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고래 Feb 26. 2024

전무후무한 대낭만의 시대

 새로운 소통의 시대가 도래했다 IV


"어? 너 허리에 그게 뭐야. 삐삐야?"

"아~ 봤어? 맞아. 하나 장만했어."


삐삐가 오면 삐삐는 그 이름 그대로 삐삐라는 소리를 냈다. 하나의 음으로 삐이삐이, 쉬었다가 다시 삐이삐이.


사실 알림 소리는 ‘삐이삐이’ 외에도 여러 버전이 있었다. 공통점은 모두 단조로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지금의 택배 소식처럼 반가운 종류의 소리였다.


삐삐의 등에는 납작한 집게가 달려 있었는데 그것을 통해 인간의 허리춤에 콤팩트하게 매달릴 수 있었다. 전면에는 숫자를 확인할 수 있는 액정이 있다. 그래서 알람이 울리면 "아~ 또 누구야 바쁜데"라면서 허리 쪽으로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모습은 뭐랄까, 가히 신인류의 느낌.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휑한 허리춤이 비웃을 뿐이다.



삐삐의 초기 목적은 연락처를 남기는 것이었다. 구입하면 마치 지금의 핸드폰처럼 고유한 번호를 얻게 된다. 012 또는 015로 시작하는 번호였는데, 이곳으로 전화를 건 후 연락처를 남기면 된다. 그러면 마치 지금의 부재중 통화처럼 누군가 나를 찾는다는 걸 알게 된다.


아마 휴대폰을 먼저 접한 세대에게 삐삐에 대해 얘기한다면 "그런 반쪽짜리 기계가 왜 필요하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해한다. 삐삐의 필요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당시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그때는,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말 그대로다. 집이나 사무실 등 전화기가 있는 실내를 벗어난 돌아오기 전까지 소식을 듣거나 먼저 연락을 해볼 수 없는 것이다. 삐삐는 인류에게 보급된 최초의 개인용 이동 통신 기기였고, 그 등장을 기점으로 세상은 전과 후가 나뉘게 되었다. 외부에 있는 사람과 단절되는 시대에서 연결되는 시대로.


외부와의 연결, 즉 길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뭔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많은 효용이 생겨난다. 단적인 예로 약속 장소가 어긋나거나 잘못된 곳에서 막연하게 기다릴 확률이 확연히 줄었다. 집에 올 시간이 되었는데 오지 않아 걱정이 되는 가족에게도 연락을 취해볼 수 있다.


이런 편의 덕에 그 전성기인 1997년 기준, 삐삐의 사용자는 인구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특히 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였다. '학생들의 삐삐 휴대, 이대로 허용해야 하는가'와 같은 주제로 여론조사가 진행됐을 정도. 학교에선 삐삐 압수를 위한 소지품 검사를 하기도 했다.


중구형, 이 장난은 선 넘은 거 아니오?


80년생에게 삐삐와 관련된 기억을 물어보면 그 탁한 동공에 일순간 작은 빛이 일렁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삐삐는 전화보다는 편지에 가깝다. 단방향 서비스인 것이다. 번호나 음성이 한쪽으로만 전달되는 이 독특한 문물은 90년대 중후반, 딱 1년, 길게는 3년만 존재하며 전무후무한 시대를 보냈다. 당시 청소년이었던 80년생에게 하나 이상의 돌아오지 않을 낭만을 남긴 것이다.



전무후무한 대낭만의 시대


이 맥락에서 말하는 낭만은 요즘 사용되는 '갬성'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아 갬성이 요즘 말이 아닌가...) 갬성은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환경을 제한하거나, 혹은 실용성은 낮지만 의미 있는 물건을 구비하여 얻는 부가적 기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말하려는 '낭만'은 실제로 제한적인 일상 속에서 빚어진 작은 에피소드들 그리고 그로 인한 여러 감정의 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2589 삐삐치신 분~?"

커피숍에 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들리던 소리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거나 혹은 커피숍에 있다가 누군가에게 전화할 일이 생기면 프런트의 전화기를 사용한다. 상대방의 삐삐에 전화를 걸어 커피숍의 번호를 남기는 것.


자리로 돌아와서 기다리면 전화가 울린다. 내 전화일까. 점원이 받고 삐삐의 뒷번호와 함께 주인을 찾는다. 당사자는 공기를 떠도는 은근한 시선을 받으며 프런트로 가서 전화를 받는다. 속삭이듯 말한다. "지금 뭐 해? 나 팡세 커피숍에 있어. 여기로 올래...?"



숫자가 가진 마법도 대단했다.

당시 '숫자'는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정보였다. 삐삐를 가진 그 누구라도 알림 소리와 함께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호출된 번호이기 때문이다. 전에 없던 즉시성, 그리고 문자에 비해 숫자가 가진 제한은 인류를 더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숫자의 나열로 숫자 이상의 것들을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탄생한 표현 중 현재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남아있는 건 8282(빨리빨리)가 아닐까 싶다. 덜 급하면 8282, 거품 물게 급하면 828282828282828282...로 왔더랬다.


와, 이건 누군지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되었던 것은 '17171771'이다. 호출된 숫자를 뒤집어서 보면 'I LUV U'로 보인다. 현시대에서도 일종의 유머로써 당시의 '삐삐 암호'가 언급되곤 하는데 우연히 그런 게시물을 보면 반가우면서 아련한 기분이 든다.



단방향 음성의 미학


삐삐의 낭만은 그것이 음성에 대한 기능을 지원하면서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다. 삐삐의 주인은 인사말을 남겨 자신을 소개했고, 전화를 건 사람도 번호와 더불어 음성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곳에선 한 방향으로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무전기 대화처럼 그 자체의 고유한 경험을 선사했다.


인사말은 일종의 ‘음성 프로필’이다.

삐삐보다 시대를 좀 더 거슬러 올라거서, 당시 가정집 전화기에는 전화를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부재중 인사말을 남겨두는 기능이 있었다. 그래서 한참 통화연결음이 흐른 후 "안녕하세요. 왕고래입니다. 지금 저희 가족은 집에 없어요. 음성을 남겨주시면 나중에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와 같은 부재중 인사말이 나오고, 전화를 건 사람은 필요에 따라 음성을 남긴다. 그러면 전화기 머리 부근에 있는 (위치상 왠지 뇌가 있을 것 같은 곳에 있는) 작은 테이프가 천천히 돌아가면서 상대방의 음성을 녹음한다.


‘어차피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삐삐에서는 그 번호로 연락한 이들에게 남기는 인사말을 남겨두는 기능이 있던 것이다. 그런데 이는 마치 지금의 카톡 프로필처럼, 점차 자신의 취향이나 개성을 나타내는 공간으로 변했다. 단방향 음성만 존재하는 세상에 남기는 나만의 음성 프로필인 것이다.


보통은 노래를 녹음해 두었던 것 같다. 기본 멘트인 기계음성은 싫고(“연락받으실 번호를 남기시려면 1번, 음성 녹음은 2번…”), 막상 내 목소리로 남기려니 온몸이 가려워지는 탓이다. 좋아하는 노래로 인사말을 만들면 개성이 중요해지던 시대에서 큰 부담 없이 타인과 나를 구분할 수 있었다. 참고로 오디오에서 노래를 재생한 후 수화기를 스피커 가까이 대고 녹음해야 한다.


물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준비한 멘트를 읽으면서 말이다. 노래를 직접 불러두는 용자도 있었고, "성호 오빠 삐삐입니다. 다른 여자분들은 지금 전화를 끊어주세요. 히히."와 같은 경고성 안내도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사말은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며 들려주는 것이었다. 어떤 계기로 그 사람의 번호가 유명해졌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그 삐삐로 전화를 걸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는 결국 매체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분 누구였는지 기억나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셔요..!)



삐삐, 그 낭만의 클라이맥스는 음성사서함이다.

그전까지 '사서함'이란 글로 쓴 편지를 전달하는 곳이었다. 그 자체로 운치와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음성사서함은 기존에 사서함이 갖고 있던 장점들을 계승하면서도 음성만이 가진 장점을 더했다. 형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 사람들은 좀 더 생생한 내용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의 크기는 물론 사랑과 슬픔의 질감 같은 것들도 말이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아공간에 대고 상대가 미래에 듣게 될 무언가를 독백하는 경험은 그 이전이나 이후에나 일상에선 존재하지 않는 일인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숨결, 흑역사들이 그 공간에 남게 되었을까. 알 수 없다. 다행히도(?) 그 모든 음성은 사라졌지만, 개인의 기억 속엔 색 바랜 액자로 남아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삐삐는 아날로그-디지털 과도기에 존재했던 조금은 기이하고 미흡한 형태의 통신 도구인 것 같다. 아날로그 수단으로 남긴 정보를 디지털로 전달하는, 어느 한쪽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 삐삐라는 도구 자체가 그 시대를 지나온 80년생의 상징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