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싶다.
그래야 할 이유는 많다. 수면 부족은 노화를 촉진시킨다. 당뇨, 비만, 고혈압 등의 질병 가능성도 높인다. 심지어 잠이 부족하면 동일한 자극을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 단 하룻밤의 수면 부족으로 통증 역치가 15%나 떨어진 연구 결과가 있는데, 다시 말해, (정상적인 수면 상태보다) 더 낮은 자극에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수면 부족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 연구에서 A그룹은 7시간을, B그룹은 3시간을 잤다. 다음 날 그들은 소음 스트레스가 있는 환경에서 작업을 했는데, 수면이 부족한 B그룹 사람들이 A그룹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분노와 좌절을 표현했다. 수면은 감정 조절에 필요한 전전두엽의 활동을 회복시키는데, 부족한 수면으로 이곳이 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감정 조절의 자원이 부족하니 타인의 상황을 고려하거나 공감하는 게 쉽지 않다.
사실 이런 연구 결과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는걸.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아침부터 몸의 무게가 다르다. 눈이 시큰거리기도 하고, 두통이 찾아올 때도 있다. 하루를 보내기 위한 컨디션까지 올라오는데 더 긴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잠이라는 게 뜻대로 되질 않는다.
일어나야 할 순간은 멈추지 않고 다가오는데, 눈을 감아도 뜬 것처럼 느껴진다. 따져보니 뜨고 있는 게 더 편한 것 같다. 눈꺼풀의 역할이 이리도 하찮다. 눈알을 덮는 얇은 헝겊,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만 같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의 씨름을 하다 보니 또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하품은 곧 잠에 들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로 끝나 버리고, 잠들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고통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당신의 밤이 평온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한다. 근심 많은 나를 온몸으로 안아줄 때가 있는가 하면, 때때로 미꾸라지처럼 도망가 버리는 이 녀석을 아군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최근 수면과학 6가지를 소개한다.
1. 휴대폰, 딱 놔.
일반적으로 사람이 잠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20분이라고 한다. 만약 베개에 머리를 대고 나서 잠들기까지 그 이상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면 잠들기 전 습관에 대해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침실의 온도가 적당히 선선해야 하고, 완벽하게 어두울수록 좋다. 침대 위에서는 잠자는 것 외의 활동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오후 중반부터는 카페인을 피하는 게 좋다. (음, 이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하게 기억할 내용은 핸드폰, 태블릿 등 전자기기의 사용이다.
효과적인 수면을 위해서는 잠에 들기 최소 한 시간 전부터 전자기기를 피해야 한다. 전자기기 스크린의 ‘멜라토닌 억제성’ 블루 라이트가 잠드는 시간을 10분 이상 지연시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기기들을 켜 두고 자는 것도 좋지 않다. 해당 빛들이 눈꺼풀을 통과할 수 있어서다(역시 하찮다. 눈꺼풀). 잠에 들었어도 뇌는 여전히 빛에 노출된 것처럼 인식하는 셈이다. 마치 좀비처럼, 의식은 없지만 뇌파와 심장 박동은 빠른 상태가 유지된다. 당연히 깊은 잠에 들기도 어렵다.
이에 대해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의 수면 전문가 마이클 펄리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려고 애쓰기보다는 차라리 잠이 오지 않는 상태를 인정하세요. 침대에서 일어나세요. 그렇게 뜬 눈으로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뇌에서 점차 그 침대를 ‘잠 깨우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문제가 추가됩니다. 다른 방이나 공간으로 이동하여 원하는 일을 하도록 하세요. 무엇을 해도 괜찮지만, 중요한 건 화면이나 전자기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생체리듬 재부팅
우리는 모두 잠이 필요하지만, 모두 같은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나를 포함한 야행성 인간들은 심야의 어둠 속에서 오히려 눈이 번쩍거리며 더 총명해진다. 낮에는 빛에 취약한 흡혈귀처럼 기어 다니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반면에 아침형 인간은 그 반대다. 해가 지면서 자연스레 수면을 위한 상태가 되며, 해가 떠오를 때쯤 자동으로 깨어난다.
이처럼 개개인은 수면뿐만 아니라, 운동 능력, 호르몬 분비 등 생물학적 활동의 타이밍을 결정하는 각각의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을 갖고 있는데, 문제는 흡혈귀도 예외 없이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의 활동 시간인 일과 중에는 늘 피곤할 수밖에 없다. 나도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익숙해진 생체리듬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 자체를 리셋하는 것이라고 한다. 생체리듬은 빛과 어둠 그리고 멜라토닌(수면 호르몬)의 분비, 이렇게 세 가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이것을 리셋하기 위해서는 빛과 어둠을 잘 활용해야 한다. 멜라토닌은 그 두 가지에 따라 반응할 뿐이기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더 빨리 일어나서 아침 햇살을 쐬는 것이다. 일어나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다. 더 일찍부터 자연의 빛을 쐬는 게 중요하다. ‘어둠’은 몸에서 멜라토닌을 분비하도록 신호를 보내고 체온을 낮추는 등 수면을 일으키기 위한 생리적 절차를 일으킨다. 즉 잠이 잘 오도록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타이밍은 ‘빛’에 의해 결정된다. 더 이른 아침부터 더 많은 햇살을 쐴수록, 더 이른 저녁에 더 많은 멜라토닌을 분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의 효과는 꽤 즉각적이라고 한다. 2017년 수면에 대한 연구 결과, 형광등, (아침에도 빛이 차단되는) 암막 커튼, 전자기기 화면에서 벗어나 주말에 캠핑을 보낸 사람들은 평소보다 1.4시간 일찍 멜라토닌을 분비했다. 심지어 일주일 동안 캠핑을 한 사람들은 2.6시간이나 당겨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평소보다 13배나 많은 햇살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계기로 바뀐 생체리듬을 이어가려면 하나의 규칙이 필요한데, 그것을 계기가 아닌 반복적인 패턴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말마다 캠핑을 하라고? 설마. 자연의 빛이 내 일상에 더 일찍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출 수 있다. 예컨대 아침 햇살이 집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자기 전에 커튼을 열어 둔다. 빛이 잘 들지 않는 집일 경우 아침에 햇살 아래 산책을 한다. 최대한 오래 한다. 일과 중에도 가능한 햇살을 쐬어보자. 어쩌면,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진한 숙면을 경험하게 될지도.
3. 주말 보충 수업 말고, 보충 수면
사소한 차이는 있지만 최적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를 위해선 성인 기준 7~9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
10,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억력 연구에 따르면, 평균 수면 시간이 7~9시간인 사람들은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뇌 기능이 훌륭했다. 하지만 그보다 적게 잠을 자는 사람, 심지어 더 오래 잠을 자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문제를 갖고 있었다. 이런 차이는 추론 능력, 문제 해결력 그리고 언어 능력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는데, 4시간 이하의 평균 수면 시간을 가진 사람들은 인지 능력이 8살 수준으로 감소돼 있었다. 연구자인 코너 와일드 박사는 말한다. "당신이 하루 평균 4시간을 자면서도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면, 그건 사실 최고의 결과가 아닙니다."
매일 적절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삶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더라. 만약 상황적인 이유로 주중에 잠을 적게 자야 했다면, 주말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컨대 (하루 7시간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주중에 부족한 수면을 쉬는 날이나 주말에 보충하여 일주일에 필요한 49시간을 채우는 것이다. 연구 결과, 주중 수면 부족을 주말에 보충하는 사람들은 규칙적으로 적절한 수면을 취한 사람들만큼 오래 살았다고 한다.
4. 나이가 많으면 덜 자도 된다고? 그럴 리가.
2살 아이는 하루 14시간, 9살 어린이는 12시간을 자야 한다. 반면 성인은 7~8시간 숙면으로도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 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수면 효율이 높아져서 더 적게 자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늙어서 그런가 밤 잠이 줄었어."라는 말 때문인지, 노인에 다가갈수록 수면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40대를 시작으로, 부족한 수면으로부터의 회복력을 잃기 시작한다.
노인이 되며 잠이 줄어드는(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고정된 일과를 보내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으므로 9 to 6에 맞춰 행동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수면 구조가 바뀐다. 잠이 줄어서 새벽 5시에 깨는 게 아니라, 저녁 식사를 일찍 하거나 낮잠의 기회가 더 늘어서 그렇다. 외부 활동이 줄어드니 이른 아침의 햇살을 자주 쐬지 않게 되어서다.
만약 자신의 나이가 많다는 생각에 이런 글을 식상한 눈빛으로 읽고 있었다면, 그 눈을 고쳐 뜰 타이밍이다. 여전히, 하루 최소 7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
5. 다 같은 불면증이 아니야
불면증을 겪고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굉장한 스트레스다. 십수 년 또는 수십 년을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잤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잠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불안해서다.
그러나 일주일에 2회 이상 잠에 들기 어렵더라도 이런 현상이 3개월을 넘기지 않는다면 '급성 불면증(acute insomnia)'에 속한다. 이는 정상 범주에 들어가며, 4년 동안 전 세계 모든 성인은 1회 이상의 급성 불면증을 겪고 있다. 나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
전문가들은 이 급성 불면증을 이해하기 위해 초기 인류의 생존 그리고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을 대입해 봤다. 만약 한밤중에 곰이나 늑대와 같은 짐승들이 공격할지도 모른다면, 나의 생존 여부는 ‘깨어 있는,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위험을 알아채는’ 능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현대인이 그런 위험 속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몸은 높은 스트레스에 대해 (마치 짐승들로부터의 위험이 있는 것처럼)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왜 이렇게 진화한 것일까.
2016년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외상이나 스트레스 사건 직후에 렘수면(REM sleep: rapid-eye movement sleep)을 하지 못하도록 막자 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증상이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렘수면은 깊은 숙면 단계인데, 이때 주요 기억 장치에 최근 기억의 통합이 일어난다. 즉, 우리는 은연중에 모든 사건이 반드시 나의 주요 기억 장치로 통합되길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 급성 불면증은 높은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현재에서 '더 나은 상태의 나'로 남기 위한, 전략적 반응일 수 있다.
반면에 '나에게 불면증이 있다'는 걱정이 가져오는 스트레스는 악순환을 만든다.
적게 잘수록 걱정은 더 증가하고, 이런 걱정이 많아질수록 건강한 수면으로 돌아오긴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불면증은 일반적으로 '질병, 스트레스, 상실, 여행' 등, 신체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유발된다. 수면 장애의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피로가 높은 낮에는 카페인에,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수면제에 의존하는 등, 오히려 수면을 저해하는 행동들로 이어질 수 있다.
불면증에 대한 가장 건강한 반응은 수면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아채는 것이다. 수면 그 자체는 수많은 사건과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이따금 어렵고 불편한 밤이 오겠지만, 이는 정상이며, 따라서 급성 불면증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면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라고 한다. 늦잠을 자지 않고, 낮잠도 피하고, 더 일찍 자려고 눕지도 않는다. 부족한 수면을 보상받으려 하면 잠들어도 되는 시간과 잠들 수 있는 능력 사이에 편차가 생기면서 오히려 만성적인 불면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증가한다.
스마트 워치 등을 통해 수면 시간을 측정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스스로를 불면증으로 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거의 잠을 자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기기를 통해 측정된 수면 시간을 보면 의외로 안심을 할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자고 있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잠들기 위한 압박이나 불안감이 줄어 더 많은 수면의 가능성이 열린다.
6. 가성비 최고의 꿀템, 낮잠
낮잠의 중요성은 오래도록 강조됐다. 구글과 같은 회사들은 업무 중 낮잠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미국의 기업들은 점심 후 낮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추세다. 관리자들이 관련 연구를 통해 낮잠의 이점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낮잠을 잔 직원들은 더 생산적이었고 실수도 적었다. 혁신적이 아이디어를 더 많이 떠올렸으며 시간 단위 업무량도 높았다.
이상적인 낮잠 시간은 15~20분가량이며, 점심 식사가 끝난 후부터 오후 3시 사이에 자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 시간의 20분으로 부족한 잠에 의해 약해진 주의력과 반응 시간을 모두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이후 시간의 졸음도 현격하게 줄어들고 인지 능력도 향상됐는데, 이러한 효과는 일반적으로 약 3시간 지속된다.
적절한 낮잠은 스트레스 해소와 면역 효과도 갖고 있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을 겪고 있을 경우 신체의 염증이 증가하는데, 낮잠이 이런 염증의 주요 지표인 ‘인터류킨6(Interleukin-6)’를 감소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부족한 수면으로부터 면역 및 신경 내분비계의 회복이 촉진된다는 걸 나타낸다.
당신의 밤이 오늘 더 평온하길-
모든 내용이 나의 상태나 패턴과 맞지 않을 수 있으나, 한 두 가지라도 기억 어딘가에 잘 쟁여 둔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위해 많은 자료를 뒤졌다.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닌, 새롭고 의미 있는 방법들을 담기 위함이다. 그만큼 나의, 그리고 당신의 밤이 평온하길 바란다.
밀당 없는 순수한 밤,
알람을 1분 앞서는 개운한 아침이
우리의 일상에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