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을 처음 만나서 하게 되면서 제가 마주했던 가장 큰 어려움은 HR이라는 일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몰랐던 게 당연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당장 그 일을 해야 하는 실무자로서 아는 것이 없이 무작정 일을 한다는 것은 적어도 제 자신에게는 많이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노동법 학원을 다니고 시간이 나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모으고, 갈 수 있는 세미나나 HR담당자 모임 등을 쫒아 다녔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이 만든 자료와 HR에 관한 지식들을 만나면서 제가 해왔던 건 지금의 '나'를 검증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일전에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스스로를 검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내가 했던 것'입니다. 실무자로서 무언가 일을 했고 그 일을 다른 이를 통해 검증을 하는 방식이었기에 제가 했던 일은 매우 구체적이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래 했다고 할 수 있어" 라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스스로에 대한 잣대를 원칙대로 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OKR에서 KR은 Key Result로 말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산출물' 혹은 우리가 일을 수행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상태'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산출물'과 '상태'는 그 명칭에 관계없이 한 가지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구체성이라는 특성입니다.
구체적이라는 건 우리가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그래 했다고 할 수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산출물' '상태'가 매우 구체적이어서 다른 이들이 그것을 보았을 때 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음을 말합니다. 이전 objective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소개드렸던 앤드루 그로브의 영상 속 멘트가 있지요.
The key results have to be measured, but at the end you can look and without any argument say, "Did I do that, or did I not do that?" Yes. No. Simple. 출처: Why the secret to success is setting the right goals, John Dorr, 1분 54초~
KR은 측정되어야만 하고, 궁극적으로 어떤 논쟁의 여지 없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했는지 , 혹은 하지 않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simple 하다는 말입니다. MBO평가제도를 경험했던 우리들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이런 경험이 한 번 쯤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들 입장에서는 '했음'이라 말을 하는데 상급자는 '부족함'이라고 말을 하던 경험 말이죠.
KR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 KR이 숫자로 되어있는지 문자로 되어있는지가 아니라 구체적이어서 다툼의 여지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로써 구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MBO에서 결과물로서 목표는 일종의 합의였습니다. 남들은 주관적일 수 있지만 평가자와 피평가자라는 두 이해관계자 관계의 범위에서 구체적인 상태로서 목표입니다. OKR에서 KR은 그 이해관계자들의 범위를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아닌 그 KR과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들로 확장합니다. 따라서 단순한 합의로 KR을 정하기란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KR은 단어그대로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KR을 기반으로 우리는 현재 우리가 어느 상태에 있는지, 무엇을 잘 했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할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구체적이지 않다면, 다시 말해 누군가의 주관이나 해석이 개입될 여지를 남겨놓으면 우리는 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겁니다.
"그래 했다고 하자"
"내가(평가자가) 잘 봐준거야"
구체성은 우리가 현재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알게하고 그 상태에서 목표를 바라보았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구체적이니까요. 제 글들을 보신 분들이라면 어디선가 본듯한 내용이실 수 있습니다. 바로 KPI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실무적으로 KPI는 다소 혼재되어 사용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KPI에 대한 개념정의가 필요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KPI의 정의는 데이비드 파멘터의 개념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목표를 향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
일전에 KPI를 이야기하며 지하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퇴근길에 지하철을 탑니다. 여기서 반대방향 지하철을 타고 가면 우리는 다음 지하철 역의 표시를 보고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이어서 우리는 지하철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이동해서 지하철을 탈 겁니다. 지하철 역 표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우리가 집으로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OKR에서 KR은 KRI인 동시에 위에서 정의한 KPI의 기능을 포함합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KPI입니다. 지하철 역 표시를 보는 순간 우리가 반대방향으로 탔음을 바로 알아채고 방향을 다시 확인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위해 우리가 행동할 수 있게 해줍니다. 역표시가 구체적이지 않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라 생각해보시면,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시는 분이라면 이런 상황을 한 번쯤은 경험해보신 적이 있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체성'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의 OKR에 대한 글에서 종종 MBO에서도 그랬어요. 라고 말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전적인 목표, 상위조직 목표와 align 등에 대해 이는 사실 OKR이 아니더라도 이미 이전부터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던 항목들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구체성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MBO 목표수립에서 SMART원칙이 있지요. 여기에서 S는 Specific입니다. 목표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목표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건 그래야 평가 보상에 있어 논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MBO에서는 그 목표가 일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궁극적인 상태가 아닌 개인의 좋은 평가와 보상이었습니다. 적합한 인재의 선발이 아닌 내가 좋은 평가와 보상을 받기위한 목표인 셈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MBO가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방향성이 없다"입니다. OKR에서는 O로 방향성을 잡은 상태에서 KR로 그 방향에 맞게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며 나아가는 반면 기존 MBO에서는 방향성이 평가자로서 리더나 당해년도 기업의 평가기조, 경우에 따라서는 인사담당자의 제도 운영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현장에서 MBO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므로 방향성이 흔들리는 반면 OKR은 일을 기준으로 하기에 일정한 방향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OKR을 일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성장하는 관점에서 우리는 사람 대신 일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몇 개의 글로 OKR에서 Objective와 KR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얼마나 안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그냥 HR을 좋아해서 HR이 정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믿고 그걸 구현해보고자 노럭하는 한 사람의 생각 정도로 봐주신다면 좋겠습니다.
OKR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남은 건 OKR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듯 합니다. OKR이라는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 OKR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잘 자라기 위해 대략 2가지 요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씨앗이 자라는 토양이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싹이 튼 OKR이 성장하도록 관리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남길 생각의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