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물론 하루 24시간을 풀로 일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구요. 제가 어릴 때 하루 24시간 까지는 아니고, 하루 4시간만 자고 일하고 공부했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해보니까 그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더군요.
그런데 사실 저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하루 종일 제가 하는 일을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게임을 하고 길을 걷고 샤워를 하고 TV를 보는 모든 순간이 그렇습니다. 게임을 하며 마주하는 상황,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길을 걸으며 만난 참새를 보며 리더와 보스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러면 샤워를 마치고 기록해 놓을 때까지 그들을 머릿속에 붙잡기 위한 생각의 반복을 하기도 합니다. TV나 영화를 보면서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들이 한 말들에 꽂히기도 합니다.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대사 '움직이는 파도만 볼 줄 알았지 파도를 움직이는 바람을 보질 못했다'라거나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나오는 백단장의 대사, 예를 들어 '임동규 선수는 홈런치고 안타치고 그런 거 하는 사람이고, 나는 팀을 새로 조직하다가 트레이드도 하고 그런 거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위치가 다른 겁니까? 포지션 자체가 다른 겁니다'와 같은, 들을 일을 하면서 종종 인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말하다 보면 가끔 부러움의 말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말입니다.
앞선 자기계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경험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다 온전히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 모르는 것에 대한 솔직함으로 우리 자신을 무장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사실 단기간 내에 만들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닐 겁니다. 시간이 필요하죠. 그리고 우리는 시간이 유한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 경험을 쌓고 보니 '이걸 내가 억지로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무언가를 열심히 해왔지만 그 결과를 보며 속상해하는 우리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여담이지만 일을 좋아하는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합니다. 누군가를 지나치게 좋아하게 되면 우리가 가끔 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의 말과 행동이 표현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사회생활 시작부터 지난 18년간 해온 일을 한 건 아닙니다. 그전에 1년 정도 다른 일을 했어요. 처음 지금의 일을 만나기 전까지 이 일은 전혀 관심도 없었던 분야였고, 심지어 그만두어야 할까?라는 진지한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18년간 제가 좋아한다고 말하며 해온 일이 사실 제가 잘하는 일이라거나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하기 싫은 일에 더 가까웠습니다.
하기 싫은 일이 갑자기 좋아하는 일이 될 수 있을까? 그냥 어쩌다 보니 오랜 시간 이 일을 계속해왔고 그래서 지난 18년이라는 시간이 이젠 일종의 매몰비용이 되어 그걸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혹은 18년간의 경험이 주는 익숙함에 안주하기로 하는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다행스러운 건 이러한 반문에 개인적으로는 아주 당당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겠죠.
그건 제가 지금 하는 일을 하기 싫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처음 지금 일을 만난 시점부터 5개월 정도의 시간이었고 그 이후부터는 줄곧 지금의 일을 좋아한다고 말해왔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먼저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 시기가 있습니다. 지금의 일을 만나고 약 5개월가량의 시간이었죠. 그 5개월 이후 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경험도 있었어요. 당시 주니어로 제가 참석할 수 있는 세미나, 모임 등을 정말 열심히 쫓아다녔거든요. 하루는 다른 한 분이 물어보시더라구요. 어차피 회사에서 사용해 볼 수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모임 등에 나오냐고. 당시 저는 '그러게요'라며 웃고 넘겼던 기억이 있어요. 사실 그렇잖아요.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죠. 그 자체가 좋은 거니까.
그 당시 여러 모임을 찾아다니다가 질문을 하나 받았습니다.
"Opellie님은 왜 지금 일을 좋아해요?"
당시 제가 했던, 물론 지금도 유효한 대답은 이랬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자원활동 점수라는 게 있었어요. 입시라는 것에 좀 더 유리하기 위한 순전히 개인적인 목적으로 OOO를 갔죠. 그런데 기분이 묘했습니다. 점수 때문에 간건데 정말 도움이 되고 싶었죠. 이후 점수를 다 채운 이후에도 계속 다녔고, 대학생이 돼서도 같은 성격의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그 시간을 통해 일종의 되고 싶은 나를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이라고 할까요"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개인적인 의미를 지금 제가 하는 일에 투영했어요.
'지금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내리는 데 4~5개월이 걸린 거죠. 그 답은 "YES"였고, 제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죠."
기초통계를 배울 때 만나는 개념 중 조절변수(moderating variabl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조절변수는 '알고자 하는 기본관계가 조절변수에 따라 그 관계(magnitude of the relationship, direction of the relationship)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통계적으로는 조절변수가 유의한지 검증을 해야 하겠지만 의미있는 일과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의 관계를 개념적 표현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를 해보려 합니다.
위 그림에서 '의미있는 일'이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지금 하는 일에 투영한 상태'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일에 의미를 투영하면 그 의미를 달성하기 위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써 경험을 통해 우리는 좀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구체화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지금 하는 일에 있어 '성장'이라는 방향성을 투영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일을 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일에 적용하고 일의 상태/수준을 개선하는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잘했음'이라는 인정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하는 일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더 잘하고자 노력하고 싶은 마음도 갖게 될 겁니다. 잘하는 일이 일종의 조절변수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사실 저는 지금 자기계발에 대한 글을 쓰고 있지만 지난 19년의 시간을 통틀어 자기계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냥 제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했고 그 의미를 달성할 수 있는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을 뿐입니다. 사실 이게 다죠. 혹자는 자기계발을 모르는 사람이라 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자기계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을 뿐 본질적인 과정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울러 자기계발에 대한 조금은 다른 생각들이 있을 수도 있고, 이런 생각들이 때로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기계발이란 누군가가 정해준 공식대로 따르는 것 혹은 누군가가 나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이 하는 것이니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자기계발의 주체로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 도와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우리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우리의 속상함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효율적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자기계발을 보다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환경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환경이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좀더 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Opellie#자기계발#브런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