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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l 11. 2024

"Tenby­­­, 물고기들의 작은 요새"를 아시나요?

영국 최고의 휴양지

영국 최고의 휴양지 "Tenby-텐비"

영국의 변화무쌍한(지랄 맞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 날씨는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쯤 한국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텐데, 7월인 이곳의 기온은 11-12도를 오가고 있고, 비까지 내리면 체감온도는 더 내려간다.  

지난 6월 셋째 주, 런던 사는 딸아이가 내려와 함께 텐비 여행을 했다. 우중충한 토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텐비로 향하던 길에 얄궂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 날씨인데도 가는 내내 딸내미 입에선 감탄사가 연신 터진다. 웨일스 특유의 목가적인 풍경을 우리야 늘 보고 살지만 최강 감수성을 품고 사는 딸아이에겐 감동적인가 보다. 우중충 하지만 넓고 푸른  초원에서 비가 오거나 말거나 유유자적 풀을 뜯는 양 떼와 소떼무리를 스치고 지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텐비에 도착했다.


텐비는 웨일스어로 "Dinbych-y-pasgod- 물고들 기의 작은 요새"라는 뜻을 가진 웨일스 남서부 펨브룩셔 연안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해변 마을이다. 13세기 노르만족의 잦은 침입으로 마을을 지키기 위해 건설된 중세 요새가, 현대엔 세계 각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관광 명소가 된, 이 성벽 마을은 웨일스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곳이다.

성벽마을 아래로 펼쳐진 아름다운 해안과 부드러운 모래사장의 긴 해변(4.8km)으로 유명하다. 특히 200년 이상 영국의 레저 지도에 올라있을 정도로 각종 레저활동의 성지라 한다. 보트여행, 카약, 서핑, 낚시(고등어잡이로 유명), 골프, Walking in wales의 대표명소 펨브룩셔 해안길은 웨일스 대표 국립 자연보호구역이기도 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여러 동호 외에서 펨브룩셔를 시작으로 해안길 걷기(밤에 별 보고 걷기)등 각종 동호회 활동이 활발해진다.


⇲ 텐비에 도착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13세기에 건축된 중세 성벽이다.

이 성벽은 영국의 National Turst(문화유산 및 자연보호단체)에서 1등급 <중세 방어 구조물>으로 지정된,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성벽 중 하나로 평가된 곳이다. 13세기 펨브룩백작이 건축했으며,  1588년 마지막수리를 끝으로 현상태를 유지 보존하고 있다.


⇲ 건축당시 성벽 둘레에 4개의 문이 있었지만,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반원형의

  <파이브 아치 게이트> 이곳을 통과해 구시가지로 들어간다.


⇲ 후대에 상업용으로 만들어진 작은 문들이 성벽 여기저기 있다.

⇲ 파이브 아치 게이트를 통과해 성벽마을(구시가지) 입성

파이브 아치 게이트를 통과해 구시가지로 들어가면 길 양편에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막 들어서는데, 괜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유년시절 온 가족이 해수욕장을 가면 가장 눈에 띄었던, 그래서 엄마를 졸라 기어이 하나씩 손에 들었던 물놀이 용품점이다.

오늘 같이 우중충한 날씨에 바닷물에 누가 뛰어들까 싶었지만,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내 또래의 중년여성도 바디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바다 쪽으로 내려간다.

차 한 대 겨우 다닐 길 양편에 인도(人道)가 있다. 후대에 만들어졌겠지 했지만 이게 중세에 설계된 길이란다. 당시에 이곳을 찾는 귀족을 따라온 유모들이 끌고 다녔던 유모차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 만들어진 길이다.


⇲ 분주한 구시가지 중심 거리 모습

이쯤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거센 비바람이 아니라면 굳이 피하지 않는다.  후드 티나 점퍼에 붙은 모자를 쓴다. 웬만하면 그냥 비를 맞는다. 우리도 아랑곳 않고 예쁜 골목길 탐방에 나섰다.


바닥에 빗방울이 제법 얼룩지고 있지만 이들은 자기 할 일(그냥 쉬는 거)을 하고 있다.

타운 중심가(구시가)를 걷다 보면 곳곳에 아기자기한 좁은 골목길이 많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기분 좋아지는 골목이다. 그곳에 작은 상점과 겔리리, 엔틱샵 등  볼거리가 넘친다. 딸아이와 나는 골목길 구석구석 돌며 구경하고 다니는데, 남편은 항상 저 멀리 앞장서며 우리를 재촉한다. 다행히 그날은 내편인 딸이 있어 맘껏 쏘다닐 수 있었다. 딸바보 아빠는 딸 앞에서는 입도 뻥긋 안(못)한다.


⇲ 구시가지 숨겨진 골목길 풍경


Food Awards winner집 발견, 피시엔 칩스 전문점(집에 와 검색해 보니 상 받기 전부터 유명한 맛집이다.)

⇲ OLD 마켓이 보여 들어갔더니 안이 너무 어둡다. 진열대에 놓인 상품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곳에서 장을 보나 싶었지만, 나보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어렴풋이 보이는 Butchers(정육점)에서 주문한 고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보인다. 이곳 고기가 좋은가 보다. 푸줏간만 북적인다.

⇲ 아름다운 아뜰리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출입문 앞 팔레트에 굳어있는 물감색이

 내가 좋아하는 색들이다. 들여다보니 안쪽에서 어느 화가분이 열심히 작업 중이다.

   - 그의 화실 문 앞 화가가 쓴 글이 인상적이다. "I want to paint the way a bird sings"


⇲  레스토랑, 펍들로 먹거리가 풍부한 골목 풍경

⇲ 텐비는 해산물 천국, 막 잡아 온 꽃게나 바닷가재를 요리해 내놓는 레스토랑이 많지만, 예약해 두거나 남들보다 일찍 찾아야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 골목길을 걷다 마주친 튜터시대의 건축물 "튜터 상인의 집"

튜터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이 집은 텐비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주택이다. 텐비시의회에서 영국 National Trst(문화유산 및 자연보호 자선단체)에 기부해 영국 내 주목할 만한  1등급 건축물로 등록되어 있다.  당시 활발한 상업지구였던 텐비에 이런 유형의 집에 살았던 이는 항구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상품들을 거래하는 상인이었을 거라 추측한다. 3층 건물인 맨 아래층은 상점으로 사용하였고, 2층과 3층은 가족의 주거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1500년대 모습 그대로 건물 내부를 꾸며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논 주택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골목길 탐방을 마치고, 구시가지와  마주한 옛 성터 "슬 힐(Castle Hill)"


⇲아래 사진은 오래전 캐슬 힐 모습, 빅토리아 시대 엽서 사진이다. 바위언덕 위에 방어용 성을 건설했지만, 수많은 전쟁으로 성이 파괴되기를 반복하다 지금은 성벽과 언덕 꼭대기에  작은 망루 같은 석조구조물만  남아있다.

사진 ;  wikipedia

⇲ 해변에서 올려다본 현재의 캐슬 힐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사람도 자연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철옹성처럼 견고해 보이는 바위가 이렇게 깎여 무뎌진 모습이다.


⇲ 텐비항을 빠져나와 캐슬 힐로 오르는 길, 천국의 문인 듯

박물관과 미술관을 지나, 19세기에 조성했다는 이 아름다운 산책로를 따라 조금 오르다 보면 작은 석조 망루가 서 있는 언덕꼭대기다.  텐비시가지와 주변의 작은 섬과 긴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ALBERT DDA 동상

언덕에서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갈매기 배설물로 얼룩진 흰 대리석 조각상이 위풍당당하게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ALBERT DDA> 영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군주 중 한 명인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왕자의 동상이다. 왜  텐비시가지가 내려다보는 이곳에 동상을 세웠을까? 이 동상은 그가 장티푸스로 갑자기 사망(1861년) 한 후 1865년 이곳에 세워졌단다. 당시 텐비시장은 이태리 시칠리아산 대리석을 들여와 조각을 의뢰하며, 조각상(2.7m)에 군복을 입히고, 가터 훈장(잉글랜드 기사단 훈장)을 단 망토를 두르게 하고, 야전 사령관의 지휘봉을 잡은 모습을 주문했단. 텐비가 웨일스에서 지휘(수도)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데, 웨일스 통치권을 쥐고 싶었던 그의 욕망이 앨버트 왕자 동상에서 살짝 묻어난다.


다행히 언덕을 오르는 동안  비가 그쳤다.

엘버드 왕자 조각상 앞에서 그의 시선을 따라 텐비시를 내려다본다. 오랜 세월 험한 전쟁을 셀 수 없이 겪은 마을이지만, 현대의 텐비는 다채로운 색깔을 한 집들이 그림처럼 예쁘다. 조금 전 구시가지 기념품점에서 봤던 그림엽서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저 집들 뒤, 골목길만 보고 다니느라 앞쪽이 이렇게 예쁜 줄 상상도 못 했다. 성벽아래로 펼쳐진 북쪽해변엔 낚싯배와  바디보드를 밀고 나가는 이들이 마침표 점처럼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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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상의 모든 역사는 전쟁으로 시작해 전쟁으로 끝을 맺듯, 한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도 전쟁의 잔해가 이렇듯 많이 남아있고, 또 그걸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 딸아이와 이곳에 앉아 나도 독서삼매경에 빠저 들고 싶다.

작은  망루 주변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집에서 내려온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있노라니 바닷바람이 불어와 볼살을 간지럽히고, 딸아이의 긴 머리카락이 살랑거린다. 정글 같은 런던에서 치열하게 일만 하느라 고생했을 딸이 눈을 감고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행복해한다. 너무 좋단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행복하다.

한잠동안 앉아 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건너 벤치에 젊은 청년이 독서삼매경 중이다. 그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우리도 딸과 나 둘이라면 누구랄 것 없이 한두 시간은 독서를 했을 텐데, 아쉽게도 남편은 벌써 해변으로 내려가자고 보챈다.


⇲ 텐비박물관 & 아트 갤러리

텐비박물관은 웨일스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다. 1976년 개관한 이곳은 이 지역 지질학, 생물학, 고고학 및 해양 유물 등 수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한때 가장 적은 재원으로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둔 박물관상을 받기도 했단다. 작지만 탄탄한 박물관, 다음에 더 깊이 하루종일 관람할 것을 약속해 본다.

* 웨일스 왕자상과 올해의 박물관상을 수상한 작지만 저력 있는 박물관이다.

  나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빅토리아 & 알버트 같은 대형 박물관 보다 이런 작은 박물관이 훨씬 좋다.  

  약탈한 것 없이 순수하게 연구하고, 발굴해 얻어낸 자연사박물관 같기도 한 이런 박물관에 마음이 간다.

⇲ 갑옷 :  16세기 Cap-a-pie (머리부터 발끌까지) 갑옷과   AJ버스트 텐비출신 예술가의 흉상

⇲ 도끼머리 : 1840년에 발견된 광택 나는 신석기 도끼머리와  화석 삼엽충(멸종된 해양 절지동물)

⇲ 우리에게 많은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박물관은 언제나 새롭다. 더 여유롭게 시간을 내 옛이야기 들으러 꼭 다시 와야겠다.


⇲ 가자, 아름다운  해변으로!

텐비항을 중심으로 왼쪽은 노스 비치, 중앙은 캐슬 비치, 오른쪽은 사우스 비치가 있다. 우리는 항구에서 접근이 쉬운 캐슬 비치로 걸음을 옮겼다. 해변으로 막 나오면 각종 레포츠(서핑, 패들링, 바디보드, 요트, 유람선 등) 예약 및 대여 사무실이 보이고, 주변엔 작은 아이스크림가게와 카페가 있고, 그 옆에 남・녀 구분된 샤워장도 있다. 캐슬비치와 바로 연결된 사우스 비치가 끝이 안 보이게 길다. 해변의 모래는 부드럽고 곱고 깨끗하다. 나와 딸내미는 신발을 벗고 바다 바람을 맞으며 모래 위를 걷고 또 걷는데, 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텐비항에도 보트투어 및 낚싯배 대여하는 곳들이 많이만 이곳엔 각종 보드대여         

  및 강습까지 해주는 모양이다.

⇲ 저만치 보트투어를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보인다.

⇲ 성 캐서린 섬 겉만 보다. ^--^

수세기 동안 이 섬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지만, 1859년 나폴레옹 3세의 침략을 감지해 St.Catherine's 요새를 건설하면서 교회 유적은 철거됐다. 그 후 한때는 동물원으로, 그리고 현재는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2016년 영국 BBC TV시리즈 셜록 3번째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를 이 섬에서 촬영했단다.  

⇲  섬 초입에 초로(初老)의 신사가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서있다. 섬을 들어가기 전

    이분께 입장료를 내야 한다.

⇲ 텐비 타운에서 내려다본 캐슬 비치, 날씨 탓인지 해변은 썰렁하다.

   -  타운에서 만난 그 많은 이들은  타운에만 있나 보다.

⇲ 해안길 절벽(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에 조성한 작은 정원들이 예쁘다.

⇲ 붉은 꽃양귀비가 활짝 핀 사우스 남쪽 해변 언덕

⇲ 캐슬힐에서 내려다본 북쪽 해변

⇲ 알록달록한 낚시 배들이 예쁘다. 이곳이 고등어 잡이로 유명해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저렇게 떠 있는 배들이 낚시꾼들을 실은 베란다.

⇲ 다시 텐비항으로- 텐비항은 고기잡이 보다 낚시나 보트 투어로 더 활성화된 듯하다. 간간이 꽃게를 손질해 파는 가게도 보이지만, 낚싯배 대여나 보트투어 회사들이 즐비하다.

항구에서 마을로 올라가는 길,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 그런지  배고픔이 몰려왔다. 또 비가 내린다.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져 여유 부릴 틈도 없이 근처 눈에 띄는 레스토랑으로 무작정 들어가는 남편을 따라 우리도 들어갔다. 창밖엔 비가 더 거세졌다. 웬만하면 우산을 안 쓰는 이곳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간다.  커먼 하늘과 빗방울을 보자니 오늘 여행은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 할 모양이다.

노스 비치 해안에 떠있던 낚싯배들도 하나둘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이쯤에 굵어진 비가 다행이고 고맙다.



* 시골여행 관련 궁금하신점  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세요.  

*  맛집이나, 숙박 관련 사항은 인터넷에 넘처나기에 생략하겠습니다.

* 3화도 많이 길어졌습니다. 어떻게? 간결하게 소개할까 목하 고민 중입니다.

* 어제 완성했던 글을 손가락 한번 잘못 놀려 삭제해 버렸답니다.   

    다시 쓰긴 했지만, 처음 글맛이 아닙니다. ㅠㅠㅠㅠ... 복구방법 아시는 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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