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제도에 대한 opellie의 러브레터 7편
인사제도가 기업 내에서 공식적으로 시행되면 조직과 구성원은 그 인사제도가 정한 절차, 양식, 기한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기업 구성원이 아닌 시점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기업 구성원으로서는 해야 하는 일들이 발생하죠. 가장 단순한 예는 '출근'이라는 행동일 겁니다. 그것도 인사제도가 정한 시간 내에 정한 절차에 따라서 출근했음을 '인증'해야 합니다. 기업이 인사제도로서 우리 기업의 출근시간을 오전 9시로 정했다면 그건 특정 개인이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며, 이를 바꾸고자 한다면 제도의 변경/개선이라는 또 다른 절차를 거쳐야 하죠.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왜 제도를 따르는가?
인사제도는 기업 내 구성원의 입장에서 보면 달가운 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인사제도는 구성원에게 특정 행동을 하거나 혹은 특정 행동들을 하지 않도록 강제합니다. 평가제도는 어떨까요? 다소 불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는 제도들도 있죠.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이 여전히 그 판단기준이 모호한데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제도도 있습니다. 심지어 기존에는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하면 안 된다는 무언가도 있죠. 어떤 제도에 대해 구성원 A는 좋다고 말하는데 구성원 B는 잘못된 제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에드워드 데밍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성과평가 시스템을 운영해서 득(得)보다 실(失)이 크다면 운영을 중단하면 되지, 성과평가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 에드워드 데밍(Edward Deming)
법을 잠시 생각해 보죠.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법이라는 제도를 적용받습니다. 이건 우리들의 의지와 무관합니다. 법을 어기면 법에 따라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제한속도 60 도로에서 제한속도는 제도가 정해놓은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위반하면 법은 우리에게 페널티로 과태료와 벌점을 부여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제도를 따르는 이유를 하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키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강제로 부여되는 부정적인 상태를 회피하는 것 말이죠. 그 위반의 강도가 커질수록 페널티의 강도도 높아집니다.
2022년도에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이법의 시행 전후로 기업들은 생각보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당시 제가 속해 있던 기업에서도 당시 진행 중인 산재건이 있었기에 나름 검토를 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법이 기업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건 해당하는 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진의 처벌이 강하게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6조(중대산업재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처벌)
① 제4조 또는 제5조를 위반하여 제2조 제2호 가목의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경우 징역과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
② 제4조 또는 제5조를 위반하여 제2조 제2호 나목 또는 다목의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로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에 다시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저지른 자는 각 항에서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
페널티를 통해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게 강제하는 것은 '손실기피(loss aversion)'으로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손실기피란, 우리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을 더 싫어함을 말합니다. 우리는 법이라는 제도가 정한 바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현재 가지고 있는 자유/ 금전 등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더 싫어하기 때문에 법을 지킨다고 말이죠.
A기업에서 주말당직제도를 시행한다고 공지를 합니다. 구성원들로 일종의 순번을 정해서 토요일에 당직을 서는 제도입니다. 구성원 B는 상급자 1에게 물어봅니다.
"이 제도를 왜 하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물론 만일의 오해를 미리 제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부연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안하겠다는 건 아니구요. 왜 하는지를 알면 좀더 신경써서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요"
상급자 1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합니다.
"우편물을 받아야 해서"
상급자 2는 역시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합니다.
"위에서 연락을 하게 되면 누군가 대응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상급자 3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원래 그렇게 해왔어"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경우, 심지어 인사제도를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조차도 제도를 원래 해왔던 것으로 인식하고 이를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이유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과거의 제도를 배워서 오늘날 제도로 사용하는 우(愚)를 범하곤 합니다. "인사평가는 원래 그렇게 하는거야"라고 말이죠.
정당성에 기반한 제도가 가지는 앞선 두 가지 기반의 제도와의 차이점은 '소통'에 있습니다. 페널티와 순응에 기반한 제도는 구성원을 수동적인 존재로 둡니다. 수동적 존재로서 구성원은 주어진 것으로서 제도에 스스로를 맞추어가는 모습을 갖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소통'은 '일방향'의 특성을 가집니다. 따라서 이 방식에서 소통은 주로 기획자가 만들어 놓은 제도를 사용하는 방식과 결과물, 즉 HOW와 WHAT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HOW와 WHAT은 정답으로 주어지며 이들 자체가 기준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정당성에 기반한 제도는 '다방향적인(multidirectional)' 속성을 가집니다. 이는 제도 기획자가 제도 이용자인 구성원에게 이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필요성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공감 내지 동의를 확보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이 방식에서 소통은 '이 제도를 왜 하려 하는가', 즉 WHY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물론 HOW와 WHAT도 그 내용에 포함되지만 여기에서 anchor역할을 하는 것은 WHY이며, WHY를 기준으로 하여 필요한 경우 HOW와 WHAT인 가변적일 수 있음을 포함합니다.
주니어 시기에 제가 마주한 인사제도는 그냥 그대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기존에 해왔음을 근거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고, 다른 누군가는 상급자의 지시에 따른다고도 말했습니다. 주말 당직을 서는 것에 대해 아무도 왜 하는가?를 물어보지 않았고, 아무도 왜 하는가를 아는 이가 없었죠.
현장에서 18년을 인사 담당자로 살면서 제가 배운 제도는 주어진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운영하는 제도는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 인사제도를 고민할 때 우리는 많은 경우 그 생각의 기준 자리에 HOW를 두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인사제도는 그 기준(anchor)의 자리에 WHY가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사제도를 만드는 우리들은 그 WHY를 제시하고 WHY를 조직, 구성원과 공유하고 WHY를 구체화하는 방법론으로서 절차, 양식, 기한을 활용하여 제안하며 실제 운영을 통해 그 방법론을 완성해가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오늘날 필요한 제도의 모습, 그리고 제도를 활용해 구성원과 소통하는 인사담당자의 역할로 제안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제도를 따르는 이유에 페널티와 순응이 아닌 정당성이 자리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감사합니다.
#제도#인사제도#Opell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