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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창업을 위한 취업¹

저는 좋았습니다만...

by 아스파라거스

창업을 위해 취업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물으신다면,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내 경험은 조직의 규모와 특성, 시기와 시간 등 여러 면에서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는 큰 조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나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의 바탕이 되는 거의 모든 것, 특히 유튜브나 논문 등으로는 알 수 없는, 현장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첫 회사에서 다 배웠다.


나의 첫 경험을 돌아보니, 여러 종류의 Index를 배우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 나의 업무, 내가 속한 팀이나 부서가 아닌 회사 전체 업무의 흐름, 일의 목록, 지표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나, 창업을 위한 취업이라면 그리 오랜 생활을 목표로 하지는 않을테니, 짬바를 획득하기는 불가능이고, 구체적인 내용들을 몸소 체득하기도 어렵다. 내 기준, 짬바는 최소 10년 한 바닥에 굴러야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업무에 매몰되지 말고, 내 업무 전/후의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품이나 서비스의 Built-Measure-Learn의 과정을 유심히 놓치지 않고 챙겨 보자는 것이다.

사람과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물론 이 조차도 6개월이나 1년 사이에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4557_26807_015.jpg 첫 회사가 있던 건물의 내부


✅ 회사 내부에서 배워야 할 일

회사는 어떤 소프트웨어들을 언제, ,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 전체의 소프트웨어를 의미한다. 우선, 공통으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서부터 특정 부서가 사용하는 것, 외주outsourcing사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것들까지 모두를 망라한다. 다음은 각 소프트웨어들이 사용되는 순서와 기능, 피드백feedback에 대해 정리해 본다. 그럼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그것이 내가 아닌, 회사가 일을 하는 방식이고 거기에 사용자를 배정하면 조직이 된다.

사용자와 그들의 위치는 마지막에 끼워 넣는 것이다. 창업자에게 있어 누구와 어디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로never, ever 엑셀의 함수 같은 것은 배울 필요가 없다. 엑셀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기능이 무엇인지만 이해하면, 나머지는 인터넷에 다 있다. 외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 회사 외부(시장 또는 업계)에서 배워야 할 일

이 바닥 생리가 무엇인지를 꼭! 배워야 한다. 그것은 현장에 나가, 나와 같은 입장의 다른 업체들, 나의 전/후방에 있는 업체들을 만나다 보면 알게 된다.

그리고 어느 업계나 불문율이라는 것이 있다. 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스타트업에게는 이 불문율이 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르고 덤볐다가 시작도 못 해보고 죽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걸 깨뜨림으로써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 어느 스타트업의 CEO와 간단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K-Beauty 관련 스타트업이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프랑스 최고의 MBA 출신이지만, 현장 경험도 없었고, 시장 조사도 되지 않았다. 하긴 그러니 나한테까지 왔겠지만...

불문율을 건드리려 했다. 프랑스(어느 시장이나 마찬가지기는 하다)에 유통되는 한국 화장품은 두 종류이다.

1. 정식official 수입 절차를 거친 것- 세포라sephora 등 알 만한 채널에서 구매 가능

2. 어둠의 경로를 거친 것- 브랜드 입장에서는 비공식인 채널에서 알음알음 구매 가능

'정식'은 언제나 비싸고,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화장품의 경우, 국가에 따라서는 제한된 허용 성분으로 인해 제품을 성분 조정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고, 이러면 제품의 제형texture가 달라져 다른 제품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언제나 시장의 수요를 확인하기 위해 두드리는tapping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주로 어둠의 경로를 암묵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진행된다. 비단 화장품 뿐만이 아니다. 시장 확인 후, 돈이 되면, 돈이 있는 유통사나 브랜드가 직접 나선다.

이 CEO는 이걸 모르고, 아직 두드림 중인 제품들의 구매 채널이 한정적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유통을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성공할 수도 있다. 불문율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깰 수도 있고, 모르고 깰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투자자라면, 이 스타트업의 현재 비즈니스 모델에는 투자 하지 않겠다.




읽지 않아도 되는 나의 사족,


나는 2009년-2011년 사이, 눈 떠보니 매출 1,000억이 된 중소기업을 다녔다. 그 어떤 체계도 잡을 수 없을 수 만큼 급격한 성장이었기 때문에 완전한 아사리 판이었다.

모든 기획은 대표의 머릿속에서 나왔고, 그것은 철저히 대표의 직감gut feeling에 의존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그랬다. 내가 합류할 당시 인원은 스무 명 남짓이었 던 것 같았고, 나올 때는 백 명이 조금 넘었던 것 같다. 모든 업무는 외주로 처리 되었고, 내부에는 외주를 관리하고 잡업무를 할 인원들만 있었다. 이것이 내 업무 환경이었다.


영업 ⇾ 영업 지원 ⇾ 기획/개발(해외근무) ⇾ 디자인


이게 2년 간 그 회사에서 내 포지션 변경 내용이다. 20년 아니고 2년이 맞다. 경영수업? 아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입/퇴사자가 많은 아사리 판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판에는 정확한 인사 명령이나 부서 이동이 없다. '대표께서 가라사대'로 모든 것이 끝나고 시작된다. Let there be a light! 하면 정말 빛이다.


영업

분위기 파악하고 눈치 챙기느라 정신 없이 보냈던, 적응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현장을 돌기 시작했다. 밤낮도 없었고 여기저기도 없었다. 차량 하나 배차해 주고는 전국을 떠돌게 했다.


영업 지원

매출은 커져 가는데 내부 관리가 안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들어앉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일요일 정기 출근을 시작했다.(세일즈 담당일 때는 일요일에 현장에 있었지만...)

항상 완벽히 준비를 하려 했다. 모든 숫자를 내가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숫자는 영업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기획/개발

어느 날, 대표가 있는 일본으로 오라 했다. 그대로 눌러 앉았다. 대표 옆에 사람이 없어 자연스럽게 회사 모든 업무에 관여하게 되었다. 일순간에 위계를 조지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대표가 직접 모든 결재 를 취합할리 만무하니, 내 역할이 되었다. 결재라는 것이 그냥 들고 들어가 도장 받는게 아니었다. 타당성을 설명해야 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못 하면, 내가 깨진다. 어쩔 수 없이 각 장leader 들이 내게 1차 결재를 받는 꼴이 되었다.

이때 부터 제품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우리나라를 떠나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디자인

처음 자진해서 팀 이동을 요청했다. 평소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동경의 대상이었던 디자인팀에 합류해 보고 싶었다. 좋은 장leader이 있었고, 좋은 구성원들이 있었다. 동시에 내게 가장 부족했던 마지막 하나이자, 미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의 내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경험이기도 하다.

생각 외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도 했다. 디자인과 영업의 중간다리. 예로, shop-in-shop 매장의 경우, 매장 내부의 동선은 제어할 수 있지만, 매장 밖의 동선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때에 내가 필요했다. 나는 모든 매장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의 상/하행 위치와 고객들의 유입동선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정보를 주면,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요소들을 그에 맞게 배치했다. 팀이 되어 일을 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 중요하다. 저마다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만나서 그들과 얘기하며 내 시야의 틀을 깰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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