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 스타트업의 / 창업자의 지속가능성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화두이다. 일반기업, 스타트업을 가리지 않는다. 그만큼 적용되는 분야에 따라 정의도 다양하다. 일축하기 힘들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지속가능성에는 세 가지 축이 있다고 한다.
✅ 환경적environmental 지속가능성
→ 천연자원을 보호하고, 오염과 쓰레기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것
✅ 경제적economic 지속가능성
→ 환경과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것
✅ 사회적social 지속가능성
→ 평등, 포용, 인권등을 보장하는 것. 이를 위한 근로/교육/건강/기회의 보장
소비에 있어 지속간으성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형성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생산과 판매의 의식 변화를 이끈다. 대유행의 시대(covid-19)를 겪으면서 더욱더 공고해 지고 있다.
착취에 기반한 제국주의식 경제/환경/사회적 접근은 더이상 새로운 진입이 불가한 상태에 이르렀다. 좋은 일이다.
스타트업에 있어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보틀리스도 위에 정리된 세 가지 종류의 지속가능성을 이차 목표로 하고 있다. 일차는 당연히 비즈니스 자체의 성공이다. 일차와 이차의 구분은 선택의 문제라기 보다는, 단지 선후의 문제일 뿐, 매우 긴밀한 연관성, 때로는 동시성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어떤 분께서 보틀리스는 왜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하고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매우 확신에 차서 답변 드렸다. 왜냐면 평소부터 늘 고민해오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래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요.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공생하고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보틀리스는 나의 두 번 째 창업이고, 나는 앞으로도 최소한 세 번 이상의 창업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죽을 때 까지, 스타트업 바닥에서 뒹굴고 싶다. 그렇게, 아주 대략적인 나의 미래를 그리다 보니, 생각보다 결론이 빨리 나왔다. 내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창업자founder의 지속가능성이 곧 스타트업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결론이었다.
스타트업을 업job으로 삼기 위한 창업자에게는 어떤 것들이 충족되어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역시 우선은 경제적인 것이었다. 다른 무엇이 있겠나.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하고, 이 시대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결국 경제적인 것으로 연결되는 것이 당연하니까. 즉, 일반적인 지속가능성에서의 경제적 속성이 스타트업, 아니 창업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경제적 안정성, 더이상 논할 필요도 없는 조건이었다.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성을 (오직 주업main job으로만)전제하고나니, 다음이 궁금해졌다. 둘 중 하나 같은데, 고민이 되었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그냥 건강으로 퉁치기로 했다. 족히 몇 천년은 이어져 온 문제일테니까 말이다. 여기까지도 일반적인 지속가능성의 속성 중 사회적 속성의 일부에 해당한다. 기회, 인권, 이런 문제는 창업자인 나에게는 그닥 중요한 단어는 아니었다. 스타트업을 할 수 잇다는 것이 이미 나에겐 기회이고 인권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나니,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내 삶에도 굉장히 밀접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 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환경적 속성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사회구성원으로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이미 규제 당하고 있는 속성이기 때문에, 떼어 낼래야 떼어 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으면 내 쓰레기는 가져가지 않는다. 충분한 사례가 되었다.
조금 관념적인 것이 된 것 같아, 다시 구체적인 내 사례로 돌아와 생각해 보았다. 경제적 안정 다음의 조건 건강.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는 또 무엇이 수반 되어야 할까. 둘 모두를 위한, 각 분야에서 좀 한다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것이 하나 있다. 걷기이다. 그것이 조금 빠르건(운동으로써의) 느리건(철학으로써의) 간에 일단 꾸준히 걷는 것.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설명들이 너무 많으므로 생략하고.
조금 웃기다, 스타트업을 업으로 삼기 지속가능성의 전제와 결론이 창업자의 경제적 안정과 걷기라니.
정말 이게 끝인지, 그 외에 다른 것들이 있진 않나 싶어 지난 10년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내 정의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타트업은 나의 업job이 아닌 삶life이었다. 비록 삶의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삶의 매우 뚜렷한 부분이었다. 평소에도 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라는 말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강제적인 분리와 분절이 오히려 무엇도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그저 나머지 삶을 위한 도구로만 여기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는 더 커지고, 그렇게 떼어나고 남은 반쪽짜리 삶을 살기 때문이다. 절대 신자유주의적 노동 행태와 헌신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속가능성을 믿는 만큼 당연히 신자유주의를 격렬히 싫어한다.
내가 찾아야 할 것은 스타트업이 나의 삶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그렇다고 해서 전제조건이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경제적인 안정성이 필요하며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다. 다만 삶에 임하는 나의 태도라는 새롭고 매우 주관적인 조건이 추가 되었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니까.
나는 나의 삶이 즐겁고 행복하다. 다만 그것이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