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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Sep 17. 2022

문득, 혼자이고 싶을 때

외로움을 고독으로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시간을 통해 구성원으로서의 보상을 받는다. 수많은 연구들은 말했다. 사회적인 활동은 인간의 감정적, 육체적 만족에 필수 요건이라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정량의 정신적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예컨대 지속적인 관계를 위해 상대방이나 상황에 어울리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 상사는 오늘도 이해할 수 없는 농담을 던지고, 고된 일상에 지쳐가는 주변은 내 일상까지 무겁게 만든다. 가까운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혼자일 때에 비해서는 일정량의 긴장감이 필요해진다. 그렇게 하루 대부분의 장면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매일 반복된다.


그래서일까.

거대한 일상의 물살에 휩쓸려가다 보면 문득, 혼자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사회적 노이즈와 책임이 없는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글은 혼자 보내는 시간의 가치와 연구 결과들, 그리고 그 효과적인 방법을 다룬다.




#. 혼자 보내는 시간의 가치


나 혼자만의 시간(이하 '나만의 시간')이 정신 건강에 중요하다는 연구는 발에 치이게 많다. 이에 따르면, 나만의 시간은 몸에 배어있는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 경험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과정에서 내면 깊숙한 곳의 목소리를 알아채거나 복잡하게 얽혀있던 생각의 고리를 풀 수 있다. 부끄러웠던 기억을 곱게 안아주기도 한다.


심지어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이런 시간이 창의적인 상상으로도 이어진다고 한다. 따져보니 그렇다. 혼자 하는 생각에는 제약이 없다. 무한한 영역을 자유로이 유영하다 보면 전에 본 적 없는 작고 새로운 공간에 이르게 된다. 삶이 바빠서, 누군가를 신경 쓰느라 딱히 발 뻗어보지 못했던 그곳을, 우리는 창의성이라고 한다.


창의성:
‘새롭고, 독창적이고,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 또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서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거나, 비일상적인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 등 창의성의 개념은 매우 다양하다. 초기에는 창의성은 주로 유창성, 융통성, 독창성, 정교성을 포함하는 확산적 사고의 관점에서만 연구되었으나, 그 후에는 수렴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를 포함하는 다양한 지적 능력, 인성, 지식, 환경의 총체적인 관점에서 연구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2020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스스로 ‘혼자라고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상상력과 관련된 신경 회로의 활동이 증가했다. 사회적 자극이 부족하여 생긴 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상상력의 모터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나만의 시간이 정신 건강에 중요하다는 여러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겐 그런 시간 자체가 곤욕이기도 하다.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보다 전기 충격의 고통을 더 선호한다’는 (혼자를 즐기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놀라운) 결과를 발견하기도 했다. 왜 그런 것일까. 전문가들은 아래의 세 가지 이유를 꼽았다.


혼자 있는 경험 자체의 부족: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서 혼자 있는 시간 자체가 낯선 경우다. 갑작스레 사라진 사회적 자극이 소외감이나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


안 좋은 생각과 감정에 매몰: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부정적이었던 경험을 반추하거나 주로 걱정스러운 생각에 몰두하는 경우다. 이 경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게 고통으로 느껴질 수 있다.


사회적인 시선에 대한 불안: 대인관계가 좁은 사람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혼자인 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자신이 즐기는 취미조차 혼자 하는 상황을 되도록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저녁 식사나 영화 관람 등 누군가의 눈에 띄는 활동일 경우 더욱 그랬다. 혼자라는 인식이 ‘이것은 나에게 즐거운 활동이다'라는 생각에도 영향을 주는 셈이다.




#.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건 배고픔이나 피곤함처럼 일종의 자연스러운 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무시해버리곤 한다. 배고픔과 피곤함을 체감할 수 있는 이유는 먹거나 자지 않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접근이 필요하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는 징후는 다음과 같다.


성질이 급해졌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들이 흥미롭지 않다.

주변의 상황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집중하는 게 쉽지 않다.

타인과의 시간이 편치 않고 불안할 때가 많다.


혹시 다 해당된다면, 얼른 짐부터...!




#.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보내려면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다. 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모든 장면을 멈추고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주기적으로 짧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평소 약 10%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대한 부정적 태도나 감정이 감소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 선택이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혼자가 되어 이런 시간을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스스로 선택한 시간'일 때 그 효과가 발생한다. (모든 선택이 그렇듯) 내가 선택했을 때 비로소 그 시간을 내 의도와 맞게 사용하게 되고, 원하면 언제든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나만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내기 위한 팁들이다.


시간을 지정하기: 언제 그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 명확한 일정을 정하고 그 시간 동안에는 주변인이 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미리 알린다.


하고 싶은 걸 계획하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편한 것은 아니다. 가령 외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의 경우 이런 시간이 고통일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시간에 하고 싶은 것을 미리 계획하는 게 도움이 된다. 책을 읽거나 원하는 주제를 공부할 수도 있다. 일기를 쓴다. 그냥 숨만 쉬고 싶을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해 보자.


밖에서 걷기: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안녕감에 긍정적이라는 연구가 많다. 몰아치는 사회생활로 인해 답답 & 막막하다고 느낀다면 고즈넉한 경치의 변화를 즐기면서 홀로 야외 산책을 해보자. 걷고 싶지 않다면 경치가 보이는 한 적한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선택도 가능하다.


소셜 미디어 OFF!: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사회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는 사회적인 맥락을 상기시키고, 특히 비교를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비교의 무서움은 이웃효과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나만의 시간 동안 소셜 미디어를 멀리하는 건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사회적인 장과 연결된 상태로는 사실상 그 시간의 가치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 나만의 여행 실현하기


그런데 나만의 시간이라는 게, 막상 만들기가 쉽지 않다. 사회적인 구성원으로서 주변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그들은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시점에 다른 요구를 할 수 있다. 내게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특히 기혼자나 아이가 있는 경우, 가족에 대한, 양육에 대한 책임은 나만을 위한 시간 할애를 더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방법은 있다. 아래의 절차를 참고하자.


1. ‘말을’ 한다: 가족이든, 배우자이든, 직장 상사든, 우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입 밖으로 꺼내서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이 단계가 없이는 다음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2.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필요하다면 이 선택이 의미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공유한다. 예를 들어,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멍을 때리기 위해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 시간으로 내가 얻게 되는 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3. 호의에 보답한다: 만약 주변인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준다면, 나 역시 그에게 같은 배려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시간을 사용한 만큼 더 많은 역할을 맡는다거나, 상대방에게도 동일한 휴식 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


4. 융통성을 발휘한다: 위의 과정을 통해 주변에서 나에 대해 이해하고 수용하는 계기가 생긴다. 그렇게 점차 주기적인 나만의 시간을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접지 말고, 유연하게 나름의 기회를 찾아보자. 예컨대 단체 생활이나 육아 등, 365일 24시간 공동 책임을 지고 있다면 좀 더 일찍 일어나서 고요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잠을 한숨 더 자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만, 이 방법은 그 시간의 이점뿐만 아니라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는 관점에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위의 절차들로 한방에 충분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속적인 시도를 통해 점차 그 시간을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


나만의 시간은 그저 쉬는 게 아닌 일종의 여행이다. 내면으로 자유 여행을 떠나는 셈이다. 값진 모험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진짜 여행까지 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 외로움이 두렵다면


외로움은 우울증, 불안, 비만, 고혈압과 연관성이 있으며, 심지어 인지 기능 저하와 알츠하이머의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외로웠다간 정말이지 큰일이 날 것만 같은 정보인데, 사실 해당 질병들과 외로움 간 인과성은 적다. 그럼에도 지속되는 외로움이 걱정된다면 '혼자'라는 사실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외로움'과 '고독'의 개념을 구분하고 있다.


외로움(loneliness) 사회적으로 고립됐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부정적 감정이다. 타인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이 거리는 반드시 물리적인 거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관계 속에서도 내 감정이나 생각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면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반면 고독(solitude)은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이다. (참고: 사전상 의미가 그렇게 해석될 뿐, 고독이라는 단어가 문화적으로 가지는 쓸쓸함 등의 정서는 이 용어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저 혼자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굳이 의역하자면 '편안한 고독' 정도로 보는 게 적합하겠다.) 고독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상태다. 고독을 통해 자신을 깊게 들여다본 경험이 적다면 그만큼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도 어렵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을 줄이는 길이 고독에 있을지도 모른다.


외로움과 관련된 연구에서, 참여자들에게 각기 다른 글을 읽은 후 약 10분 동안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한 그룹은 외로움의 어려움에 대한 글을 읽었고, 다른 그룹은 고독의 이점에 대해 읽었다. 마지막 그룹은 아무 관련이 없는 주제를 읽었다.


그 결과, 각기 다른 조건이었음에도 모든 참여자들의 부정적인, 긍정적인 감정이 감소했다. 이는 혼자 보내는 시간의 의미를 잘 나타낸다. 반드시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현재 나에게 불필요한 감정들을 다스린 후 생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나만의 시간은, 나와의 진솔한 대화이기도 하다.


또한 '고독의 이점'에 대해 읽었던 사람들은 다른 두 그룹에 비해 긍정적인 감정이 덜 감소했다. 이는 나만의 시간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효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마치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마치 외톨이가 되는 것 같은 불안감을 주지만, 이따금 이런 시간을 갖는 게 정신 건강과 안녕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 자신과의 시간을 더 잘 즐길수록, 사회 속에서 타인과 보내는 시간도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다. 나로서 더 잘 발휘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시간을 잊고 산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내가 스스로의 내면을 원 없이 응시하고 대화했던 게 언제인지.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후회 방지 대화 사전>,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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