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닷속 심해어요. 어떤 경쟁 상대도 없고, 약육강식의 포식자도 없는 상태, 내가 포식할 것도 없는 상태, 그렇게 심해어가 바다를 유영하는 상태가 가장 편안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깊은 바다에 갔을 때라는 말씀이세요?”
“네? 아니요. 그… 그러니까 저는 편안한 상태가 행복해요. 크게 좋은 일이 있으면 오히려 조금 불안한 상태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냥 아무것도 없는 그런 상태가 더….”
“아, 네. 그러면 ‘가장’ 행복한 상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
“그… 네. 그런데 가장 행복하다는 게 아니고, 가장 행복하다는 말 자체가 조금….”
이달의 사원에 뽑힌 직원을 인터뷰 중이다. 일종의 10문 10답이다. 그는 내가 아는 소심인 중에서도 특히 더 소심하다. 대범인인 질문자의 적극적인 공세와 그것에 머뭇거리는 소심인의 답변이 이어진다.
“그러면 가장 많이 웃었던 경험은 뭔가요?”
“아… 그냥 스스로 즐거워서 웃는 순간이 좋은 것 같은데, 사실 그런 상황은 자연스러운 거라서 기억엔 안 남고….”
“여기서 일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할 때, 좋았던 것 같아요.”
“그게 구체적으로 언제예요? 기억에 남는 자리라든가?”
“아… 그러니까 그게 딱 있다기보다, 그런 경험들이 좋게 남아 있어요.”
“그러면 최근에 그런 경험은 어떤 게 있었어요?”
재밌다. 그냥 그렇다는 건데 왜 질문자는 그것을 완전한 답변으로 느끼지 못하는 걸까. 최고의, 가장, 확실한 뭔가를 결과로 담아내야만 하는 소명 때문일지도. 하지만 소심인에게 그런 답변을 얻는 건 쉽지 않다. 심지어 눈앞의 상대가 상체를 바짝 당기고 앉아서는 부리부리한 눈을 번뜩이며 질문을 할 땐 더더욱 그렇다. ‘가장 어떠한’ 이야기가 있다 한들, 그걸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에 흩뿌리고 싶을 리도 없다. 자연히 일반적인 상황들로 답변하게 된다. 그러면 또 상대는 집요한 질문을 이어 붙인다.
실제 대화가 그랬던 건 아니지만, 마치 윽박지 르는 어른과 몇 개의 단어를 고르며 우물거리는 아이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하고픈 말이 역류한다. 질문자님, 그 질문은 형태를 바꿔 몇 번 더 한다고 해서 다른 답이 나오지 않아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게 좋아요.
굳이 말하진 않는다. 나도 소심인이니까.
사회적인 (아마도 대범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소심인을 이해하기 어렵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감이 안 잡힐뿐더러, 특히 관계에서는 나에 대해 어떤 식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조차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소심인의 의미 없는, 혹은 굉장히 의미 있는 행동을 과해석하거나 오해하여 관계가 이상한 형태로 흐르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소심인이 친밀한 관계가 아닌 이상 그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심인의 마음을 나타내는 몇 가지 행동 유형을 모아봤다. 모든 상황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좀 더 친근한 상대에게 나타나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