대로 걷지도 앉지도 눕지도 못하게 했다. 지나가는 독감 정도로 못 본 척 하기엔 집요하고 뾰족하더라. 결국 활동의 크기와 가짓수를 줄이고 회복에 전념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일을 겪었다. 바뀐 건 몸의 상태일 뿐인데 내 기분도 몸의 컨디션을 따라 어두운 곳으로 침전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깼다. 마치 계속 못 잤던 것처럼 눈가가 시렸고, 그렇게 어두운 천장을 조용히 바라봤다. 문득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잘 흘려낼 수 없을 것처럼.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행복'보다 더 오랫동안 열심히 연구된 주제는 없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그리스 철학자, 성경의 교리, 현대의 이론과 과학, 자기계발 서적에 이르기까지, 행복은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목표이자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연구의 흐름은 '행복에 가장 오랜 시간 기여하는 게 결국 신체의 건강'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몸의 건강 상태는 우리의 감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동기, 회복탄력성 등은 우리가 흔히 '감정'이라고 부르는 여러 차원 중 일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동시에 신체적인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몸의 기본적인 상태가 건강해야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고, 몸을 편히 다룰 수 있어야 무언가에 대한 동기도 생길 것이다.
물론 질병이나 어려운 경험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동기를 찾고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책이나 영화의 감동적인 이야기만큼 수월하지 않다. 영화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끝이 나지만, 내 일상은 여전히 아프고 불편하며 그것이 매일 반복되기 때문이다.
둘째, 몸의 건강 상태는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결정한다.
감정이란 게 굉장히 변덕스럽다고 한다. 마치 주식이나 날씨처럼 말이다. 주식 얘기가 나왔으니 예로 들자면, 내가 가진 종목의 가격이 오른 것을 보고 기분이 막 좋아진다. 주식 앱을 끄고 카톡을 연다. 상사가 날 찾는다. 화장실 온 지 3분도 안된 것 같은데 답답하고 짜증 나는 기분이다. 서둘러 변기물을 내린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 골칫덩어리였던 변비가 해결됐다. 속이 다 시원하다. 어 뭐야, 아까 빨갛게 오르던 주식이 파란색의 긴 막대를 만들며 떨어지고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스스로 그 모든 순간을 정의하지 않을 뿐 나를 지나쳐가는 감정들은 이토록 변덕스럽다. 기분이 분명 좋았는데 좋지 않고, 나빠졌는데 좋다. 이러한 변덕은 몸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부정적인 방향으로 더 심해진다고 한다. 기분 좋게 받아들이거나 즐겁게 시도하려던 것들에서 그 한계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내 태도를 조정하는 것들 조차, 몸이 성치 않으면 결심이 필요한 미션들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손톱 밑의 가시'라는 격언은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인사이트를 담고 있다.
손톱 밑의 가시:
손톱 밑에 가시가 들면 매우 고통스럽고 성가시다는 뜻으로, 늘 마음에 꺼림칙하게 걸리는 일을 이르는 말.
손톱 밑 가시가 마음속 가시로
신경과학과 신진대사 연구에서는 이를 생활 습관의 중요성과 연결한다. 나의 '생활 습관'과 '생물학적 기전'은 상호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공생 관계이기 때문에 평소의 건강 관리가 결국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생활 습관(Life style)'은 '식이섬유 부족, 운동 부족, 적은 수면, 만성 스트레스, 흡연, 햇살 부족, 가공식품 섭취 등' 반복되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생물학적 기전(biological mechanism)'은 '인슐린저항성, 만성적인 염증, 장내 미생물, 빠른 노화, 신경전달물질 장애 등' 유전적인 요소를 포함하여 신체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화학적 상호작용이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일생에 걸쳐 반복되면서 신체 건강(Physical disease)과 정신 건강(Mental disease)의 기초가 된다. 예컨대 어젯밤 수면의 질은 수많은 유전자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오늘 먹은 것들은 몸에서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을 생성하고 전환하는 데 필요한 성분을 제공하며, 신체 활동의 빈도와 강도는 수십 가지 호르몬의 기능을 수정하고 심지어 장내 미생물 군집의 상태까지 변화시킨다. 그리고 이로 인한 컨디션은 내 감정에 수시로 영향을 미친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유전자와 후천적 유전체 수준, 장기의 능력,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등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상호 작용의 산물인 셈이다.
'행복'은 오래 연구된 주제인 만큼 마케팅 관점에서도 매력적인 키워드다. 따라서 어떤 글을 보면 마치 내면에서 빅뱅 수준의 깨달음이 생겨야만 얻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신기루 같은 선물을 내 삶에 들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글에 숨겨진 상품의 판매가 일어난다.
그런데 앞의 과학적 연구들은 더 실제적이고 의미 있는 한 가지 결론을 말해준다. 행복은 단 한 번의 놀라운 순간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습관'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
글의 서두로 돌아가서, 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건강 문제는 '말끔히 낫고 다시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을 꿈꾸게 했다. 로또 당첨처럼 극적인 변화의 순간을 상상한 것이다. 따져보니 그런 생각이 오히려 더 나은 순간의 접근을 더디게 했다. 그래서 오늘을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식단이나 운동보다 가까이 있는, 일찍 자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건강에 좋은 습관을 하나씩 늘리고, 좋지 않은 반복을 하나씩 줄였다.
시간이 흘러, 몸의 상태는 꽤 의미 있는 수준까지 회복되었다. 그리고 기분도 예전의 긍정적인 그것으로 돌아왔다. 이는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시도가 아닌, 단지 몸의 회복을 위한 노력 결과다.
손톱 밑 가시를 빼자
언젠가부터 당신의 기분이 예전 같지 않다면, 뭘 해도 딱히 즐겁지 않다면, 그것은 정신이 아닌 몸의 건강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당장의 부정적 기분을 해소하기 위한 선택만을 하면 건강이 더 나빠지면서 악순환을 만들 게 된다. 차라리 몸에 좋은 습관을 하나씩 늘려보는 게 어떨까. 사소한 것들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