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든 것은 세일즈.
나는 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마케팅원론부터 커뮤니케이션, 광고학까지 다양한 수업들을 들었다. 여러 과목 중 마케팅 관련한 과목을 가장 많이 수강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마케팅이 가장 어려웠다. 정의부터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아직도 마케팅이 뭔지 모르겠다. 그게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런데도 체감상 링크드인 사용자 절반은 마케팅 전문가이다. 실로 넘쳐난다. 나는 아직 개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마케팅인데, 세상엔 전문가가 어찌 이리도 넘쳐날까.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마케팅 전문가의 포스팅이 대부분 본인들의 얼굴이 담긴 일상 사진이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본인 팔로워 늘리는 것 외에 달리 큰 재주는 없어 보인다. 솔직히 나는 마케팅 한다는 사람들의 젠체를 매우 싫어한다. 와중에 브랜딩 한다는 사람들의 젠체는 더 싫다.
주류 경제학의 한계가 드러나고, 행동경제학이 노벨상을 받은지(2002년) 한참 되었다. 아이팟도 그 즈음 출시(2001년) 되었다. 소비자에 대한 이해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다(소비자에 대한 정의 자체가 바뀐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마케팅은 용어만 몇 개 추가 되었을 뿐 여전히 그대로다. 물론 변하지 않을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들도 있겠지만, 내 보기에 마케팅은 '공고' 하기보다는 '정체' 되어있다. 그것도 아주 애매한 형태로 말이다.
욕을 단디 먹을 각오로 내 생각을 한번 말해보자면, 나는 마케팅이 세일즈 현장과 분리되고, 동시에 학문화 되면서 이런 현상들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제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말이지만, 상당 수의 마케터 호소자들은 자신들이 세일즈의 조직의 상위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른 상당 수의 브랜더 호소자들은 자신들이 더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나는 세일즈는 잘 몰라요. 잘 못 해요. 전 마케터예요'라고 하는 사람도 보았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경험상 글로벌한 현상임이 분명하다.
학위 받고,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별도 채용공고 뜨고, 현장 나갈 일 없이 사무실에 앉아, 뜬구름 잡는 얘기 하다가, 예산 집행하며 갑의 위치에 있으니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 가 싶다.
'그건 니가 제대로 된 마케터를 만나서 일해 본 적이 없어서 하는 말이고.' 맞는 말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믿는 사람이다.
내 좁은 울타리 안에도 분명히 마케팅이라는 영역과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다. 이들은 마케팅을 세일즈의 파생으로, 세일즈를 돕는 도구로 인식한다. 때문에 많은 갈래가 있다 할지라도, 거꾸로 타고 올라가면 결국 그것들은 세일즈에 이르게 된다. 즉 마케팅의 알파와 오메가는 언제나 세일즈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내가 그들을 신뢰하는 점이다.
그들은 우선 제품을 낱낱이 분석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시장을 요소별로 해체한다. 시간을 기준으로 쪼개고, 포지션에 따라 나누고, 접근성을 구분하고, 위계를 파악하는 등 완전히 인수분해 한다. 그리고는 그에 맞는 채널과 메세지, 빈도 등을 전략적으로 설정한다. 물론 내가 몇 줄로 적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분석과 이론적 배경, 경험칙이 소요된다.
나는 세일즈와 동떨어진 마케팅을 싫어하는 것이지, 세일즈의 일부 또는 특화로써의 마케팅에는 진심이다.
나와 같은 초기 스타트업(비록 연차는 조금 되었지만)의 마케팅은 어때야 할까?
초기 스타트업의 마케팅은 대표 혹은 파운더가 직접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내 목표 시장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다. 때문에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내부 마케팅 담당자를 채용한 적이 있다. 프랑스어와 영어에 매우 능통한 사람이었지만, 효율적이지 못 했다. 우선 나눌만큼의 일이 없었고,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이 컨텐츠와 자원의 한계로 인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혼자 하게 되었다.
나는 피치덱pitchdeck, 제품덱product deck, 제품 영상 그리고 회사와 제품에 관해 정리된 5,000자 내외의 원고를 골자로 했다. 전부 직접 할 수 있는 것들이고, 직접 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일종의 원재료raw material이기 때문에 대표의 가치관과 대표가 생각하는 제품이 그대로 녹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형태로 가공 되더라도 일관된 메시지를 유지할 수 있다.(영상의 경우는 필요에 따라 외주를 줄 수도 있지만, 짧은 수고를 들여 배워두면 써먹을 일이 많다.)
이것들을 가지고 웹사이트, 이메일, 링크드인, 오픈 이노베이션에 사용했다. 나는 B2B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이 정도 채널에만 집중하면 충분하다 판단했다. 효과는 충분히 보아오고 있다. 언급한 모든 채널을 통해서 세일즈를 위한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마케팅에 소용되는 자원에 엄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일즈(투자자와 클라이언트)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마케팅은 공짜 기회라 해도 다시 고려해봐야 한다. 덧붙여, CMOchief marketing officer는 C-레벨 중 가장 마지막에 고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외주로 파트 타임으로 좋은 의견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