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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Dec 16. 2021

OKR이 자라는 토양

성선설과 성악설

본 글은 HR이라는 일을 해왔고 하고 있는 한 실무자의 견해를 작성한 글입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인사제도가 기업 내에서 내재화하는 과정을 비유하면 토양에 씨를 뿌려 그 씨가 새싹이 되고 더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릴때는 제도가 잘 자리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윽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면 비로소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할까요. 씨를 뿌릴 땐 바라는 마음은 있으나 씨앗이 기대한 대로 잘 자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바램이 실현되기 위해 우리는 '관리'를 하게 됩니다. 그 관리는 우리가 씨앗을 뿌리게 될 토양과씨앗이 새싹이되어 성장하는 과정에서 관심과 노력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OKR이 자라기 위한 토양

Cris Agyris의 신봉이론, 사용이론을 기반으로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성악설과 성선설을 이야기했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성선설을 믿는데 가끔 성악설을 믿게 하는 경우가 있노라고.

성선설과 성악설은 아시는 바와 같이 참 오래된 토론 주제입니다. 다친 사람을 피해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은 본래 악하다고 할 수 있지만 뒤집힌 차를 힘을 모아 움직여 사람을 구하는 장면은 사람들은 본래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본래 의미의 MBO가 아닌 실제 기존 현장에서 운영되어 왔던 MBO와 지금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OKR을 비교했던 적이 있습니다. 해당 그림에서 MBO와 OKR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 중 하나로 이야기드렸던 항목이 '자율성autonomous' 입니다. OKR에서는 방향성으로서 objective와 그 방향성을 향해 우리가 잘 가고 있는지(KPI) 혹은 잘 도착했는지(KRI)를 확인하는 도구로서 KR을 이야기합니다. Objective에 시간의 개념을 부여하면 일정 기간동안 우리가 달성해야 할 KR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OKR에서는 우리가 KR에 도달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건 말 그대로 자율성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고 일정 시간이 지나 KR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방향성과 속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해진 기간 내 어떤 방법론으로 일을 하든 그것은 온전히 담당자 개인의 자율에 맡겨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자율은 물론 자유와 다릅니다. 하고 싶은대로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요청하고 필요한 협업을 진행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업무과정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필요함에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KR을 마주하는 시간에 이와 관련된 피드백이 제시될 겁니다. 이러한 피드백이 상시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우리는 최소한의 루틴을 만들고 운영하게 되며 이는 공식화된 제도의 구체적 단면으로서 루틴 혹은 ritual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루틴 내지 ritual이 우리가  다음에 이야기할 씨앗이 새싹이 되어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관심과 노력의 구체적 산출물이기도 합니다.


자율성이란 성악설의 토양에서는 쉽게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HR을 하면서 느끼는 건 제도와 구성원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점이고 이는 제가 제도를 일종의 '메시지'로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대화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성악설의 토양에서는 기본적으로 구성원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최근 정독하고 있는 프레데릭 라루의 '조직의 재창'에 나오는 호박색 조직의 한 형태와 같습니다. 성악설 토양이 가진 기본적 세계관은

"작업자들이란 대개 게으르고, 부정직하며, 지시를 내려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그들은 감독을 받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지시해 주어야 한다"

는 생각을 가집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조직에서 자율성이란 결국 위에서 정해진 대로 수행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는 우리가 말하는 실질적 의미의 자율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조직에서는 새로운 생각이나 새로운 방법론들이 개입할 수 없게 됩니다. 새로운 생각이 유입되도 결국 그 생각은 기존의 방식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척되고 말테니까요. 새로운 생각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사실에 근거하고 있더라도 말이죠.


개인적으로 OKR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그 단순함에 따른 직관적인 성격도 있지만 본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자율성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방향성과 그 KR은 정해져 있지만 방법론은 다양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방법론에서 다양성은 우리가 fast-fail을 통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때로운 우연한 성공을 만나게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들이 일을 보는 관점, 일에 대해 하는 생각들을 넓혀주고 어쩌면 정말 놀라운 방법론을 찾을 수도 있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OKR을 일종의 다양성의 확산과 수렴의 과정이라 말을 하기도 합니다. KR이라는 수렴지점을 정해놓고 최대한 다양성을 펼쳐보고 거기에서 최적의 값을 찾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퍼실리테이션에서 말하는 발산과 수렴이라는 매커니즘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자율성에 뿌리를 둔 OKR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이 성과를 만들어내는 매커니즘을 구체화하는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벼가 자라는 데 적합한 환경이 있고 밀이 자라는 데 적합한 환경이 있습니다. 서로 반대의 토양에 심는다면 결국 원하는 산출물을 얻어낼 수 없을 겁니다. OKR도 그렇습니다. 각 기업마다 혹은 경영진마다 OKR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만일 그 이유에 애자일 조직이나 넷플릭스의 '규칙없음'과 같은 모습이 산출물로서 자리잡고 있다면 성악설이 아닌 성선설에 기반한 토양이 필요합니다.

"창업 때부터 대리급 이상이면 법인카드를 다 지급했다. 이번에 신규 채용된 인력 외에 기존 12명의 직원들은 모두 대리급 이상이다. 카드 사용 내역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한 달 기준으로 전체 한도는 4300만원, 개인별 한도는 500만원. 대표나 대리나 모두 한도가 똑같다. 처음에는 고민했다. 믿고 맡길 것이냐, 감시 대상으로 둘 것이냐? 결국 믿고 맡기기로 한 것이다.
 
 어려운 건 이런 거다. 영업직인데 블루투스 헤드셋이 필요하다. 그럼 얼마가 적당한가? 100만원 짜리 사는 건 좀 그렇다. 너무 비싸다. 그럼 얼마까지로 할 것인가? 노트북은 얼마가 적당한데? 마우스는 얼마가 적당한데?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룰로 다 정할 수 없으니까, 문제가 발생하면 대화하면서 풀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큰 무리없이 지내고 있다.“
 출처: http://omn.kr/1hsni

몇 년 전에 보았던 인터넷 신문 기사 글입니다. 성악설과 성선설을 이야기하며 머리 속에 두고 간혹 인용하는 기사글입니다.

위의 기사글처럼 까지는 아니더라도 OKR을 진정으로 도입해서 우리 조직을 애자일한 전문가 집단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기업에서 경영진과 리더들, 기업이 운영하는 제도들은 우리 기업 구성원들을 성악설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성선설을 기반으로 보고 있는지, 누군가 한 두명의 일탈에 놀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지 아니면 해당 일탈만 정리하고 구성원분들에게는 믿음을 주고 있는지, 경영진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이유를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시키는지 시스템(HW 아닌 SW관점에서)에서 원인을 찾고 있는지, 모든 것을 다 통제하고 확인하고자 하는지 일정 부분 권한을 내려주고 있는지, 새로운 생각이 들어왔을 때 그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지 아니면 기존의 생각을 기준으로 새로운 생각을 판단하려 하는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정으로 OKR에 기반한 애자일한 조직을 만들고자 바라신다면 말이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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