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대퇴골 괴사로 인해 다리가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유일한 해법은 인공뼈로 대체하는 것인데 의사 선생님께서 '아직 못 걷는 수준은 아니니 좀 더 당신의 다리로 살아갈 것’을 권했다. 복잡한 심경에 비해 주어진 미션은 간단했다. 왼쪽 다리에 무게를 지지 말 것, 최대한 적게 사용할 것.
바야흐로 중력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일상에서 중력을 높일만한 행동들을 제거하는 건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뭐랄까, 어차피 그리 활동적으로 몸을 쓰진 않았나 보다.
문제는 출퇴근 길이다. 노트북과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사실상 바위 조각에 가까운 가방을 메고 왕복 세 시간 남짓을 이동해야 하는데 이것은 더 이상 예전의 난이도가 아니었다. 심지어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지팡이가 필요하다. 한쪽 손이 항상 지팡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지하철에서의 다양한 변수 상황을 대처하지 못해 손이 꼬이거나 발이 꼬이거나 그도 아니면 바위 조각을 바닥으로 떨구곤 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고 나면 통증이 심해서 아이고아이고 노래를 부른다. 총체적인 난관.
그러던 어느 날 캐리어를 끌고 가는 누군가를 봤다. 머릿속에 강한 전류가 흘렀다. 그래, 캐리어를 쓰자. 그러면 몸을 누르고 있던 가방의 중력은 0이 된다. 게다가 그것을 누르면서 밀 수 있으니 몸의 중력도 줄일 수 있을 터였다. 마치 수납 기능이 있는 바퀴 달린 지팡이랄까!
작은 캐리어를 구입했다. 검은색이다. 길이는 짧은데 다부지다. 고르고 고른 만큼 바퀴가 부드럽다. 가장 멋진 점은 입을 위로도 열 수 있다는 것. 언제 어디에서든 쉽게 물건을 꺼낼 수 있다. 이 방법을 생각해 낸 스스로가 간만에 기특했다.
18인치 캐리어의 여행
네 개의 바퀴로 다니는 길은 두 발로 다니는 길과 조금 다르다. 예컨대 지면의 높이가 다른 곳이나 사람이 붐비는 곳을 지나기 어렵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나서는 즉시 그 차이는 시작된다. 아파트 입구의 계단 대신 옆의 내리막 통로를 이용하는 것.
"두들락두들락두들락!"
지하철역까지의 거리 500미터. 보도블록의 홈과 바퀴의 마찰이 규칙적인 충돌음을 낸다. 새벽의 냉기가 서린 거리에 바퀴 네 개의 요란스러운 비명만 울려 퍼진다. 가까이 걷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속도를 줄이고 살살 밀게 된다. 왠지 그의 출근길 풍경을 박살 내는 것만 같아서.
지하철 역에 도착하면 캐리어는 비로소 본연의 모습을 찾은 듯 유려하게 뻗어나간다. 마치 빙판 위의 컬링 볼처럼 그렇다. 터프한 보도블록과 까칠한 아스팔트를 지난 후 컬링 볼과 부드럽게 미끄러질 때의 묘한 희열이 있다.
바퀴로 다니며 가장 놀랐던 점은 우리나라 지하철이 이런 목적의 길을 매우 잘 닦아두었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든 에스컬레이커든 혹은 경사로든, 계단 없이 이동할 수 있는 루트가 있다. 전에는 이용할 일이 없어 몰랐는데, 마치 호그와트로 가는 비밀 통로처럼 반드시 있다.
다만 그중 엘리베이터는 묘한 긴장감을 견뎌야 한다. 긴 줄에 선 후부터 좁은 내부 공간을 꽉 채우고 문이 닫히기를 기다릴 때까지, (보통 20초 후 자동으로 닫힌다.) 그리고 그 문이 다시 열리기 전까지 긴장감은 지속된다. 왠지 “사지 멀쩡한 냥반이 왜 이걸 타?”라는 시선을 받는 것 같다. 지인은 실제로 그런 말을 들었었다고.
게다가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열려본 적이 없는 것처럼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가득하다. 마치 내부가 투명한 젤리 형태여서 문이 열려도 드나드는 공기가 없는 느낌이다.
그렇게 긴장감과 답답함을 견디고 나면 탁 트인 승강장을 마주하게 된다. 머지않아 열차가 도착한다. 여유로운 듯 의지가 분명한 걸음으로 빈자리를 향한다. 앉는다. 다리 사이에 캐리어를 끼고 손잡이를 내린다. 아직 턱까지 올라오는 호흡이 있다면 고른다. 노트북을 꺼내 다리 위에 둔다. 쓰던 글을 한 번 훑고, 이어서 쓰기 시작한다. 하루의 버팀목인 시간.
내릴 역에 다다르면 노트북을 넣고 캐리어의 손잡이를 뽑는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의 에단 헌트가 무기를 다루 듯 빠르고 간결하게 뽑는 게 포인트. 그런 다음 녀석과 탱고를 추듯 휘리릭 돌리며 문 앞으로 간다. 열차에서 내린 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올라간 후에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잘못 휩쓸려가다간 스텝 꼬여서 자빠지기 십상이다.
사무실 책상 위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꺼내놓은 후에야 무사히 도착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18인치 캐리어의 오전 일과는 끝이 나고, 나의 일과가 시작된다. 정신없다가 바쁘다가 “어디 여행 가세요?”라는 질문에 답하는 하루를 보낸다. 그동안 캐리어는 책상 아래서 조용한 단잠을 청한다. 이제 이 녀석은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동반자가 되었다.
인체란 게 참 신비롭다. 작은 뼈 마디 하나가 고장 났을 뿐인데 많은 변화가 생기더라. 뛰질 못하니 급한 일이 생겨도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걸어야 한다. 쪼그려 앉을 수 없어서 낮은 물건을 집으려면 체조선수처럼 무릎을 펴고 몸을 숙인다. 다시 세울 때 시간이 소요된다. 웨이트의 꽃인 데드리프트와 스쿼트도 할 수 없다. 그나마의 장기였던 제자리멀리뛰기도, 이제는 할 수 없다.
잘 뛰고 걷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게 된 지금, 불편이 깨워준 창의가 반갑다. 이따금 먼 길을 돌아가야 하고 시간을 들여 차례를 기다리지만, 바퀴 달린 가방을 타고 흘러 다니는 일상이 딱히 싫진 않다. 뭔가 더 느긋하고, 여행을 다니는 기분이랄까.
그래, 그런 것 같다. 주어진 상황을 헤아리고 꼭꼭 씹으면서 사는 것, 일상의 재미란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