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타트업의, 직원 윤리.

70년 개띠 양 사장과 82년 개들.

by 아스파라거스

군대에 가기 전이니까, 아마도 2001,2,3년 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잠실 옆 신천에는 실내 포차 골목이 있었다. 포장도 없고, 마차도 없는, 포장마차... 어쨌든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안주로 젊은이들이 북적이던 골목이었다.

그 골목 끝 모퉁이 2층에 '작업'이라는 가게가 있었다. 아직 해가 떠 있는 여름의 이른 저녁, 세상에 잔뜩 찌들어 보이는 아저씨(사장님)와 알바를 위한 면접을 보았다. 그는 대충 훑어보더니, 나랑 일하자 했다. 마치 영화 '신세계' 속 최민식의 대사 같았다. 실제로 그 아저씨는 최민식과 많이 닮았다.



그렇게 그냥 일하기로 했고, 출근은 다음날부터였지만, 가게 분위기나 볼 겸, 친구 하나를 불러 거기서, 그날 저녁 나는 술을 마셨다. 세상에 찌들어 보이던 아저씨와 사모님은 내심 당황했지만, 찌들음에는 인생사 내공도 있었던 듯, 서로 덤덤하게 주객으로 입장에 충실했다.

2층이라는 지리적 불리함에도, 가게는 바빴고, 직원들은 상냥했으며, 안주도 훌륭했다.


그 아저씨, 70년 개띠, 양 사장님은 지금도 내가 존경하는 분이고, 요 몇 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보는 사이이다. (당시 알바들 셋은 82년 개띠였다.)

가게에는 정해진 식사 시간이 있었고, 메뉴는 재료가 허락하는 선에서, 알바들이 해달라는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 나는 항상 재료 외의 음식을 요구했고, 사장님은 욕을 하면서 재료를 사 오거나, 가게 출근 전에 미리 말하면 욕을 하면서 준비해 두었다.


문제는 야간 식사와 저녁을 챙기지 못한 알바들이었다. 가게가 바빴기 때문에 따로 밥을 차려주지 못했다. 가끔 얘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문에 밀려 공허한 외침이 되기 일쑤였다. 그때, 70년 개띠, 양 사장님이 말했다.


"먹고 싶은 걸 그냥 주문으로 찍어서 넣어라. 그리고 테이블 적당한 거 손님 받지 말고 빼두고 거기서 먹어라."

우리만의 시스템이었다. 손님이 우선 될 수밖에 없는 장사꾼으로서의 심리와 자기 애들 챙기려는 두목의 심리가 적절히 교합된, 우리만의 시스템이었다. 그런 70년 개띠, 양 사장님 덕분에, 82년 개띠, 알바들도 언제나 즐겁게 일했다. 오래 일했고, 오래 보았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하나의 대표적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기업에서 일했던 사장님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일은 물론 철학과 인문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스승이다.


그때 그 개판이었던 조직의 개두목 양 사장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한 조직을 만들고 같이 일하고 싶다.

keyword
이전 24화스타트업의, 관심과 X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