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 본질을 이기게 해서는 안된다
개념적인 단어를 실제 행동으로 연결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흔히들 그건 이상적이라거나 말이 그렇다는 거야 라거나 현실은 달라 라고 말을 하는 현상을 제가 바라보는 한 축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HR을 하면서 늘 고민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개념적/이상적 이야기를 제도로 구체화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게 없을 테니 말이죠. 그래서 HR은 답이 없다고 말할 수 있고 그래서 HR이 참 매력적인 영역이라 말하는 이유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앞서 OKR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OKR의 O와 KR이 무엇이고 어떤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지, OKR이 잘 자라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토양으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이제 남은 건 이러한 개념들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일 듯합니다. 실무자 입장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내용일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들로 하여금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본질이 아니라 본질을 우리들이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론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방법론이 본질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MBO를 경험했던 우리들의 지나온 경험을 OKR을 통해 다시 마주하게 될 겁니다. 실무자로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가 하고 있음을 어필하기 위해 형식에 집중하면 결국 그 제도는 '우리 조직과 맞지 않는' 제도가 될 겁니다. 모든 기업이 하는 OKR이 모두 다 같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동시에 같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루틴 routine
루틴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이고 정형화되어 반복적인 형태의 의미를 가집니다. 본 글에서 루틴은 '조직이 구성되고 운영되는데 필요한 형식, 규칙, 절차, 관습, 전략, 기술, 신뢰, 패러다임, 문화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루틴이란 우리 조직이 일 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A기업은 기획안을 실행하기 위해 동료들의 동의를 받는 절차가 있다고 합니다. 그 루틴은 그 기업에만 존재하는 일종의 일 하는 방식일 겁니다. 외부에서 볼 땐 다소 특이하다고 말하지만 내부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루틴이란 이런 유형의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OKR 루틴
우리는 OKR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방향성을 제시하는 objectives와 우리가 그 방향성을 향해 잘 가고 있고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KR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Simple! OKR에서 루틴은 단순합니다. 방향을 잡고 그 방향을 향해 실행하고 그 실행하는 과정에서 가능한 한 상시로 올바르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하고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목표(방향)를 설정하고 KR을 중심으로 일종의 돌아보기(성찰, reflection)을 하면서 목표(방향)를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OKR에서는 objectives와 KR을 설정하는 절차, 그리고 KR을 중심으로 '돌아보는' 절차를 기본 루틴으로 합니다.
OKR 루틴 운영
이러한 OKR 루틴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의 그림은 편의상 1년 단위 기간을 대상으로 그려본 그림인데 보시는 것처럼 1년 기간에 해당하는 objectives를 설정하고 각 목표별로 KR을 3개 정도 수준으로 설정을 하게 됩니다. 이 KR이 가지고 있는 기간은 1년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이를 분기 단위의 KR로 더 세분화해볼 수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각 분기별로 표시된 KR들이지요. 이 KR을 일종의 징검다리 stepping stone 역할을 합니다. 1년 시간이 지난 시점에 KR을 달성하기 위한 분기 KR들입니다. 위의 그림을 보며 어떤 분들은 왜 분기별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가?라고 이야기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목표는 달성해야 할 구체적 목표가 아닌 방향성이기 때문입니다. 방향이 이미 존재하는데 그 하위 방향을 또 잡는다는 건 무언가 어색합니다. 아울러 방향을 향해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건 KR로도 충분하기도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OKR은 Simple하고 그래야 합니다. 최대한 simple해서 직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군더더기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OKR 루틴을 위한 운영 양식
OKR 이야기를 듣다 보면 OKR이 어렵다는 말이 종종 들립니다. 왜 어려울까요? HR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계속 고민하니까 그나마 낫고, 현업의 구성원분들은 생소하니까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simple한 OKR이 그 OKR을 실제로 운영해야 할 구성원들 입장에서 어렵다면 그건 simple한 제도가 아닐 겁니다. 스마트폰을 생각해보시죠. 스마트폰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들이 그들에 대해 느꼈던 것들을. 금세 우리들에게 익숙해졌던 경험 말이죠.
re:work이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OKR을 고민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해당 사이트에는 OKR에 대하여 OKR Scorecard 샘플과 양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해당 양식의 일부를 가져온 그림입니다. 양식에 보듯이 방향성으로서 Objective와 점검을 위한 KR만 존재합니다. 단순합니다. 어떤 분들은 여기에 실행계획을 추가하고 그 계획을 점검하는 내용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바람직하다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OKR에서 실행계획과 방법론은 구성원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기본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OKR 루틴의 운영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공식적인 OKR 관리 주기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보통 1년 단위 목표를 설정한다면 적어도 분기 단위로의 공식적인 OKR 관리 주기의 설정은 필요해 보입니다. 간혹 일단위, 주 단위, 월 단위 OKR 공식 관리 주기를 설정하는 경우를 만나기도 하는데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짧은 주기가 자칫 구성원에게 감시와 통제, 실적 쪼기 등의 모습으로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일 겁니다. 만일 우리 기업 구성원이 감시와 통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OKR은 감시와 통제가 아닌 자율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상시로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OKR을 처음 시도하는 기업의 경우 간혹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아직 구성원들이 OKR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까 처음부터 조금은 그 형식을 엄격하게 관리해서 일종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말은 사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 만일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보셨으면 합니다. 정말로 자신은 OKR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쩌면 구성원 누군가는 OKR이라는 용어는 모르지만 이미 OKR에 적합한 형태로 일 하는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거나 혹은 그렇게 일을 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OKR을 이야기하며 simple이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일종의 강조성 표현이긴 한데 이렇게 강조하는 건 그만큼 직관적임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과 OKR을 이야기하며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OKR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헷갈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사람들이 피드백을 해줄 수 있다면 본인의 성장과 일을 더 잘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러한 관점에서 OKR을 이해하고 있다가 갑자기 제시된 '형식'에 당황했던 셈입니다. 우리가 OKR을 운영하고자 하는 건 우리가 OKR을 하고 있음을 내세우고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OKR을 통해 상시로 일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일을 더 잘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도 전문가로 더 성장하기 위함이니까요.
만일 우리가 정해 놓은 루틴이 이미 OKR을 하고 있는 분들이 더 이상 OKR을 알 수 없는 대상으로 느끼게 할 수도 있음을 말합니다.
OKR은 단순합니다. 단순해야 합니다. 따라서 OKR이라는 개념을 구체화하는 루틴으로서 관리방식과 관리양식도 최대한 단순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 보이기 위해서 혹은 더 좋을 거 같아서 등의 이유로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OKR이 가지는 본질을 더 어렵게 하거나 저해하지 않을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합니다. 제가 보는 OKR의 본질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일과 나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일을 하고 점검하고 잘한 점과 개선점을 확인하고 더 나은 상태로 이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OKR을 이야기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이미 몇 편의 글을 통해 OKR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 부류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찌 보면 완벽한 정답으로서 OKR을 아는 이는 어쩌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누군가 말이나 글로 OKR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를 구현하고 내재화하는 것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멋진 보고서가 아니라 실제 정착하는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아울러 OKR을 운영하는 모든 기업들이 하는 OKR은 완벽히 같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어쩌면 그중 누군가는 OKR을 외형적으로만 운영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도는 구글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한다고 해서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기업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된 제도는 그 제도의 외형뿐 아니라 그 제도를 운영하는 경영진과 제도 운영자의 철학, 그리고 그 제도를 활용하는 구성원의 이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그들 중 제도의 외형에 불과하며 우리 기업에서 제도를 완성하기 위해서 그 외형을 제외한 나머지를 우리들이 채워야 합니다. 구글에서 OKR이 가능했던 것도 IBM에서 OKR을 체화한 사람들이 대다수 이동하면서 가능했다는 말도 있지요.
OKR 루틴도 OKR 답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OKR을 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로서 방향성 objective을 생각하고 우리가 하는 운영 방식이 그 방향성에 부합하는가?를 생각해보며 지속적인 개선을 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부합하는가? 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구글처럼 하고 있는가? 가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OKR을 하면서 잘하고 있는 점은 무엇이고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를 현재의 우리들을 기준으로 판단해보고 개선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코로나 이전에 참석했던 어느 OKR세미나 생각이 납니다. 실시간으로 일을 공유하고 누구나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며 시스템을 도입하면 OKR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이야기하던 어느 분의 말입니다. 정보공유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동일한 시스템도 누군가를 감시하거나 깍아내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가 더 일을 잘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OKR을 어떤 도구로 보고 있을까요? 우리는 OKR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OKR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며 남기는 질문입니다.
감사합니다.
#OKR루틴 #Opellie #H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