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Opellie, 이 프로젝트 한번 해볼래?"
이후 나에게 IT계열사에서 같이 일하자며 손을 내밀어 준 부장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당시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였다. 이전에 관련 프로젝트를 해본 적 없었던 나는 걱정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인사담당자로 5년차를 보내고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암묵적인 무시를 받고 있었고, 존재 의미를 고민하고 있었기에 더욱 다가온 기회가 반가웠다.
해당 프로젝트는 사실 수 개월 전부터 계속 논의가 되어 왔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프로젝트 멤버로 들어간 첫 회의에서 만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프로젝트의 일정, 비용 등 구체적인 그림도 없었고, 심지어 아무도 선뜻 의견을 제시하고 리드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참석한 첫 미팅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는 외부 컨설팅을 받을지 여부가 다였지만 그조차도 아무도 결정을 하지 못했고, 결국 프로젝트 TF에서 결정하라는 이야기로 끝났다. 미팅이 끝나고 부장님은 나에게 의견을 물으셨고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외부 컨설팅 없이 하시죠"
외부 컨설팅을 받으면 일이 쉬워질 수 있다. 설사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도 컨설팅업체에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으니 어쩌면 편하고 안전한 길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기업이 만들고자 하는 산출물이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고 비용은 처음 세워 둔 예산을 크게 상회했다.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건 그 프로젝트는 어쩌면 터질지도 모르는 폭발물이었고, 나는 그 터질지도 모르는 폭발물을 처리할, 어쩌면 껴안고 가야 할 폭발물 처리반이었다는 점이었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본래 나보다 훨씬 경력이 많은 부장님이 있었는데 그가 중도에 이탈을 했고 프로젝트 TF를 kick-off하기 한 달 전에 내가 그의 자리로 들어간 상황이었고,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기대하는 산출물을 낼 거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부장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외부 컨설팅 없이 하시죠"
결과론으로 나는 해당 프로젝트를 완료했고, 일을 할 줄 안다는 인정을 받았다. 프로젝트 종료 후 회식에서 임원분은 이하 팀장님들에게 Opellie가 팀장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시기도 했다. 외부 컨설팅 견적서 비용의 1/10 수준의 비용, 1/2 수준의 일정으로 산출물을 만들고 프로젝트는 마무리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나는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폭발물을 수습해야 하는 처리반이었다. 다들 손사레를 치고 있었던 일을 할 수 있었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이야기한다. 하나는 준비다. 나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도 평소 책, 학원, 세미나, 실무자 모임 등을 다니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그들을 학습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어짜피 사용하지도 못할텐데 왜 그렇게 모임에 나오는 거예요?"
라는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을 때,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건 지금이 아닌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들 손사레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으로 나는 생각의 차이라고 말한다. 이후 인사경험을 하면서 알게 된 표현을 사용하면 Accountability와 Responsibility의 차이라 말할 수 있다. Accountability와 Responsibility는 우리말로 각각 사전책임과 사후책임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하는 사전책임은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가진다. 사전책임은 이 일을 수행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책임으로서 성과를 말한다. 반면 사후책임은 과거지향적인 의미를 가진다. 사전책임은 일이 진행과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로 귀결된다.
사람들의 머리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겠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사후책임이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몇 개월 동안 미팅을 하면서 논의를 했지만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고, TF의 kick-off 는 한달 앞으로 다가온, 더욱이 TF가 출범하면 PM을 해야 할 인원이 중도 이탈을 한 상황에서 우리는 쉽게 부정적인 결과를 그리곤 한다.
내가 TF참여 제안을 받은 순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동안 모아 둔 자료들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사후책임을 걱정하는 대신 사전책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보고 있었다.
일을 마주할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우리의 말과 행동의 범위는 줄어든다. 반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해볼 수 있는 더 많은 방법론들을 만날 수 있고 우리가 만나는 경험의 크기도 커진다.
이런 글을 쓰다보면 간혹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일부 리더분들이 구성원을 탓하는 용도로 이야기를 활용하기 좋기 때문이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구성원들이 일을 대함에 있어 사전책임을 먼저 생각하고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리더라는 점이다.
나에게는 5년차 대리가 억대 비용이 드는 프로젝트를 두고
"외부 컨설팅 없이 하시죠"
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을 믿고 지지해주었던, 나에게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해주고, 이후 IT계열사로 함께 이동하자는 제안을 주셨던, 내 인사담당자로서 18년의 시간 중 6년을 함께 한 부장님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부인해도 단 한 사람의 지지만 있어도 구성원은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만날 수 있다.
Key word
기회, 사전책임과 사후책임, 미래지향적 사고, 리더의 영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