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8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한, 인사담당자로서 나에게 가장 기반이 되고 중요한 시간을 보낸 회사를 떠나 새로운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는 달라져도 관계는 남아 있다고 할까. 8년을 함께 한 부장님 인사차 이전 회사를 찾아갔다. 물론 그곳에는 내가 이직을 결심하도록 영향을 준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Opellie, 이거 지금 당장 하세요."
몇 개월 전 새로 오신 팀장님은 당시 이슈가 되고 있던 성과평가제도의 시행을 말하고 있었다.
"팀장님, 그건 저희는 내년도에 시행하는 걸로 일정을 잡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내년에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 기반제도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내용은 작년 10월에 기획실에 보고까지 완료한 내용입니다"
실무자로서 나는 환경을 알고 있었고, 팀장님이 말하는 성과평가제도를 좋든 싫든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제도의 정착 여부는 운영이 결정한다. 보다 정확히는 운영과정에서 소통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는가가 결정한다. 난 그 소통의 원활성을 위해 성과평가제도 도입 전 단계로 절차를 만들었고, 이미 지난해에 기획실과 소통하여 미리 승인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몇 개월 전 새로 오신 팀장님은 지난 시간 인사담당자로서 노력과 일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기획실 지시사항이야"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면 인력 이탈이 심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사담당자로서 내가 걱정하고 있었던 숨어 있던 말이 나오고 말았다. 기업이 시행하려는 성과평가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현장에서는 많이 보였고, 개발인력 이탈이라는 고민을 늘 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 제도의 시행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결과론으로 팀장님은 내 말을 부정했다. 논리적 반박 대신 팀장의 권위를 내세웠고, 급기야 다른 차장님에게 내 일을 넘겨버렸다.
그 후 몇 개월 뒤에 나는 이직을 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인사를 하러 다시 이제는 전 직장이 된 회사에 찾아갔다. 평소 친했던 분들과 만나고 겸사겸사 인사드리러 팀장님을 찾아갔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팀장님은 나를 반기듯 맞아주시며 잠시 자신 앉아보라고 하시고는 보고서 하나를 보여주었다.
'인력 리텐션 방안 보고의 건"
지난 몇 개월 동안 개발인력 이탈이 심해졌다고 했다. 팀장님은 더 이상 자신의 팀원도, 기업 인사담당자도 아닌 나를 보며 방안을 물어보고 있었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었으리라. 속으로는 '거보세요. 제가 그럴 거라고 했잖아요'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난 그냥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그 기업 인사팀으로 발령을 받아 일을 시작할 때 기업의 이직률은 산업/직무특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많이 높은 편이었다. 두 자릿수는 기본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기업을 나온 그 해 이직률은 1자리 수로 내려와 있었다. 그리고 불과 몇 개월 만에 이직률은 내가 처음 발령받은 시점으로 돌아가는 흐름을 보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뭘 어떻게 했길래 이직률을 잡았냐고 물어본다. 나는 그냥 인사라는 일을 했다고 말한다. 인사라는 일을 매개로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나름의 근거와 합리성에 기반해 인사라는 일을 했다고 말한다.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것이라 말하는 대신 근거와 논리를 만들어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만들고 도입하고 운영하는 제도에 대해 알고자 노력했다. 상품을 팔려면 적어도 그걸 파는 나는 그 누구보다 상품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니까. 여기에서 상품에 대한 이해는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알고 있음을 포함한다. 신뢰를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걸 무너뜨리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B=f(P+E) *Lewins Equation
행동(Behavior)은 사람(Person)과 환경(Environment)의 합으로서 함수이다.(Lewin's Equation) 나는 인사제도를 '환경'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환경으로서 제도는 구성원이 Stay와 Go라는 두 가지 행동 중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서 제도는 단순히 멋진 보고서에 담긴 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제도의 진정한 가치는 운영을 통해 결정된다.
오랜만에 인사담당자인 지인을 만나 인사기획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인사기획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인사기획을 우리 기업이 하지 않는 새로운 제도를 검토하고 필요시 도입하는 일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인사기획을 연결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인사를 통해 서로 다른 사람, 도구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으로서 체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연결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인사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의 무한반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