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R과 같은 제도들이 등장하면 종종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옥상옥이라는 단어입니다. 일을 해야 하는데 부가적인 일을 한다고 할까요? 일을 위한 일을 만든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평가제도로서 MBO는 다소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평가라는 일을 위해 하는 부가적인 일로, 만일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거나 혹은 각자 자신의 스타일대로 해도 될 수도 있다고 할까요.
OKR은 어떨까요? 일단 답은 50:50입니다. 일을 위한 일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열쇠는 우리가 OKR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에 달려 있습니다. OKR을 구성원을 관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면 OKR은 일을 위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본래의 MBO가 아닌 평가를 위한 도구로서 MBO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주니어 시절을 돌아보면 일을 알려주는 이도 없이 혼자 부딪히며 배웠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봐주거나 코칭을 해준다면 좀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통제하고 평가하는 대신 좀 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하는 그런 아쉬움들입니다.
저는 OKR이 우리가 지나온 시간에 느꼈던 그런 아쉬움들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부산을 가고 싶은데 버스가 끊겼다면 어떻게 할까요? 기차도 자리가 없고 비행기표도 없다면요? 반드시 가야 한다면 택시는 어떨까요? 버스나 기차는 5만원이 드는데 택시를 타면 10만원이 넘게 나온다고 해보면 우리는 어쩌면 해도 될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이때 조직이 리더가 동료가 자차를 이용하게 해 준다면 어떨까요. 택시비를 지원해준다면요? 괜찮으니까 택시를 타서라도 부산에 도착하라고 결정을 해준다면요? 만일 우리가 SRT를 타본 적이 있어서 SRT를 활용해볼 수 있음을 알려준다면요? 우리는 버스나 기차,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부산을 가는 방법으로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고 기존보다 조금 더 나은 상태로 이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OKR은 방향성과 결과를 기본으로 합니다. "부산"은 방향성이고 "해운대 백사장에 OO시에 서 있는 상태"는 결과가 됩니다. "해운대 백사장에 OO시에 서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아는 방법으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공유된 목표와 결과를 본 경영진, 리더, 동료가 지원을 하고 경험을 공유해줍니다. 이제 우리는 몰랐던 방법론을 알게 되었고 "OO시에 해운대 백사장에 서 있습니다." KR이 달성되었고 이로서 우리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때론 "OO시에 해운대 백사장에 서 있는 것"이 도전적일 수도 있습니다. 서울이 아닌 해외에서 간다거나 최소한의 필요한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해운대 백사장은 아니지만 "부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는 팻말을 만났다고 합시다. 100%는 아니지만 60~70%는 도착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100%가 아니어도 OKR은 괜찮습니다. OKR에서 목표는 다소 도전적이니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존에 갖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과 방법론을 배웠고 새로운 관점으로 일을 보게 되었고 다음에 "해운대 백사장"에 제대로 도착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배웠고 다음에 제대로 시도해 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이번 경험에서 무엇을 잘했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다음엔 좀 더 잘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할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기 위해 OKR은 정보를 공유합니다. 어디로 가고 도착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야 적절한 코칭과 지원이 가능하니까요. 기간으로는 적어도 분기 단위로는 공유를 하는 게 적정할 듯합니다. 그래야 경영자, 리더, 동료들의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6개월 혹은 1년이라면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기존 우리의 경험들을 보면 말이죠.
OKR에서 경영자, 리더, 동료는 지시를 하거나 경쟁을 하는 대신 그들이 할 수 있는 지원을 합니다. 그런데 만일 상대방이 일을 잘하면 내가 낮은 등급을 받아야 하는 상대평가를 적용한다면요? 나는 내 이익을 포기하며 상대방을 응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OKR의 상대평가와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경영자, 리더, 동료가 나를 평가하는 입장이라면 어떨까요? 그들의 말이 지원이 아니라 나 자신을 낮추는 방향으로 이어진다면요? 그래서 OKR에서는 평가자가 아닌 코치가 되어야 하고 "서로가 서로의 생각에 균열을 만드는 역할"이라는 의미를 가진 코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에 균열을 만드는 건 몇 가지 조건을 요구합니다. 하나는 전문성입니다. 여기에서 전문성은 완성의 개념이 아닌 만들어가는 개념으로 정의됩니다. 이는 아는 것을 안다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을 포함합니다. 다른 하나는 경험을 정답 대신 재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경험을 정답으로 삼을 경우 타인의 생각에 균열 대신 속상함을 제공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에는 어떤 균열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요건은 영향력입니다. 코칭 과정에서 영향력은 계층구조가 만드는 것이 아닌 전문성과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영향력입니다. 스스로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영향력입니다.
어떤 분들은 OKR이 MBO와 마찬가지로 옥상옥(屋上屋)이 될 거라 말을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러한 의견에 대한 제 생각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입니다. OKR이 옥상옥(屋上屋), 부가적인 일이 될지 우리가 일을 하면서 있었으면 하고 바랬지만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들어내는 일이 될지를 결정하는 건 우리들이 OKR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앞서 어느 글에서 이야기드린 것처럼 OKR을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는데 이미 OKR의 루틴을 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OKR은 심플하거든요.
OKR은 우리가 일 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일 하는 방식을 보다 심플하게 만들고 보다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을 만들어가는 방법론입니다. 이러한 여정을 이어가다 보면 우리는 적어도 우리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어 가는 우리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OKR이 정답이다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언젠가 OKR이 아닌 다른 제도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건 OKR이라는 제도가 무조건 좋다가 아니라 왜 좋고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OKR이 비로소 그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목적은, 제가 늘 이야기하는 제도의 목적입니다. "더 이상 제도로서 OKR이 필요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 말이죠.
OKR이 그런 성장하고자 하는 분들의 바램을, 저를 포함해 기존 경험을 가진 이들이 주니어 시절에 아쉬워했던 그 바램을 채워줄 수 있는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OKR에 대한 몇 편의 글을 쓰고 있는 이유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